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효과와 소수의 목소리
「원스」 효과와 소수의 목소리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11.05
  • 호수 125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크린에서 10만 관객을 동원한 인디영화가 있다. 애국주의나 상업 마케팅의 성공이 아니다. 작품성과 영화를 본 관객들의 입소문만으로 10만 관객을 불러들였다. 이 영화를 만든 나라의 영화나 음악을 어디서 한번쯤 들어보기나 했을까. 10만이지만 1천만 이상의 반향을 일으키고 있는 그 주인공은 바로 아일랜드 출신 존 카니 감독의 인디영화 「원스」다.

앞서 언급했듯 「원스」가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데는 관객들이 퍼뜨린 입소문의 영향이 컸다. 개봉 당시 많은 사람이 주목한 영화는 아니었다. 때문에 스크린 수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관객 수는 꾸준히 유지됐다. 자연히 상영기간도 늘어났다. 이 영화를 본 관객들이 스스로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기 때문이다.

「원스」의 관객들은 우연찮게 이 영화를 본 사람을 발견하면 ‘너도 봤구나’라는 말을 자연스레 내뱉는다. 그 좋은 영화를 너도 봤느냐는 반응이면서 동시에 10만이라는 적은 숫자가 갖는 동질감의 표현이다. 10만 관객의 10%인 1만 명은 음반까지 구입했다.

2007년 상반기 국내가요 중 1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기록한 음반이 29장에 불과한 것을 생각하면 대단한 충성도, 결집력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 소수의 10만은 다수를 향해 당당히 외치고 있다. 나 「원스」 봤노라고.

「원스」를 상영한 소수는 당당하다. 자신이 본 영화에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의 경험을 함께 한 사람들과의 끈끈한 동질감은 그 자신감의 근거가 된다. 자연히 타인에게 영화를 추천하고 호평을 들으면 또 다른 동지를 얻었다는 생각에 마음이 훈훈해진다.

그런데 우리사회는 소수가 당당하게 이야기하고, 소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행동할 만큼 훈훈하지 못한 듯하다. 국가의 이익, 대세의 흐름을 위해서라면 소수의 가치는 당연히 희생해야 하는 70년대 개발독재 사고방식이 만연해있다. 인간 생명의 존엄성을 인종이나 학력, 재력에 따라 다르게 평가해 사회적 소수자의 가치를 한없이 떨어뜨린다. 그러한 사고나 행위들은 다수의 이익을 위한 명분으로 정당화된다. 소수의 이야기에 주목하는 사람은 그 역시 소수자이거나 정치적 쇼맨십에서 비롯될 뿐이다.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나 권리를 누군가 빼앗으려 할 때 일어나는 저항은 당연한 것이다. 사회 소수자들의 저항은 돌발적이고 격한 형태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이야기를 들어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강자는 소수의 약자를 설득하기보다 힘으로 찍어 누르려 한다. 사람들은 다수의 방법이 정당하고 소수의 방법은 잘못됐다고 한다.

언론이 그렇게 보도하기 때문이다. 사회의 소수자로서 이야기를 꺼내는 것도 어려운데 그 방법까지 세련돼야 한다. 영화 「원스」에서처럼 사람의 감성을 자극하는 아름다운 선율이어야만 하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