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 방(房)’이면 된다
인생 ‘한 방(房)’이면 된다
  • 김민수 기자
  • 승인 2007.11.26
  • 호수 126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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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참선하는 중이 고승 앞에 나아가 “대체 해탈은 어떻게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 고승은 “누가 너를 묶더냐”라고 되물었다. 우리는 재물과 이욕에 묶인 줄 모르고 세상살이가 괴롭다고 한탄하곤 한다. 스스로 절제하지 않아 현재 돈이 궁한 것인데도 현대자본주의의 폐해를 원망하고 많이 가진 사람을 질투한다. ‘15조원을 가진 구글 공동설립자가 결혼한다더라’ 하는 사실까지 기사화 된다.

누구나 입으로는 유유자적한 삶이 최고라 말하지만 재물욕의 질긴 사슬을 끊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법정스님은 우리가 어떻게 물질에 의해 구속되는지 말해준다. 처음 우리는 빈손으로 태어났다. 그리고 세상을 떠날 때도 빈손으로 간다. 그 중간 삶의 과정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 소용되는 물건들과 인연을 맺는다. 그런데 우리가 필요에 의해 물건을 소유해도 우리는 곧 그 소유물에 마음을 쓰게 된다. 무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시 말해 가짐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많이 가졌다는 사실은 보통 자랑거리로 여겨지지만 그만큼 소유물에 대해 많이 얽매인 채로 살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키우던 난초 때문에 봉선사의 운허라는 스님을 만나러 갔다가 허둥지둥 돌아온 일화를 들어 그는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을 잘 말해주고 있다.

물질의 속박에서 벗어난 홀가분함에 대해선 채근담에 자세히 나와 있다. 채근담은 중국 명말 홍자성의 저서로 후집(後集) 134조가 은퇴 후 산림에서 유유자적한 삶을 보내는 즐거움에 대한 내용이다. 법정 스님이 난초에 대한 집착 때문에 괴로움을 겪었듯이 우리가 진정한 자유와 즐거움을 얻으려면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고기는 물을 얻어 헤엄치지만 물의 고마움을 잊고, 새는 바람을 타고 날지만 바람이 있는 줄을 모른다.

속세를 초탈한 사람들이 대단한 이유는 그들이 세상의 부귀와 영화보다 한 줄기 햇살이 좋다는 사실을 아는 데 있다. 보통의 사람들은 공기나 태양이 없어지지 않는 이상 그 고마움을 잘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속세의 욕심을 초탈한 사람들이 보는 선경은 주위를 환기해준다.

우리의 옛 시조에는 자연에 파묻혀 소박하게 사는 삶의 즐거움이 잘 나타난다. 맹사성의 강호사시가는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봄에는 시냇가에서 낚시를 하며 막걸리를 마시는 즐거움이 있고 여름에는 강에서 부는 바람이 시원하다. 가을은 작은 배에서 던진 그물에 살찐 물고기가 가득 잡힌다. 그것이 맹사성에게는 임금의 은혜처럼 감사한 일들이다.

어부사시가는 벼슬에서 쫓겨난 윤선도가 오히려 자연에 파묻혀 살면서 누리는 기쁨을 그리고 있다. 강촌의 뻐꾸기가 울고 푸른 버들숲이 있는 강촌의 풍경과 이상향처럼 아름다운 눈 덮인 겨울풍경이 아름답다. 또 반찬은 필요 없이 연잎에 밥만 싸려는 여유와 세속의 명리에 쫓겨 자신을 잃는 삶보다 자연과 하나 된 어부의 삶을 누리는 여유가 있다. 이처럼 세속의 욕심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자연에 파묻혀 살면서 부귀와 영화를 좇으며 고군분투하는 사람들이 허무할 정도로 기쁨을 누리며 산다.

높은 자리에 오르고 많은 돈을 번 사람도 가벼운 차림으로 한가로이 일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워 탄식하곤 한다. 그것이 부러우면 스스로 그렇게 하면 되는데 세상 사람들은 금세 부동산, 증시 등으로 눈길을 돌려버린다. 넓은 하늘을 두고 촛불에 몸을 던지는 부나비나 맑은 샘을 두고 썩은 쥐를 즐기는 올빼미처럼 맹목적으로 영욕을 좇는 사람이 많다.

깊은 골짜기는 채우기 쉬워도 사람 마음은 채우기 어렵다. 세속의 영화는 고기가 낚시를 무는 것과 같다. 영화를 바라지 않으면 명리의 미끼에 유혹되지 않는다. 높은 자리는 밑바닥부터 다투어야 올라갈 수 있고 그 자리에 있어도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하므로 자칫 잘못하면 한 순간에 감투를 벗어야 하는 위태로움이 있게 된다. 그래서 처음부터 높은 자리가 주는 특권에 눈멀지 않으면 그런 위태로움도 없게 된다.

김만중의 소설 구운몽은 부귀영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에게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던져준다. 모든 것을 얻은 양소유가 인생의 덧없음을 한탄하다 꿈을 깨고 성진이 된다는 내용전개는 세속을 떠나 욕심 없이 사는 사람들의 깨달음과 일맥상통한다. 비록 좁은 방에 살지라도 물질의 구속에서 오는 괴로움만 없다면 금전옥루에서 사는 것보다 낫다.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끝없는 경쟁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 속에서 안분지족하는 사람들이 갖는 마음의 여유를 배울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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