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 노자, 한비자 "대선을 말하다"
공자, 노자, 한비자 "대선을 말하다"
  • 김민수 기자, 양정렬기자
  • 승인 2007.11.11
  • 호수 12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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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 “지도자는 국민의 어버이여야 한다.”
노자 : “최고의 지도자는 국민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지도자이다.”
한비자 : “최고의 지도자는 권세와 술수, 법률의 세 가지로 다스릴 수 있어야 한다.”

고졸도 아니었다. 서민을 위한 것도 아니었다. 서민이었으면서 고졸인 대통령의 정권에 대한 국민의 평가이다. 그 정부-참여정부가 지고 있는 지금. 과연 바람직한 대통령상은 무엇이고 현 대권 후보의 공약은 어떻게 봐야 하는가. 공자·노자·한비자가 한자리에 모여 이야기를 나눠봤다.

경부대운하 공약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공자 : 나라의 부를 살찌우는 데는 말단을 쫓는 방법과 근본을 쫓는 방법이 있다. 지도자가 근본을 쫒으면 말단은 따라 오나, 말단을 쫓으면 민심은 흩어지고 국정은 혼란해진다. 오늘날의 근본은 덕이요, 말단은 재물이다. 사회 모든 계층이 본분을 망각하고 부정이 비일비재한 이 시대에 단지 큰 운하 하나 만든다고, 국가의 부가 증대되고 국민의 삶이 윤택해지진 않는다. 진정한 지도자는 오히려 국가의 덕을 밝히고 국민의 신뢰를 얻는 데 힘써 국민과 사회를 밝혀야 한다.

노자 : 덕은 인위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무위자연에서 나오는 것이다. 무위란 일부러 욕심을 내 억지로 뭔가를 도모하지 않음이고,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대로 있음을 의미한다.  대운하는 무위와 자연 모두에 역행한다. 남북으로 물길을 내려고 동쪽의 높은 산을 얼마나 들어 옮길 것인가. 운하를 판 자리에 살던 사람의 삶은 물론이고 이익을 좇아 찾아든 사람들이 누리던 삶 또한 어그러진다. 대운하는 자연의 섭리를 무시하고, 백성을 무위에서 벗어나게 할 따름이다.

한비자 : 그렇지 않다. 인간은 본래 이기적인 동물이다. 인간이 살아가는 것은 그 이기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대운하가 현실 가능한 약속이고, 지도자가 확고한 지도력으로 운하공사를 진두지휘한다면 국민은 이에 따를 것이다. 물론 대운하가 국가 체재와 기틀을 흔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면 결단코 용납될 수 없으나, 실제로 운하가 물자의 유통을 늘려 나라에 큰 이익을 가져준다면 그것이야말로 최상이 아니겠는가. 

공자 : 물론 대운하 건설은 인구·영토·물산을 늘리는 행위이다. 그러나 그것은 유일한 방법도 아니고 최선책도 아니다. 본래 통치자가 덕을 쌓아 덕으로써 국민을 교화하면 국민은 이에 즐거이 따르게 된다. 또 국민이 따르면 그들의 터전인 땅이 복속하게 되고, 땅이 복속하면 재물이 있게 되고, 재물이 있게 되면 이후 바르게 쓰일 곳은 얼마든지 있게 된다. 그럼에도 말단을 우선한다면 당장은 재물이 늘어난 듯 보이겠으나, 그 재물로 인해 오히려 화를 입게 될 것이다. 무릇 근본을 우선하면 말단은 저절로 따르는 것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노자 : 중한 것이 어찌 물질적 이익이랴. 지난 50년간 이 나라는 무위와 자연을 깨뜨려왔다. 그로 인해 오늘의 국민들은 동전 한 푼과 어우러질 줄은 알아도 자연과 어우러질 줄은 모른다. 그러니 대운하의 이익을 다시 생각해 볼 일이다. 그 땅의 국민은 쫓겨나고, 운하가 완공된 뒤에 나타난 이윤의 불평등한 분배는 국민의 불만을 만들어 낼 것이다. 이익을 쫒아 모이는 이들로 인해 평화롭던 땅은 투기 대상이 되고 경부축의 과밀현상은 더 심화되지 않겠는가. 그런데도 이익의 이름으로 무위를 깨고, 부자연스러움을 계속 추구할 것인가.

3불정책 폐지는 바른 방향인가

노자 : 모든 것은 자연스러워야 한다. 이 나라엔 의무교육이 있어, 학교 교육을 받는 것이 하나의 자연스러움이 됐다. 그렇기에 초·중·고의 공교육은 자연스런 상태이다. 그런데 본고사가 부활하면 학생들은 공교육에서 사교육으로 몰리지 않겠는가. 자연스럽던 공교육 과정이 무너지고 부자연스런 사교육이 활성화되는 꼴이다. 정 본고사를 시행하고 싶다면 공교육의 경쟁력을 갖춰 본고사 이후에도 자연스런 공교육이 무너지지 않게 함이 마땅하다.

적성강화에 초점을 맞춘 교육과정은 공부하는 학생의 입장에선 자연스러운 교육과정이다. 그러나 학문의 목적이 진학에 맞춰져 있는 현 체제에서 교육받는 학생에겐 현재의 교육과정이 결코 자연스럽지 않다. 더구나 이런 세류가 고쳐지지 않은 채 고교등급제·기여입학제가 허용된다면 교육현장은 더 왜곡될 것이다.

