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와 싸우는 ‘대입3불’ 공방
그림자와 싸우는 ‘대입3불’ 공방
  • 한대신문
  • 승인 2007.04.08
  • 호수 12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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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에서의 ‘3불 정책’을 둘러싸고, 대학과 정부 간의 공방이 치열하다. 그러나 이러한 논쟁을 차분하게 들여다보면 실체가 드러나지 않은 그림자나 허깨비를 대상으로 서로 싸우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다.

최근 서울대 장기발전계획위원회와 입학본부장 그리고 한국사립대학총장 협의회 등에서는 이제까지 금지해 왔던 기여 입학제, 고교등급제, 본고사 금지 등 이른 바 3불 정책을 폐지해야만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에 발끈한 교육인적자원부는 기여 입학제는 금전적 대가와 대학입학 기회를 교환하자는 것으로 이를 허용하면 계층 간 교육기회 격차가 벌어지게 되고, 고교등급제는 중·고교 서열화와 과열 진학경쟁 등의 부작용을 유발시키며, 본고사는 고교교육과정의 파행은 물론 사교육 팽창을 부추기게 되기 때문에 절대 허용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통령후보로 거론되는 정동영의원은 기여 입학제는 “맞돈을 주고 대학 입학 허가를 교환하자는 것으로 국민 정서와 관행상 용납하기”어렵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이 대목에서 의문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정말 대학들은 사회적 부작용과 폐해는 고려하지 않고, 대학의 자율이라는 이름으로 ‘맞돈을 받고, 대학입학을 허갗해 주겠다는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시절 교육개혁위원회는 부족한 대학재정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기여 입학제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그 이후 정부도 구체적인 시행방안을 마련한 적이 없고, 대학도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상당한 시일이 흐른 후에야 연세대가 기여 입학제 시행을 준비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최근 들어 고려대 등을 포함한 여러 사립대학들도 기여입학제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어느 대학도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기여 입학제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적은 없다. 더욱이 정부가 주장하는 방식대로 기여 입학제를 시행하겠다고 나선 대학은 이제까지 단 한군데도 없었다. 고교등급제나 본고사도 이 점은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고교등급제는 전국의 고등학교를 서열화한다고 주장하지만, 아직까지 이러한 방식의 고교등급제를 고려하고 있거나 시행하겠다고 발표한 대학은 하나도 없다.

이 점에서 ‘3불 정책’의 시행여부를 둘러싸고 대학과 정부 간에 벌어지고 있는 찬·반 논쟁은 허깨비 혹은 그림자를 붙들고 씨름하는 꼴이다. 실체는 밝혀진 바 없는데 그림자만 가지고 이것은 이렇게 생겼으니 없애야만 한다고 주장하거나, 절대로 없애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는 셈이다.

‘3불 정책’이 이러한 허공에 뜬 논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먼저 정부가 ‘3불 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의 장을 허용해야만 한다. 대학들로 하여금 기여 입학제, 고교등급제 그리고 본고사 등을 어떤 방식으로 시행할 것인가를 밝히도록 해야 한다.

기여 입학제에서 기여란 어떤 종류의 기여를 말하며, 어느 정도의 기여를 해야만 하는지, 그리고 기여자 혹은 기여자의 자손들을 어떤 방식으로 입학을 허가해 줄 것인지 등을 포함해서 관련된 여러 사항들을 상세하게 밝히도록 해야 한다.

그런 연후에 과연 그러한 방식의 기여 입학제가 대학발전이나 우리 사회를 위하여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해 다양한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폭 넓게 수렴해야만 한다.

이 과정을 통해 기여 입학제의 실체를 명백히 밝히고, 사회적 공론의 과정을 통하여 장·단점을 살펴보아 시행여부를 결정하면 된다. 고교등급제나 본고사도 마찬가지로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시행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실체도 분명하지 않은 ‘3불 정책’에 대해 찬·반 논란만 벌이는 것은 소모적인 논쟁일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을 부추길 뿐이다. 정부의 현명한 결단을 촉구한다.

사회교육원장 정진곤<사범대·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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