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그림, 아는만큼 보인다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3.18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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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는 그림의 세계로

초현실주의의 거장, 르네 마그리트는 안방에서 몇 발짝 떨어지지 않은 작업실을 갈 때도 출근하듯 정장차림을 했다. 잔혹미술의 악마, 크리스 버튼의 졸업 작품은 라면상자만한 궤짝에 몸을 구기고 들어가 5일간 물만 마시고 지내는 것이었다.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그림을 향해 최초의 악수를 건내는 책「그림, 아는만큼 보인다」에는 동서고금의 명장들의 숨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이 책은 미술책 안에 있는 미술사?기법과 같은 고리타분한 정론에서 한걸음 물러서서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미술을 말하고 있다. ‘귀는 먹었지만 붓질은 용한’ 화가 김기창의 「정청」을 둘러싼 애틋한 사랑이야기, 피카소의 역작 「게르니카」를 향한 평론가들의 기괴한 설명 등을 따라가다 보면 단순히 미술작품을 인지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이 이웃집에서 벌어진 스캔들이라도 되는 듯 비틀어 볼 수 있는 쾌감을 느끼게 된다.

그림을 보는 안목을 기르기 위해 이 책은 ‘작가 이야기’, ‘작품 이야기’, ‘더 나은 우리것 이야기’, ‘미술동네 이야기’, ‘감상 이야기’, ‘그리고 겨우 남은 이야기’ 라는 주제로 미술을 설명하고 있다. 각 주제 안에는 미술계에 흩어진 좁쌀 같은 이야기가 옴니버스식으로 구성돼있다. 이런 식의 설명으로 지나치게 흥미만을 자극하고 두서가 없어 전달하는 바를 모르겠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단순한 이야기의 나열이라고 보기에는 미술과 정치와의 관계나, 교수화가가 판치는 미술계를 고찰하는 부분은 교양인이 되기 위해 감상해야 하는 대상으로써의 미술에 대한 통념을 깨고 우리의 시각을 넓혀준다. ‘「무제」라는 이름표가 붙은 그림이 과연 언제까지 무죄인갗에서부터 ‘대중예술의 허와 실’에 관한 부분 역시 타자였던 독자를 미술 안으로 끌어들여 주체적으로 생각해 볼 화두를 던진다.

또한 이 책은 동?서양의 미술을 같은 무게로 취급하고 있다. 미치광이 화가로 유명한 두 화가, 귀 없는 반 고흐와 눈 없는 최북을 비교했을 때 현재 우리나라 화가가 얼마나 도외시 되고 있는지 피부로 직접 느끼게 해준다.

이 책은 딱딱하고 정체돼 있는 미술 교양서가 되는 것을 거부한다. 작가 특유의 재치 있는 글 솜씨와 다양한 분야의 해박한 지식을 바탕으로 역동하는 미술계를 다루고 있다. 알면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보게 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이 책은 미술을 속속들이 알고 사랑하기 위한 오솔길이 되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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