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번 보기보다 한 번 행동하는 한양인 되라
열 번 보기보다 한 번 행동하는 한양인 되라
  • 성명수 기자
  • 승인 2007.06.03
  • 호수 12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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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학기 정년 맞이한 사회학과 김선웅 교수

26년. 우리학교 사회학과의 역사를 굳건하게 지켜온 사람이 있다. 1981년 사회학과 설립과 함께 우리학교에서 교수생활을 시작한 김선웅 교수가 그 주인공. 사회학과는 그 어느 학과보다 사제 간의 정이 돈독하기로 소문나 있어 다른 학과 학생들의 부러움을 사곤 하는데 김 교수는 만나보니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우리학교에서의 26년 생활을 마치고 오는 8월에 정년퇴임하는 김 교수를 만나봤다. <편집자 주>

“1981년에 우리학교에 사회학과가 설립되면서 한양대에 오게 됐지. 그 전만해도 국내에서는 6.25사변과 제3공화국의 반공국시, 이런 것 때문에 사회주의, 공산주의하면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정부에서 신경을 많이 썼어.

 또 사회학을 하는 학생들이 칼 막스 같은 책을 많이 읽고 비교적 진보적인 생각을 하기 때문에 정부에서는 기피학과로 돼있었지. 해방이후에 서울대, 이화여대, 경북대 같은 학교들이 만들어서 유지를 하다가 80년대에 한양대, 성균관대, 서강대 같은 학교가 사회학과를 만들게 됐어.”

1970년대만 해도 KDI 연구원에 대한 대우는 파격적이었다고 한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집중적으로 양성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그러한 연구소의 타이트한 분위기, 주변 연구 환경 등에 조금씩 염증을 느끼다가 함께 일하는 대학교수들의 모습이 조금씩 부러움을 느꼈다. 그러던 차에 1981년. 한양대의 임용제의에 선뜻 손을 잡았다고 한다. 우리학교에 처음 설립되는 학과였던 만큼 그 책임감이나 의욕도 남달랐다고.

“당시만 해도 내가 젊었으니까 제자들에게 애착을 가지고 공부를 시켰지. 애들은 괴로웠겠지만(웃음). 1회 친구들하고는 정도 많이 들고 MT도 같이 데리고 다니고, 한편으로는 꾸지람도 많이 하고 했지. 지금도 1회 학생들하고 교류가 가장 많고 명절이나 스승의 날 같은 때 자주 찾아오기도 해. 그 후에 학생들 중에서도 사제 간의 특별한 정을 느끼는 경우도 많이 있었지만 사실 요즘은 별로 기대도 한해.”

26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면서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26년간 정말 다양한 종류의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스스로에게 깨달은 것도 많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오랜 시간 동안 단 한 가지만은 변치 않고 이어온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가르치고자 하는 열정이었다.

사진= 위클리한양 제공

“과거에는 참 학생들을 가르치려는 의욕만 넘쳤다는 생각이 들어.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욕만 가지고는 안 되겠다 싶었지. 나는 사실 원칙주의자였는데 결혼하고 자식이 생기면서 학생들을 도와주는 입장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어. 국적은 바꿀 수 있어도 학적은 바꿀 수 없는 거야.”

김 교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학생들을 위하는 자상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스승과 제자 간에 사심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다는 김 교수의 말에 따르자면 어쩌면 아버지 그 이상의 존재일지도 모른다. 학생들을 향한 학문의 전수뿐만 아니라 인생의 선배로서, 대학의 스승으로서 학생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도 잊지 않았다.

“지능이 좋은 것이 인생의 성공을 보장해주지는 않아. 일반적으로 많은 학생들이 기업이나 정부 조직에 들어가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데 그런 곳에서 요구하는 인재상은 성실한 사람이야. 성실하다는 것은 자신의 능력대로 충실하게 일을 하니까. 그래서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 성실하라고 강조하는 편이야. 그렇게 하면 남들에게 보이려 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연히 인식하게 돼. 물론 성실만으로는 안 되는 것이 노력이야.

노력이 뒷받침돼지 않으면 그 성실만으로는 살아남을 수 없어. 사회학에 조사방법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조사실습은 일종의 참여야. 우리 말에 ‘백문이 불여 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않나. 하지만 지식이라는 것은 눈으로 한 번 보는 것보다는 실습을 해봐야 해. 그래서 이런 말은 없지만 나는 ‘십견이 불여 일행’이라는 말을 해봤어. 강의 목표는 항상 능력 평가가 아니라 참여를 위한 것이기 때문에 참여에 대한 평가를 하는 편이지.”

이번 학기를 끝으로 김 교수는 정년퇴임을 맞이한다. 그는 아직 더 일할 수 있는 힘이 있고 건강이 허락되는 한 어려운 곳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힘주어 말한다. 그런 정성이 하늘에 닿았을까. 우연한 기회에 본인의 저서 2천5백권을 개발도상국인 스리랑카의 페레다니아에 대학에 기증할 수 있었고 다음해에는 그곳에서 강단에 설 계획까지 있다고 한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느껴보니까 어릴 때는 기다리는 시간이었지. 언제 어른이 되나, 언제 명절이 오나, 이런 것만 기다렸었어. 그런데 이제 세월을 보내는 입장이 되다보니까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 같아. 강단에 있을 때 좀 더 연구하고 좀 더 학생들과 함께 했으면 좋았을 거라는 아쉬움이 많아 남지. 또 아직은 더 일할 수 있는데 그만 멈춰야 한다는 사실이 아쉬워. 이제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일을 찾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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