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모리 장단
중모리 장단
  • 한대신문
  • 승인 2007.03.26
  • 호수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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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음악 교과과정에 중모리 장단이 나온다. 이 중모리 장단은 간단한 민요 뿐 아니라  규모가 큰 대부분의 민속음악에 중요하게 쓰인다. 규모가 큰 민속음악으로 판소리나 산조를 들 수 있는데, 여기에는 중모리 뿐 아니라 진양조, 중중모리, 굿거리, 엇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의 장단이 쓰인다. 이들은 모두 중모리의 변형이다. 중모리는 말 그대로 중간 빠르기이며 이 보다 빠르거나 느린 장단에 대하여 기준 또는 중용의 의미를 갖고 있다. 중모리는 이렇듯 민속음악 장단의 근간을 이루기 중요한 장단이다.

중모리는 12박이고 3박이 4번 순환하면서 한 장단을 이룬다. 이는 1년이 12달이고, 3달 단위로 춘하추동 4계절이 바뀌는 것과 그 구성이 닮아있다. 따라서 중모리는 봄 3박, 여름 3박, 가을 3박, 겨울 3박으로 나눌 수 있다.

중모리를 귀담아 감상해 본 사람이라면 가을 3박의 마지막인 9째 박에 이른바 대점(大點)이라는 악센트가 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씨앗이 영글어 곡식에 되고 그 씨앗이 땅에 떨어져 다음해를 준비하는 가을의 정점인 11월(농사일은 3월부터 봄의 시작으로 따짐)과 일치한다. 장단의 존재 의미가 응집된 것으로서, 하나의 생이 그 삶의 목적을 달성한 절정의 극치라는 의미 부여할 수 있다.

12월에서 2월까지를 상징하는 4번째 3박은 황량한 겨울인 듯싶지만, 이른바 ‘미는 각’이라는 숨은 숨결을 내재하고 있다. 정형화한 패턴도 없을 뿐 아니라 연주를 할 때 꼭 치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느낌은 ‘미는 각’이라는 말 그대로 다음 장단으로 이끌어 가는 힘이 있다. 이렇듯 움츠림 속에서 미동하던 장단의 마지막은 3월 즉, 첫째 박에 이르러 환희의 합장단(合長短)으로 그 일성을 토하며 존재를 세상에 알린다. 희망이다. 앞으로 다가올 여름 3박, 가을 3박의 풍성하고 활기 넘치는 앞날을 예견하며 세상을 향해 외치는 희망의 소리이다. 이어 나타날 승(承), 전(轉), 결(結)을 위한 기(起)가 이 3월에 있는 것이다.

그리스어로 흐르는 것이라는 뜻을 가진 리듬의 의미는, 호흡, 일에서의 주기, 하루, 계절의 변화 등 삼라만상의 생명 속에서 일어나는 긴장과 이완의 질서를 이른다. 장단이 어느 정도 도식적인 조직이라면 리듬은 그 틀 속에서 독자적이며 자유로운 모습으로 변형한다. 이는 우리 삶에서 하나의 목적으로 추구하는 조화의 아름다움(美)과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인간의 운동 속에 질서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각별하며, 감각에서의 리듬과 조화는 즐거움에 연결된다는 플라톤의 말은, 이런 리듬의 의미를 함축해서 표현한, 참으로 적절한 말이다.        

리듬의 사이클은 다시 희망의 3월에 이르렀다. 첫 학기를 시작하며 생기에 찬 우리 캠퍼스에도 장단의 첫 합장단(合長短) 소리가 이미 울려 퍼졌다. 그 리듬 속에서 자아에 대한 율동의 조화를 감지하면서, 우리에게 다가올 리듬진행을 아름다움으로 마지하자. 그것이 1년,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선 하나의 인생이든 또 다른 하나의 이벤트이든 우리 모두 예술적 귀결로 이끌어 가기를 바라 마지않는다. 거기에 ‘덩- 더러러러-’ 추임새까지 아우른다면 더욱 멋들어지리라.                  

이종구<음대.작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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