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빙, 그 가혹함에 대한 잔상
웰빙, 그 가혹함에 대한 잔상
  • 취재부
  • 승인 2005.10.02
  • 호수 1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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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나에게 방학은 그렇게 큰 의미가 없는게 사실이지만, 초등학교 시절에 매년 찾아온 방학은 ‘집 떠나와 열차타고 시골집에 가는’것이 전부였다. 그곳은 조용한 전라도, 더구나 마을에서 한참 떨어진 산기슭 가운데 위치해 앞뒤 푸른 산만 보이는 그런 곳이었다.

퉁퉁 소리를 내며 무미건조하게 흙을 가르고 달리던 경운기나 온종일 할머니 치마 붙잡고 논이며 밭이며 헤집고 다니던 추억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건 할머니가 간간히 뽑아주신 달달한 풀이었다. 풀 끝 부분에 살짝 입을 대고 쪽쪽 빨아들이면 묘하게 달달한 맛이 느껴지는데, 그것이 입안에 가득 퍼지면 어찌나 행복한지. 다 커서야 그것이 ‘싱아’라는 것을 알게 됐지만 여전히 내 기억 속에는 할머니께 연신 달라고 외쳐댄 ‘단풀’로 남아있다.

가족과 떨어져 자취 생활하면서, 매일 인스턴트식품에 질려 있는 게 사실이다. 가끔 식당에 밑반찬으로 나오는 풀 하나에도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먹어대는 나에게 ‘식사시간’은 일상이 아니라 일종의 해결해야 할 대상이 돼버렸다.

얼마전 ‘슈퍼푸드(super food)’라는 용어를 알게 됐다. 작년 코리아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Well-Being을 이은 후속주자로써 장수하는 나라에서 즐겨먹는 음식 중 스티븐 프랫 박사가 고른 14가지 음식을 말한다.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며 얼굴색이 달라지고 온갖 영양소가 듬뿍 들어있는 음식이라 적극 권장한다는 말에 그 목록을 봤다. 콩 대두 호박 시금치 여기까지는 좋았다. 연어 칠면조 브로콜리. 아. 가혹하다. 칠면조하면 왕십리 호프집에서 일년에 한번 먹을 수 있다는 그 칠면조를 말하는 건가. 결국 내가 손쉽게 슈퍼(!)에서 사먹을 수 있는 요구르트로 위안을 했다. 

슈퍼푸드가 나오자마자 홈쇼핑에는 캘리포니아산 아몬드와 호두가 판을 치고, 마트에서는 유기농식품 홍보에 혈안이다. 먹거리가 우리에게 뗄 수 없는 것임에는 틀림없다. 더구나 과거 다큐 제목처럼 ‘잘 먹고 잘 사는 법’에는 건강식품을 빼놓을 수가 없다. 하지만 웰빙이니 슈퍼푸드니 하면서 언론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보면 그것은 일반 시민들의 건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잘 벌고 잘 파는 법’에 혈안이 돼있는 상술로만 느껴지는 것은 왜일까.

오늘도 나는 텔레비전에서 세계 각국의 희귀음식을 찾아 먹는 모습을 보고 좌절한다. 푸드 채널에서는 시중에서는 구하기도 힘든 재료들을 나열해놓고 척척 요리한다. 소고기 안심에 굴 소스를 뿌리고, 양송이에 대하를 넣고 요리하면 어떻게 맛없는 요리가 나올 수 있겠는가. 가까이에서 구할 수 있고 신선해서 건강에도 좋은 서민 재료들로 만들 수 있는 요리는 없는가. 나는 오늘도 슈퍼푸드 요구르트를 먹으며 웰빙을 꿈꾸지만 방송에서 보여주는 진짜 웰빙을 따라가기에는 산 넘어 산인 듯 하다. 웰빙, 그 가혹함에 대한 한 자취생의 궁상에 불과하지만 일반 서민들의 건강을 위한다면 언론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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