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애 소녀의 시낭송
어느 장애 소녀의 시낭송
  • 한양대학보
  • 승인 2007.05.04
  • 호수 12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하늘이 눈부시게 푸르른 가을 어느 날 오후. 우리학교 안산배움터 신학생회관 소극장에서 있었던 가슴 뭉클한 사건(?)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 날은 안산학술정보관의 문학행사로 전국적인 규모의 시낭송 경연대회 예선이 열리고 있었다. 초등학생, 중?고등부, 대학?일반부까지 참여하는 대회의 예선이었다. 초등학생부터 시작했는데 참가자 중 몇 명의 어린이는 그 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마음껏 뽐내며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자신의 애송시를 멋지게 낭송하여 많은 갈채를 받았다.

사회자가 다음 차례의 학생을 불렀을 때, 예쁜 색동옷을 곱게 차려 입은 한 어린소녀가 잘 걸을 수도 없어 엄마 손을 붙잡고 간신히 무대 위로 힘들게 올라오고 있었다.

그 아이의 표정은 무엇이 그리도 신나는지 환하게 웃음 지으며 당당하게 마이크 앞에 서서 청중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자신이 애송하던 시를 낭송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 이게 어찌된 일인가?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그 어린이의 시낭송을 들을 수가 없었다. 채점을 하는 심사위원들조차도 무슨 시를 낭송하는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대부분의 심사위원들은 펜을 놓고 채점할 생각도 하지 않은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시낭송대회에 출전한 참가자들과 시낭송을 듣기 위해, 자식을 응원하기 위해 온 학부형들과 학교 선생님,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이며 숙연한 자세로 그 어린이가 무대에서 들려주는 시를 귀가 아닌 마음으로 듣고 있었다. 몇몇 사람들은 눈시울을 적시며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용히 닦고 있었다.

예쁜 색동옷을 입은 어린 초등학생은 시종일관 흔들림 없는 자세로 시를 낭송한 후 심사위원과 청중들을 향해 정중히 인사를 하고 엄마와 진행자의 부축을 받으며 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그 어린 학생은 당당하고 침착했다.

아무도 자신의 시 내용과 목소리를 알아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겠지만 감정과 시를 표현하고자 최선을 다했기에 그 어린이는 담대했고, 자신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경청하는 사람들의 진지한 태도에 더욱 더 용기와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그 어린이는 Y초등학교 3학년 L양인데 생후 16개월 되는 해에 교통사고를 크게 당하는 바람에 오른쪽이 마비되고 언어장애를 가져왔다고 한다.

사 주최 측에서는 채점 여부와 관계없이 이러한 아픔과 장애를 초월해 꿋꿋한 정신으로 자신 있게 표현한 이 어린이의 용기와, 그 부모의 훌륭한 참여정신에 감동을 받아 시낭송 경연대회 이래 처음 있는 특별상을 수여하기로 결정했다.
정말 눈시울이 찡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한편의 드라마 같은 장면이었다. 우리 모두는 시상식 날 특별상을 수여한 이 어린이와 부모님에게 뜨거운 박수와 찬사를 보낼 수 있었다. 나는 평생 잊지 못할 이 아름다운 추억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어 행복하다.

안산학술정보관 김태진 부장<인문사회과학정보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