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하지 못하면 좌절하게 된다.
거절하지 못하면 좌절하게 된다.
  • 강명수 기자
  • 승인 2007.03.18
  • 호수 12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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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위해 모든 걸 다했는데, 결국은 아무것도 남지 않아요. 다른 사람들한테 잘해주니까 으레 그런 줄 알고 이젠 별로 고마워하지도 않아요. 그런데도 거절을 못하겠어요”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병이다.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거절을 잘 못하는 경향이 있다. 다른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봐 걱정돼서, 저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서 등 거절하지 않는 명분은 다양하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거절하지 못하는 것도 일종의 병이며 콤플렉스라고 단언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는 모두가 자신을 좋아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조바심에서 비롯된 것으로 결국 정말 중요한 자기를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들의 욕구를 채워주려는 강박관념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저명한 상담심리학자인 로저스(Rogers)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사람으로부터 ‘긍정적 존중’을 얻고자 하는 욕구가 있다고 한다.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이 원하는 것을 해주는 대신 긍정적 존중, 즉 칭찬을 받는다. 그러나 칭찬은 단기적이기 때문에 결국 마약에 중독되는 것처럼 칭찬에 중독되어 칭찬받기 위해 점차 무리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거절하지 못하고 어떻게든 남을 기쁘게 해주려는 사람들은 오히려 자신의 모습에서 만족과 기쁨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어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해리엇 브레이커 박사는 베스트셀러 <남 기쁘게 해주기라는 병>에서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남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아니라 자신을 불행하게 만드는 재능이라고까지 단언한다.

“누가 부탁할 게 있다고 그러면 그냥 ‘알았어, 내가 도와줄께’란 말이 저절로 나와버려요. 그리고 정말 왜 그랬는지 자책하는데도 또 그렇게 돼버려요, 다른 사람들이 넌 왜 그렇게 부탁을 잘 들어주냐고 물어보면, ‘그냥 내가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말은 하지만…”

거절은 당신의 당연한 권리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잘 들어주거나, 주위 사람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것은 성숙한 인간의 자세다. 문제는 그 사람들 중에 자기 자신도 들어가 있는가 하는 점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자신이 상황을 통제하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라고 느껴질 때 불행해진다. 다른 사람의 부탁을 거절하면서 안쓰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비슷하지만, 단지 그 감정 때문에 나 자신의 의지를 굽히느냐 마느냐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거절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기서 내세울 자신의 의지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많은 사람들은 거절하지 못한 후 일하는 게 귀찮다기보다는 그 당시 거절하지 못한 것을 자책한다. 그것은 거절이 내 정체성을 확립하고 나와 상대 모두에게 나 자신의 독립성과 중요성을 확신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절하지 못하는 것은 표면적으로는 시간과 노력을 뺏기는 일이지만, 심층적으로는 자신의 원칙과 정체성을 짓밟고 상대의 말에 복종하는 무력한 존재로 격하시키는 행위가 된다.

거절을 한두 가지의 테크닉으로 해결될 일이라고 가볍게 생각해선 안된다. 속으로는 거절하고 싶지만 거절하지 못하는 태도는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본질적인 삶의 자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거절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만드는 사고와 마인드가 우선해야 한다. 상대방의 기분을 배려하면서 거절하는 고도의 예절이 필요한 것은 그 다음이다. 명확한 어조로 분명히 거절하거나 부드러운 뉘앙스로 의미를 전달하는 기술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라고 자신을 속이지 않고, 자기 자신의 의지를 명확히 드러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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