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 류효정 기자
  • 승인 2007.11.04
  • 호수 1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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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효정 기자의 같이 걸을까

한 아주머니의 이야기

<들어가며> 평소와 다르지 않은 신문사 조판 날 이었습니다. 선배기자가 월요일 강의시간표를 물으며 만나볼 사람이 있다고 하는데, 알겠다고 답했습니다. 월요일에 한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와 선배기자의 이야기를 들으니 시선이 자꾸만 아래로 떨어졌습니다.

기자는 대화 말미에 침묵을 깨고 아주머니께 질문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예전처럼 학생들 대하지 못하시겠어요.” 아주머니는 바로 “그럼요, 예전엔 20원 부족한데라며 웃으면 내가 그냥 깎아 주고, 채워 넣고 하기도 했는데, 이젠 웃지도 못 하겠어요”라고 답하셨습니다.

식당 밥이 맛없다는 투덜거림을 했던 동기의 말이 스치듯 지나갔습니다. 아주머니의 사연은 아주머니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습니다. 기자는 아주머니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시대 비정규직의 현실을 돌아보는 소중한 기회가 됐습니다.

신문사로 메일 한 통이 왔습니다. 메일을 보낸 사람은 우리학교 식당에서 근무하시는 아주머니십니다. 기자는 아주머니의 사연을 따라 식당으로 취재를 갔습니다. 아주머니는 저를 보시자마자 밥을 먹었는지부터 물으십니다. 먹었다고 세 번쯤 말하자 그럼 나중에라도 식당에 오면 먹으라고 슬쩍 맛있는 메뉴를 알려주십니다. 바짝 튀긴 돈까스가 나오는 시간과 소고기가 많이 섞인 음식이 있다면서 꼭 먹어보라고 일러 주십니다.

아주머니는 자그마한 일터 이곳저곳을 소개해주십니다. 한평 남짓한 공간의 구석 한 켠에 토끼 같은 자식과 우람한 남편 사진이 붙어있습니다. 남편과는 스무 살에 만났습니다. 같이 살아온 시간을 생각하니 정이 무섭긴 무섭다며 코 끝을 살짝 찡그리십니다. 아이들이 몇 살인지 물었더니 장난기 가득한 사진 속 표정대로 초등학교 1학년과 2학년이랍니다.

우리학교에 일자리를 잡기 전에는 야경이 끝내주던 여수 공단에서 일하셨고 서울에 와서는 백화점에서도 일하셨습니다. 12시간 이상 서있는 직업은 첫아이를 유산의 기억으로 가슴에 묻었습니다. 슬픔으로만 기억하기엔 아이들이 엄마를 찾는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합니다. 학원에라도 보내고 싶지만 저녁까지 이어지는 일 때문에 여의치 않습니다.

토요일이면 놀이방에 가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아이들이 학교에 와 언니, 오빠들에게 사근사근 말도 건넵니다. 아이들은 카운터에 펼쳐진 돈들이 엄마 돈이라 생각합니다. “엄마 나 100원만 줘”라고 말하는데 엄마는 “엄마 돈 아니야, 절대 만지지마”라고 답을 합니다.

아주머니가 일을 시작한지 1년을 조금 넘겼을 때, 아주머니가 관리하던 일터에서 돈자루가 없어지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연휴를 마치고 출근해보니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담당 교직원은 아주머니의 관리소홀과  배상만을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그 직원은 아주머니를 의심했다는 것입니다. 아주머니와 함께 일 하던 아르바이트 학생에게도 아주머니가 행여 다른 곳의 일자리를 알아보는 듯한 행동이 없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자루가 없어진 것은 변상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정규직이라면 이렇게 대우 받았을까요”라며 기자에게 물음을 던집니다.

아주머니의 일터에 있는 유리창에 금이 갔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새로운 유리창으로 바뀌었습니다. 아주머니는 유리창을 바라보며 “눈에 보이는 것들은 참 금새도  바뀌네요”라고 하십니다. 배상으로 일은 해결됐지만 아직도 아주머니의 마음엔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이 한 가득입니다. “배운 사람이 그럴 수 있냐”고 말하는 아주머니의 말에 학생으로 살아가고 있는 기자는 고개를 끄덕일 수도 내저을 수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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