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③
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③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5.14
  • 호수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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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심전심'기자, 기자를 만나다-제57기 박미소<행정학과 02>동인

평범한 세일즈맨이 우연히 전지전능한 권한을 가지게 되는 ‘브루스올마이어티’. 환상적이지만 현실에선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이야기다. 왜냐하면 인생은 헐리웃영화가 아닌 롱테이크 샷의 예술영화와 닮아있으니까. 하지만 예술 영화에도 알프레도 히치콕 감독의 한컷과 같은 명장면이 있게 마련이다.

인생의 9회 말 투아웃 역전만루홈런 같은 명장면을 잡아내는 일이 바로 기자의 몫이 아닌가 싶다. 월간중앙에 있는 한양대학보 57기 박미소 동인을 만나 기자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담론과 같은 기자로서 공감의 시간을 가졌다.

행정고시를 준비하기 위해 한양대학보를 도망치듯 나왔던 박 동인은 평소와 다름없이 헌법책을 들고 중도로 향했다. 고시생의 생활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고 슬슬 그 생활에 지쳐가고 있었다. 공부를 하던 중 우연히 펼쳐들었던 중앙일보가 박 동인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대학생 인턴기자를 모집하는 광고를 보는 순간 뜻하는 바가 생겨 그길로 헌법책을 덮고 중도를 내려와 한양대학보로 다시 향했다.

"처음부터 저는 기자라는 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오만한 직업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기자는 굴욕적 직업이다. 남에게 숙여야 하는 직업이다.”

박 동인은 새내기시절 처음 한양대학보 문을 두드렸을 때도 거창한 이유나 포부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동아리에 대한 이야기 도중 “정장이 잘 어울릴 것 같다. 기자를 해보면 좋겠다”는 친구의 한마디가 그녀를 한양대학보로 이끈 것이다.

“어쩌면 굉장히 불순한(?) 동기였다”

하지만 함께 행정고시를 준비하던 친구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불순한 동기로 시작했던 기자로 돌아 온 박 동인. 분명 기자란 것이 그만한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그녀에게 한양대학보 시절의 모습을 물어봤다.

“잘 기억을 못하는 성격이다.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왕십리 앞 상가를 3일 내내 발품 팔아가면서 돌아다녔던 기획기사다. 왕십리 상가의 분석을 통해 교양인이 곧 대학인이라는 기존의 고정관념을 완전히 깬 내용의 기사였다. 힘들기도 했고 내용도 만족스럽다.”

그 시절 문화부 기자로 활동하던 박 동인에게 단골 만화방의 아르바이트생이 영화평을 잘 보고 있다고 아는 척을 해왔다. 또, 마감을 마친 피곤한 몸을 이끌고 학교 앞 즉석 떡볶이 집을 갔는데 주인아줌마가 한대신문을 보고 칭찬을 해줬단다.

한양대학보에서 3년을 일하면서 누가 알아준 일이 딱 앞의 두 번인데 그게 그렇게 소중하다며 웃음 짓는다. 신문사와 기자에 대해 비관론으로 일색한 박 동인이지만 대학기자로 활동하던 과거를 들려주는 그녀의 모습을 보니 언론계의 활동에 대해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는 정이 느껴진다.

박 동인이 재학 중에 월간중앙에 들어가는 영광을 얻기까지의 과정은 어쩌면 눈물겹기까지 하다.

“대학 생활동안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그러나 미래에 하고자 하는 일을 하자고 철칙을 세웠다. 그러면서 했던 일이 경력이 됐다” 박 동인은 한양대학보 외에도 홍모용 잡지사에서 프리랜서기자로 활동했고, 영현대 리포터 편집장을 맡기도 했다.

국제적인 통신사인 로이터 통신의 인턴자리가 났을 때는 정기적인 수입이 보장됐던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포기하고 3주간의 인턴을 하기위해 달려갔다고 한다. “기자가 하고 싶다면 일단 두 가지. 먼저 글쓰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만나는 것을 좋아해야 한다.”

그러나 정작 박 동인은 사람 만나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수습 초기에는 남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수없이 망설였다. 남한테 폐끼치는 것을 싫어하는 성격이라 부탁하는 것 자체가 싫었다. 하지만 프로 기자로서 부끄러움을 극복하는 노하우가 있을 것 같아 질문을 해 봤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궁지에 몰리면 하게 돼 있다”  명쾌하고도 현실적인 대답이었다. “하지만 사람과 만나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기자라는 것이 열심히 사는 분만 만나기 때문에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매번 다짐한다”

한 번은 박 동인이 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칸막이가 쳐진 작은 책상에 빡빡하게 앉아서 하루 종일 밖에 나가지도 않는 모습에 ‘이건 내가 할 일이 아니다’라는 걸 느꼈단다.
“기자는 자유롭게 움직이며 일을 할 수 있고 다른 조직에 비해 내 주장을 더 강하게 표출할 수 있어 매력적이다”

인터뷰 전, 부록 표지촬영에 동원돼 시청에서 방독면을 써야했다는 박 동인. 그녀는 장차 한 분야에 전문적인 기자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한양대학보로부터 시작되는 인생을 살고 있는 선배, 박 동인의 기자생활에 9회 말 투아웃 역전만루홈런이 함께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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