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②
학보사 동인 3인 3색 동인 인터뷰②
  • 박용진 기자
  • 승인 2007.05.14
  • 호수 12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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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독자가 읽는 대학신문 되길-39기 정남구<법학과·86>동인 인터뷰

그때 그 시절…

1986년, 87년은 학생운동이 심했던 시절이라서 학교에 학생들이 남지 못하도록 밤이 되면 문을 다 닫았어요. 그래서 밤에 술 먹고 신문사 들어가서 자려면 3층에서 수통을 타고 기어 올라와 미리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왔죠.

86년, 87년에는 참 엄격했어요. 원래 학교에서 자는 걸 허용하지 않았지만 일한다는 핑계로 신문사에서 살았죠. 신문사에서 저 말고도 꽤 많은 기자들이 살았죠.

학교신문은 학생과 학생, 학교와 학생, 세상과 학생을 연결하는 매개체라고 생각해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헤르메스 있죠? 신과 인간의 말을 통역하는 자요. 그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우리 때는 학교를 홍보하기 위한 신문이냐 아니면 사회성 짙은 독자적인 신문이냐, 이런 걸 가지고 많이 고민했어요. 우리는 학교 홍보신문은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좀 과도했던 것 같아요. 86년, 87년은 물론 학생들의 주요 활동이 학생운동이었으니까 그랬다고 생각해요.

중요한건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되는 것

이론적으로 독자의 수요에 부응하지 못하는 신문은 죽게 돼있어요. 그들의 수요에 맞춰야 되요.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맞게 의사소통의 매개체가 되라는 겁니다. 학생들에게 관심이 있는 건 뭐겠어요. 취업? 하지만, 취업정보는 밖에도 많잖아요. 다만 대학신문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학교 학생들의 취업실태나, 선배들을 통한 취업세계들을 알려줄 수는 있겠죠.

대학신문의 역할은 독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고 거기에 대한 논평을 해야 하죠. 예를 들면 학교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이나, 정부나 국회가 학생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책들을 정확하게 알려주고 논평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또, 학교 주변에 있는 밥집, 음식점, 술집, 하숙집정보 이런 거 정말 중요하죠. 대학 신입생들이 들어왔을 때 학교주변정보에 대해 두 면정도를 할애해서 제공하면 얼마나 좋은 정보겠어요.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학생들에게 필요한 콘텐츠를 중심으로 담는다는 거죠. 그래야 대학신문이 존재의 의미가 있죠.

대학신문이 읽히려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기본적으로 신문은 독자가 읽지 않는다면 가치가 없는 신문이죠. 학생과 학생, 학교와 학생, 세상과 학생의 소통이죠. 특히, 가장 중요한건 학생과 학교이구요. 학생들이 생활하는 기숙사에는 문제가 없는지, 좋은 자취방을 쉽게 구하는 방법은 뭔지, 학생들이 어떻게 통학을 하고 있는지,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는 어떤지, 이런 것들이 대학신문의 기본인거 같아요. 아, 등록금 문제도 빼 놓을 수는 없겠죠.

이번에 버지니아 공대사건을 대학신문이 가장 먼저 썼잖아요. 아, 그런 걸 당연히 대학신문이 써야죠. 대학신문은 세상사에 관심을 가진 학생들 전체에게 통용되는 이야기들을 다룰 수 있죠. 정부에서 대학과 관련된 정책, 제도들을 다룰 수 있어요. 또, 학교의 목소리나 학생들의 목소리를 대변해줄 수 있는 거구요. 다시 철저히 강조하는 건 의사소통의 매개체라는 겁니다. 또, 기자는 단순한 매개체로 멈추지 말고, 논평을 통해 참가자가 돼야 해요.

반박 글을 받을 때의 기분
사설이나 칼럼을 쓰다 보면 반박 댓글이 달리거나 메일을 받을 때도 있어요. 얼마 전 아침햇발에 ‘초등학생 2.5%가 성경험?’이라는 글을 썼다가 반박 글을 받기도 했죠. 이런 반박기사 역시 합리적 반박일 때는 소통과정의 일부이니까 괜찮은데, 인격적 모독이나 오해에서 비롯되는 일방적 쏟아 붓기가 되면 상당히 괴롭죠. 특히, 인터넷 시대가 되면서 그게 더 힘들어요. 지난 11일에 쓴 사설도 일방적인 쏟아 붓기 식의 댓글이 많이 달리더군요.

하지만 이제는 많이 익숙해졌어요. 집중적으로 그런 댓글만 쏟아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아니까 무게감 있게 생각하지 않아요. 하지만, 실명으로 반박을 제기할 때는 합리적 소통을 해요. 반박기사를 받지 않기 위해 신중하게 쓰도록 노력해야죠.

한겨레를 말하다

국민들이 돈을 모아서 신문사를 만들었다, 참 세계사에 유래가 없는 이 신문사를 19년을 이끌어 온건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이 힘은 신문으로서의 제 기능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사실을 숨기지 않았고, 목적의식 때문에 사실을 왜곡하지 않고, 사실을 넘어 진실을 추구했기 때문에 한겨레가 살아 있다고 생각해요.

이념이나 가치지향보다 헤르메스로서 제구실을 하는 매체를 추구해야 되요. 나와 같은 견해를 가져서 좋아 하기보다, 나와 생각이 설령 다르더라도 사실을 추구하고 진실에 접근하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을 높이 쳐줬으면 좋겠어요. 젊은 운동권들은 한겨레가 맛이 갔다라고 말하기도 하던데, 그 맛이 무엇인지 모르겠어요. 한겨레신문의 맛은 사실과 진실을 추구함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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