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사람의 한 걸음
열 사람의 한 걸음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7.08.19
  • 호수 125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 사람의 열 걸음보다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말이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다. 2007년을 살고 있는 대학생들이 기억하기도 어려운 80년대 중후반, 이 말 하나가 학생들을 하나로 모으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물론 우리가 그리 좋아하지 않는 ‘운동권’ 학생들의 구호였다는 사실을 알면 저 말에 거부감을 느끼지는 않을까. 하지만 지금 우리는 열 사람의 한 걸음이라는 의미를 다시 새겨볼 필요가 있다.

동아리방이 모여 있는 학생회관 등지에 가면 폐쇄되거나 방치된 공간이 종종 눈에 띤다. 해가 거듭될수록 신입생들의 관심이 동아리보다는 다른 영역으로 다양해지면서 구성자체가 어려워진 동아리가 늘어났다.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동아리도 많지만 동아리가 어렵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학기가 바뀔 때마다 들려온다.

이는 학생자치가 중심이 되는 대학공동체의 와해를 가져올 우려가 크다. 내 옆에서 수업을 듣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강의실에 나오지 않아도, 학교 곳곳에서 펼쳐지는 동아리들의 다양한 공연·전시회에도 관심과 격려보다는 눈살과 비난이 먼저다. 록밴드동아리의 연습이 있다 치면 귀부터 닫고 보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것이 비단 동아리뿐인가. 각 단위 학생회는 붕괴일보직전이어서 학생들의 대의체계가 무색해진지 오래다. 총학생회를 선출하는 선거는 1학년 후배들을 간곡히 독려해야 겨우 성사기준인 50%를 넘길 수 있다. 학생들이 주축이 되는 학내 언론사는 어떠한가. 학생들의 눈높이는 점차 높아져만 가는데 갈수록 줄어드는 인력과 학점에 대한 압박으로 신뢰를 잃은 채 방황하고 있다.

학생회, 동아리, 언론사 등 학생자치조직의 위기 혹은 시련이 비단 학생들의 개인주의적 성향 때문인가. 그렇지만은 않다. 신입생들의 다양하고 고급스러워진 입맛을 제대로 충족시켜주지 못한 채 변화가 더딘 동아리. 운동권 대 비운동권이라는 식상한 대립구도를 수년째 반복하며 ‘당선되고 보자’는 정치권의 행태를 답습하는 총학생회.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자기만족과 매너리즘에 한없이 빠져있는 학내 언론사들. 학생들의 탓만을 하기에는 상황이 그다지 여유롭지 못하다.

대학을 지칭하는 수식어는 많다. 학문의 전당이라는 전통적인 수식어는 물론이고 취업준비소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도 등장했다. 우리가 여기서 빼놓지 말아야 할 것은 준사회로서 학생들이 자치적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볼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라는 것이다. 이 사회는 갈수록 조직 하부에 있는 구성원들의 자치를 통해 공동체를 운영할 수 있는 여지가 줄어들고 있다. 또 설령 그런 환경이 있다할지라도 그 누구도 그러한 시스템을 교육해주지는 않는다. 오직 대학공간에서의 학생자치조직만이 그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앞으로 학생자치활동이 더 분발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학문연구라는 대학 본연의 역할은 차치하도록 하고 대학사회의 꽃은 역시 동아리 활동이다. 비슷한 학문적 관심을 가진 학과, 단과대를 벗어나 다양한 취미와 특기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이루는 동아리야 말로 진정한 지성을 뽐낼 수 있는 공간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