“문화재 사랑하는 길이 우리의 정체성 밝히는 길”
“문화재 사랑하는 길이 우리의 정체성 밝히는 길”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03.09
  • 호수 126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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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고판화박물관 한선학 관장을 만나다

통상적인 스님의 모습과는 달리 그는 머리가 길었고, 푸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인상을 풍겼다. 예상치 못한 눈이 오던 지난 4일. '예상치 못한 스님'을 만났다. 고판화박물관을 운영하고 있는 한선학<박물관교육학과 박사과정 3기> 관장이 내민 명함은 우리나라 고유의 '한지'로 만든 것이었다.

우리나라 문화재 보호에 앞장서는 그는 명함부터 달랐다. 그는 최근 한석봉의「천자문」이 일본에서 외곽장식 용구인 화로로, 한글소설「류충렬전」의 목판 원판은 일본 여인의 분첩으로 전락했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숭례문 방화사건이 있고난 후부터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였다. 우리 문화재가 불길에 휩싸이고 잿더미로 변해버린 모습에 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문화재에 대한 관심을 끌어올릴 수 있는 중요한 발단이 됐다.   

“우리들이 얼마나 문화재를 사랑하고 있는지 돌아봐야 해요. 숭례문이 소실되니까 이제 아깝다, 600년 역사가 사라졌다 그러는 거지. 옛날에는 당연히 거기 있는 거라 생각했겠죠. 우리나라의 여론은 금방 불타올랐다가 빨리 죽어요. 이번에도 또 잊어버릴 겁니다. 지속적으로 우리 문화재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갖고 아끼는 마음을 가져야 해요. 그런 마음이 없으니까 우리나라 문화재가 외국에서 팔리고 분첩 같은 생활도구로 전락해 버린거죠”

이제는 문화의 시대, 문화가 돈이 되는 시대다. 그리고 문화의 중심에는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앞으로 우리 젊은 학생들이나 아이들은 아이디어 하나만 잘 창출해도 어마어마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시대가 올 거예요. 한양대가 재밌는 게 박물관 계열로 학과가 생겨난 게 중앙대도 있고, 경희대도 있지만 일반대학원 안에 석ㆍ박사 과정이 생긴 것은 한양대가 유일해요. 그 면에서는 앞서간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에 등록된 박물관은 5백개 정도다. 고판화박물관은 옛날 우리 선조들이나 중국, 일본, 몽골 사람들이 만들었던 판화를 3천5백 여 점 정도 보유하고 있다. 조선시대 최고의 목판인 「오륜행실도」도  유일하게 고판화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뿐만 아니다. 중국학자들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판 원판이라고 주장하는 문화재도 고판화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작지만 유일한 박물관, 세계적으로도 명품 박물관이라 불릴만하다.


 
“고 자가 붙으니까 잘 모르는 거예요(웃음). 판화박물관 하면 이해하기가 쉬운데, 대체적으로 해방 이전의 유물들에 고자를 붙이니까요. 박물관은 자비로 마련한 거예요. 처음엔 수집부터 했는데, 수집가는 박물관을 여는 게 꿈이에요. 취미로 수집을 하는 건 수집가로 말할 수 없죠. 취미로 하다가 미쳐버리면 수집가라 하는 거예요(웃음)”

수집가들은 박물관 여는 게 꿈
수집이 중요한 이유는 모든 학문이나 모든 예술이 모방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란다. 인류의 선조들이 만들어놨던 걸 수집해놓고 그걸 보고 배우면서 새로운 창조를 해내는 것. 그렇기 때문에 수집은 대단한 일이라고.

“수집가들은 자신이 수집한 걸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웃음). 근데 재밌는 게 수집은 돈, 시간이 많이 들어가서 블랙홀이라고 해요. 박물관 운영하는 것도 블랙홀이고요. 그래도 2개의 블랙홀에서도 굉장히 흐뭇한 것은 어떻게 보면, 잃어버린 유물들이 내 손으로 발굴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중요성과 가치가 알려지면서 보람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문화재가 교육에는 굉장히 중요한 자료잖아요. 중독현상 중에 마약은 잡아가도, 그것보다 더 심한 수집을 안 잡아가는 이유는 공익을 위한 일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박물관은 2004년에 개관했다. 개관하기 전에 덕수궁 쪽에서 일간지 문화재 기자들을 초청해 식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근데 문화재 담당 기자 중에 가장 고참이었던 한 기자가 박물관 하면 다 망하는데 왜 하시려고 하냐고 물었단다.

