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 장형수 기자
  • 승인 2008.02.24
  • 호수 126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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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잿더미로 변한 모습을 보니 이제야 후회가 됩니다.

며칠 전 우연히 길을 걷다 숭례문과 마주 했습니다. 평소 서울과 그리 친한 편은 아니었기에 처음엔 숭례문인지도 몰랐습니다. 그저 어두운 밤을 밝게 비추는 옛날 건물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을 뿐입니다.

그게 마지막일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단 하룻밤 만에 잿더미로 변했답니다. 늘 교통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자랑스럽게 봤던 그 모습은 이제 없습니다. 불길에 내려앉아 이제는 그 형태조차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임진왜란 때도 끄떡없던 곳인데 말입니다.

숭례문의 의미는 예술적, 건축적 가치를 따지기 이전에 언제나 국민들과 함께 있어 왔습니다. 서울의 한 복판에서 서민들의 애환과 환희를 묵묵히 서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이 호흡해온 문화적 국민 공감대, 단지 그것뿐입니다.

숭례문이 우리나라 국보 1호인걸 아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소중한 것이 곁에 있을 땐 그 존재조차 모르다가, 우리는 그것을 잃고 난 뒤에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습니다. 얼마나 어리석은가요.

뿐만 아닙니다. 그저 문화재에 어떤 가치 기준이 적용될 수 있는지 구체적인 검토 없이 국보와 보물을 나누고, 일제 강점기에 부여된 일련번호를 통해 관리했습니다. 마치 문화재의 가치에도 서열이 존재하는 것처럼 말이죠.

화재 후 서울시의 대처는 어떻습니까. 도시 미관에 좋지 않다며 가림막을 설치해 부끄러움을 덮기에 급급한 모습이었습니다. 물론 시민들의 안전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시민들의 안전이 그토록 중요했다면 숭례문의 화재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비극입니다. 항상 일이 터지고 나서야 대책을 마련하는 변함없는 모습에 그저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숭례문의 복원에 3년이라는 시간과 200억이라는 예산이 필요하답니다. 찬란하고 웅장했던 숭례문의 모습이 눈에서 아른거립니다. 그때 그 모습이 마지막이었단 걸 알았더라면 한번이라도 더 봤을 모습입니다.

이제 그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집니다. 역사의 비극은 숭례문 하나로 족합니다. 우리 문화재의 올바른 가치에 대한 인식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상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던 숭례문의 안타까움이 다른 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수많은 시민들이 매일 같이 국화 꽃다발을 들고 옵니다. 숭례문이 타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피눈물을 흘렸던 사람도,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안타까워하던 사람도, 평소에 관심이 없던 사람도 모두 한 마음입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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