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것이 진리일까
내가 아는 것이 진리일까
  • 김민수 기자
  • 승인 2007.12.30
  • 호수 126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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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판별하는 3가지 시각

우리는 흔히 '진리'라는 말을 많이 쓴다. 종교에서의 진리는 절대자에 대한 무조건적인 귀의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러면 일상생활이나 학문의 영역에서 사용하는 진리의 진위 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여기에는 대응설, 정합설, 실용설이 있고 각각 나름의 논리와 한계를 갖고 있다.

◆ 대응설 = 직접 본 것만이 진리
판단이나 생각이 사실과 대응할 때 이를 진리로 간주하는 학설이 대응설이다. 이 학설은 일반적으로 모사설이라고 불린다. 모사설은 우리의 인식능력이 대상을 있는 그대로 인지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검고 네모난 노트북 컴퓨터를 봤다면, 그것은 그 노트북이 실제로 검고 네모나기 때문이다. 딱히 그 사람이 원래는 동그랗고 노란 노트북의 형태를 왜곡해서 인지한 게 아니다. 왜냐면 우리의 인지능력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모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응설로 지식이 진리인지 여부를 알기엔 한계가 있다. 대응설의 한계는 모사설의 한계를 보면 자명한데, 아무리 대상을 인지하기에 적합한 환경에 있더라도 우리의 인지능력은 모든 것을 반영하지 않는다.
실제로 인간은 자외선과 적외선을 볼 수 없고 개에 비해 시각, 후각이 뒤떨어진다. 망원경이나 현미경 같은 보조 기구가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보다 볼 수 없는 세계가 훨씬 많다.

그러면 인간이 인지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선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고 할 수 있을까. 그것도 그렇지 않다. 검고 네모난 노트북을 봤다고 했을 때 그 노트북이 실제로 검고 네모난지 알기 위해선 그 노트북을 다시 봐야 한다.

하지만 노트북을 다시 봤다고 해서 그 노트북의 본질을 본 것은 아니다. 단지 처음 봤던 노트북의 관념 외에 또 다른 노트북의 관념을 인지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관념과 또 하나의 관념을 비교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응설의 한계가 있다.

◆ 정합설 = 기존 지식체계와 맞아야 진리
새로운 지식이나 사실을 접했을 때 그것의 진위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바로 기존에 습득한 지식이다. 어떤 대상을 지각한다는 것은 사물의 모습을 눈에 비추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인지 아는 것이다. 노트북을 봤을 때 그것을 ‘검고 네모난 물건’이 아닌 ‘노트북’인지 알기 위해선 과거의 경험적 지식이 있어야 가능하다. 즉 새로운 지식을 진리로서 믿어도 되는지의 여부는 기존의 지식체계와 맞는지의 여부에 달렸다.

앞서 설명한 대응설이 지금 눈앞에 있는 사물의 진위를 가려내는 데 그치는 반면 정합설은 ‘모든 사람은 죽는다’처럼 감각적으로 확인할 수 없는 사실의 진위까지 가려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정합설은 난점을 갖고 있다. 새로운 사실의 진위 여부는 차치해 두고서라도 기존 지식체계의 진위여부는 어떻게 확증할 수 있을까.

정합설의 방법론에 따라 기존의 지식체계는 이전의 지식체계에 의해 증명되고 이전의 지식체계는 그 전의 지식체계에 의해 증명 될 것이다. 이 과정을 무한히 반복해 제일의 지식체계가 남았을 때, 이 지식체계의 진위여부는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정합설의 논리로는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 따라서 정합설은 제 일의 지식체계를 다른 방법에 의해 증명받아야 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 실용설 = 결과만 맞으면 진리      
실용설은 생활과학의 방법론을 실제생활의 영역까지 확대 적용한 주장이다. 가정이 아무리 완벽하다고 해도 실험결과가 그 가정을 입증하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논리다. 어떤 사실의 진위 여부는 그 자체로는 알 수 없고 결과를 보고 난 후에야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숲속에서 길을 잃었다. 그런데 소 발자국이 보여 혹시 소 발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인가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 했다.

그 사람이 소 발자국을 따라가서 인가를 발견했다면 그 가정은 진리가 된다. 하지만 실용설은 사람의 주관이 객관적일 수 없다는 데 한계가 있다. 동일한 문제 상황에서 서로 상반된 신념에 따라 행동했는데 둘 다 성공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그 상반된 신념이 동시에 진리가 된다.

또 실용설에서 진리의 판별 여부는 행동을 통해 얻어지는 것인데 행동을 통한 증명이 안 되는 경우는 어떻게 할 것인가. ‘고구려가 망하지 않았다면 우리 민족은 좀 더 나은 상황에 있을 것이다’라는 가정이 있다. 실용설로 이를 입증하려면 실제로 고구려를 망하지 않게 해봐야 하는데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이처럼 실용설은 우리가 해볼 수 없는 많은 가정의 진위여부를 판가름할 수 없는 한계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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