“그게 박물관의 현실이에요. 수집하는 사람들은 꿈이 박물관을 여는 거라 여는 건데, 열고 나면 그게 신기루인줄 그 때 알아요. 신기루라고 해도 빠져나올 수가 없죠. 어차피 시작한 일이니까” 

일본의 생활도구로 전락해버린 우리 문화재
조선시대는 유교 국가였기 때문에, 유교의 이념을 가르치기 위해 행실도를 많이 만들었다. 그 중 조선시대 최고의 판화 책이 김홍도와 그 제자들이 그린 「오륜행실도」다. 하지만 정조 때 목판이 불에 타버렸다. 그래서 그 후에 철종 임금이 남은 책으로 다시 목판을 만들었는데, 그게 규장각에 한 장도 남지 않았다. 그가 발굴했을 땐 안타깝게도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이미 반으로 쪼개져 화로로 전락해 있었다.

“보통 안타까운 일이 아니죠. 궁중 판화의 핵심이자 인쇄문화의 최고인데… 일본 사람들에 의해 생활도구로 전락해 버린 현실이 가슴 아플 뿐입니다. 다른 것도 분명히 또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마침 최근에 발견된 게 한석봉의 「천자문」이고요. 그게 책은 많이 나와 있는데, 원판이 없더라고요. 그것도 안타깝게 일본식 화로로 발견됐어요”

그는 문화재가 일본에 의해 훼손된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문화재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무관심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스스로 많이 자각하고, 문화재를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켜야 되지 않겠냐고.
“문화재를 사랑하는 길이 결국 우리의 정체성을 밝히는 길이고, 한국인의 정체성이 밝혀질 때 세계 속에서 글로벌화가 되는 거라 생각해요. 우리의 정체성이 없으면 세계화가 될 수 없겠죠.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 사랑은 경제 발전과 함께 가야 할 부분입니다. 문화재라는 것은 우리 조상의 얼인데, 문화재가 짓밟힌다는 것은 조상의 얼이 짓밟히는 거예요.

한 관장은 앞으로 선교나 포교는 문화가 징검다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복지가 중심이었지만, 이제는 국가가 다 해주고 있다고. 말 잘하는 것만으로도 이제는 안 된단다. 말 잘하는 사람은 또 얼마나 많은가 하며 기자를 가리킨다.

“대학생들, 박물관 좀 오세요”
그가 안타까운 건 대학생들이 박물관에 제일 안 온다는 점이다. 중ㆍ고등학교 때는 숙제 때문이라도 왔는데, 대학생들은 그렇지도 않단다. 처음에는 대학생들에게 화도 많이 나고 아쉬움도 많았다.

“하지만 뒤집어 놓고 생각해보면 내가 대학생일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놀러 가면 박물관에 들어가기보다는 술 한 잔 더하고 싶었죠. 그렇지만 이제는 여행을 가더라도 박물관까지 겸해서 문화체험도 하면 더 좋지 않겠나 하는 마음도 들어요”

고판화박물관은 전시실뿐만 아니라 체험 공간도 따로 마련해 놓고 있다. 박물관에 머물면서 분위기를 접하자는 취지다. 가족끼리 와서 판화 체험도 하고, 좋은 추억도 많이 쌓고 간단다.

“앞으로 박물관이 제 자리를 잡았으면 좋겠고, 우리나라의 박물관 문화가 하나의 국가 기관시설로 발전했으면 좋겠어요. 또, 온 국민들이 박물관을 사랑하는 마음이 많아지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바람도 있습니다. 더불어 한양대 박물관이 우리나라 박물관 문화를 선도하는 최고의 박물관이 됐으면 좋겠네요”

▲ 고판화박물관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양 고판화를 수집해 연구하고 보존하고 있다. 강원도 원주시에 위치해 있다.
▲ 19세기 후반 한글소설인 「유충렬전」을 찍어낸 목판이 일본식 여인의 분첩으로 재가공 돼 있다.
▲ 1899년 제작된 한석봉 초서 「천자문」 목판 4장이 일본식 소형 4각 외곽장식 용구인 화로로 전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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