적성 강화를 위한 노력 대신 소위 명문대에 손쉽게 진학하기 위한 학생들의 잔머리만 늘 뿐이다. 학생의 흥미에 맞는 학문을 장려하고 관련 분야의 학과를 개설한 대학에 자연스럽게 진학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마련해야 한다.

한비자 : 국가의 의무는 국민을 통치하는 데 있고, 통치는 지도자의 몫이다. 지도자는 권세와 술수와 법률로 국가를 다스린다. 권세는 지도자의 권능이요, 술수는 국민의 마음을 다스리는 정치적 지략이며, 법률은 권세와 술수를 펼치는 기준이다. 이 세 가지 도구가 지도자의 손을 떠나면 지도력은 쇠퇴한다. 3불 정책이 무엇인가. 그것은 국가에서 교육을 통제하고 이끄는 상징이다.

3불정책의 폐지는 지도자의 권능과 국가의 체재에 위협이 된다. 기여입학과 고교등급제를  허용하면 학생들의 공교육 이탈 현상을 부추길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여입학에 필요한 돈을 마련해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에게 제도권의 공교육 과정은 의미가 없다. 기여입학자를 바라보는 학생들 또한 상대적 박탈감을 이기지 못하고 공교육 규범 제도에 대한 회의감과 반감을 품을 것이다.

송충이와 누에가 비슷하고 뱀과 뱀장어가 비슷하다. 그러나 인간은 송충이와 뱀은 만지지 않으려하면서도 이익을 위해서라면 누에와 뱀장어는 아무렇지 않게 만진다. 인간은 목전의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법이다. 초등 6년에 검정고시 한 번으로 공교육 12년을 대신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권위가 서지 않게 된다.

공자 : 3불제 유지는 교육의 기회를 보다 다양하게 베풀고자 하는 의지다. 가르침에는 빈부와 귀천이 없고, 국민들이 교육을 받는 데에는 어떤 제약도 있어선 안 된다. 그럼에도 이 나라는 교육의 본질을 망각하고 있다. 현재 이 나라는 교육을 출세의 수단으로 여기는 경향이 만연해 있다. 국민들 사이에 소위 명문대를 나와야 출세를 할 수 있다는 의식이 퍼져있다.

이유야 당연하지 않은가. 위정자 스스로가 일부 명문대 출신을 편향적으로 기용하고 있는 현실을 보라. 위정자 자신이 교육이 덕을 쌓는 수단임을 망각했는데 국민이 교육의 본질을 돌아볼 리 없다. 결국 명문대 출신을 편향적으로 기용하는 위정자의 행태가 고쳐지지 않는 한 아무리 3불정책의 취지가 좋다 한들 그 의미가 무색질 수밖에 없다. 국민들이 인격도야를 하고 예를 숭상하는 참된 교육을 실시하려면 먼저 지도층이 모범을 보여야 한다.

바람직한 지도자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공자 : 오직 천하의 지극한 성인이어야 그 총명함과 지혜로움으로 족히 천하에 군림할 수 있다. 관대하고 너그럽게 따스하고 부드럽게 포용할 줄 알며, 강하고 굳세게 자기 주체를 꼭 쥘 수 있으며, 단정하고 바른 자세로 공경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며, 조리 있고 세밀해 사리분별을 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지도자는 국민의 어버이여야 한다. 국민의 마음을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국민에 혈구지도(?矩之道)를 행해야 한다. 혈구지도란 자신의 마음에 비춰 상대방이 좋아할 일과 싫어할 일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음을 말한다. 국민과 한마음이 되어, 국민이 좋아하는 것을 권장하고 국민이 싫어하는 것을 제거하여 마치 부모가 자식을 돌보듯이 해야 함을 가슴 깊이 명심해야 한다.

노자 : 최고의 지도자는 국민이 지도자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게 하는 지도자이다. 분분한 정치설에 근거한 인위적인 통치와 정책은 국민에게 자연스럽지 못한 삶을 줄 뿐이다. 그러므로 지도자는 어떤 정책을 펴기에 앞서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는 데, 특히 사회적 안전망을 만드는 데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기본권이 보장되지 않아 자연스러운 삶이 어긋날 때, 국민은 지도자의 자질을 의심한다. 지도자는 자신의 자리에서 국가가 아닌 국민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정치이론보다 국민들이 무위자연의 삶을 누릴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지도자의 역할일 것이다.

한비자 : 앞에서도 말했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지도자는 권세와 술수, 법률의 세 가지로 다스린다. 먼저 권세를 위해 지도자는 절대적 권능을 지녀야 한다. 그렇게 되면 신하들은 지도자를 속이려 들지 않을 것이며 지도자에게 민중을 봉사케 할 수 있을 것이다. 신하와 국민이 지도자를 따르는 것은 지도자를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 권능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지도자의 지시는 잘 시행되고, 국민은 기뻐하며 다시금 지도자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국민을 따르게 한 이후에는 신하를 따르게 하는데, 통치자가 신하를 제압하여 지도자 자신에게 유리하게 만드는 것을 술수라 한다. 술수가 없는 지도자는 윗자리에서 정보에 어두워지고 신하에게 이용을 당하게 된다. 이렇게 권세와 술수를 장악한 뒤 법률을 세워 규칙으로 삼아 아래에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게 한다. 지도자는 권능으로 신하를 다스리고 신하는 지도자가 내린 술수를 따르게 되면, 국민은 지도자가 정한 법을 어기는 법이 없어 신하들도 능히 법으로써 국민을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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