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의 잠 못 이루는 밤
한양의 잠 못 이루는 밤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5.14
  • 호수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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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떠난 시간. 열기가 가라앉고 고요함만 감도는 캠퍼스지만 가로등을 벗삼아 한양을 밝히는 이들이 있다. 고요하게 세상을 움직이는 그들의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사연을 쫓아가 본다.

PM 10:00

강의실 불이 거의 다 꺼진 시간이지만 오늘은 유난히 사회대를 비롯한 여러 단대의 로비에 많은 학생들이 모여 문전성시를 이뤘다. 내일부터 농활시즌이 시작되기 때문. 제 1학관에서 한창 플랜카드를 제작중인 최광희<공대ㆍ화학공학과 06> 군은 “일할 때 내가심은 콩이 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겠다”고 농활에 임하는 마음가짐을 말한다. 최 군은 이미 네 번이나 농활에 참가한 베테랑이라고.

PM 11:00

늦은 시간 불 꺼진 단대에 들어선 유독 환하게 빛을 밝히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온다. 경비실이다. 24시간 자연대를 지키는 한화택(49) 경비원을 만났다. 한 씨는 “방학 때는 대학원생들이 자연대에 몰려들기 때문에 학기 중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자연대를 밝힌다”며 “덕분에 자연대 정문은 1년 열두 달 문을 잠근 역사가 없다”고 했다. 특히 그는 작년 여름밤 순찰을 돌던 중 있었던 에피소드를 들려줬다.

어두운 복도 사이에 빛이 새는 연구실이 있어 얼굴을 살짝 들이밀었는데 안에 있는 연구진이 자신을 보고 놀라고 본인도 거기에 놀란 적이 있다고. 한 씨는 새우잠을 자며 순찰을 돌아야 하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밝은 모습이었다. 끝으로 한 씨는 자신과 같이 경비원에 몸담고 계신 많은 분들에게 "힘들지만 그럴수록 밝고 건강하게 살자"는 응원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AM 1:00

역사는 밤에 이뤄진다는 사실을 몸으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연구원들이다. 한양종합기술연구동(HIT)의 사람들에게 새벽 1시는 아직 초저녁일 뿐이다. HIT의 한양환경경영아카데미에서 한양사이버대 최선 교수와 한양사이버대 이의영 교수를 만날 수 있었다.

한국생산성학회의 학회 프로젝트 준비 때문에 새우잠을 자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고. 특히 최 교수는 이교수에게 “이사람 이렇게 집에 안들어 가다 집사람에게 안 쫓겨나나 몰라”, “나중에 결혼하면 이런 사람이랑 결혼하지마”라는 핀잔을 받을 정도로 연구실에서 밤샘하는 일이 많다고 한다.

최 교수는 “힘들긴 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분위기에서 연구할 수 있는 HIT의 환경에 감사한다. 중요한건 자신과의 싸움이다. 연구에서 한발신보는 너무나도 어렵지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연구진이 같이 고민하고 싸워가는 것이 한양의 뜻이요, 한양을 진정으로 밝히는 길이다”며 수많은 연구원들을 독려했다. 빨갛게 충혈 된 눈 속에서 그의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HIT 복도에서 중국유학생 홍경화<전자컴퓨터통신 석사과정 2기> 양을 만날 수 있었다. 홍 양은 내일 통신방식의 일종인 미모(mimo)에 대한 세미나 발표가 있어 밤샘 작업 중이다. 그는 “식사 할 때 연구원들끼리 서로 이야기를 많이 하다가도 일단 연구에 돌입하면 조용히 자기 연구만 하는 편이다.

 밤샘 연구 중에는 서로가 예민하다는 걸 알기 때문에 서로 배려하는 것이다"며 연구실에서 살아가는 노하우를 밝혔다 끝으로 그는 “언젠가는 해뜰날이 올 거예요”라며 동료 연구원들을 격려한다.

AM 2:00 

밤 중 한양 캠퍼스에서 가장 밝은 곳은 바로 뭐니뭐니해도 ‘사자가 군것질할 때’라는 이름으로 더 친숙한 24시간 편의점이 아닐까. 그곳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이종태(27) 씨는 낮에 잠을 자고 밤에 일하며 살아간다. 덕분에 연애는 포기했고 친구는 휴일을 이용해서 만난다고.

그는 “다른 곳보다 취객이 없어 편하다. 다만 밤중에도 백 명이 훨씬 넘게 매점을 찾으시기 때문에 바쁘다”며 담담하게 근무조건을 밝혔다. 그는 간단한 우유와 빵 같은 야식거리나 안주용 과자를 야간 인기품목으로 꼽았다.

AM 3:00

직녀관에도 보통 한 층에 다섯 여 동아리방에서 사람들이 각양각색의 사연을 가지고 이 밤의 끝을 잡고 있었다.  영어회화토론동아리인 SCC : 이성실<공대ㆍ기계공학부 01> 군은 “컴퓨터가 있고 집이 먼 데 늦게 일어나도 되는 장점 때문에 동방을 자주 이용한다”며 오늘도 레포트를 쓰기 위해 동방을 지키고 있었다.

한양기우회 : 노탁균<공대ㆍ화학공학과 01> 군과 신경채<공대ㆍ전자통신컴퓨터공학부 99>  군은 좁은 동방에도 불구하고 한 소파에 4명이 잘 수 있는 노하우가 있다며 웃어 보였다. 특히 가장 황당했던 경험은 동아리 문을 안 잠그고 나갔는데 아침 일찍 와보니 부랑자 아저씨가 동방을 지키고 있었던 것. 신 군는 “2006년 복학을 했는데 샤워실이 생겨 있었다. 그 뒤로 더 자주 밤샘을 하게 되는 것 같다”고 한다.

연극 동아리 들꽃 : 동방에 이미 사람이 취침 중이었는데 김형한<공대ㆍ기계공학과 03> 군은 “이 분은 상주하시는 분”라며 웃어보였고 “동아리 특성상 동방에서 밤을 보내는 일이 잦아 15명 까지 수용가능하다"라고 했다.

AM 4:00

노천에서 뜻밖의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백발의 할아버지지만 누구보다 활기차게 운동 중인 김석부(70) 씨는 “40여년간 운동을 하기 위해 4시에 일어나서 한양대학교 대운동장을 돌아다닌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AM 5:00

중앙도서관 지하 1층 제1열람실에는 이 시간에도 40여명 가까이 되는 사람들이 책에 얼굴을 묻고 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대부분 고시나 곧 있을 의대 시험 준비로 한창이었다. 이 시간까지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른 등교를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아침신문을 배달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한양의 밤이 끝자락에 왔음을 절감했다.

AM 6:00

신문사에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으니 학생회관 경비원인 이흥태(59) 씨였다. 이씨는 “뭐한다고 이렇게 늦은 시간 까지 있어요?”라는 말을 건냈다. 이 말은 한양의 밤을 밝히는 사람들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가 그토록 해 왔던 말이 아닌가. 뜻밖의 질문을 받으니 감회가 새로웠다.

 아침 6시. 신문사는 특집호 작업을 위해 밤새도록 학생회관 5층을 환하게 밝혔다. 장장 여덟시간의 밤샘 대장정이 녹녹치만은 않았다. 왕십리가 불타는 이 밤, 한양을 밝히며 밤샘 대장정을 감행하는 모든 이들에게 여명이 예비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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