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그대에게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그대에게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3.11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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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부 기자가 되고 난 후 부쩍 중도 출입이 잦아졌다. 어린 시절 수많은 청춘 트렌디 드라마를 섭렵하면서 키워온 로망, 도서관에서 싹트는 사랑은 이미 접은 지 오래다. 대신, 오늘도 나는 기사를 위해 고요한 숨소리와 약간의 긴장감이 어우러진 공기 속을 가르며 심리학·과학·사회학 관련 서적들 앞을 서성거렸다.

행당산 정상에서 위용을 자랑하고 있는 백남학술정보관. 장난감 병정들처럼 일렬로 정렬해 있는 지식의 보고들도 한 몫 했겠지만, 백남학술정보관이 풍기는 아우라의 핵심은 지하에 위치한 열람실이다. 취업의 좁은 문을 통과하기 위해 한마당에서 펼쳐지는 열띤 동아리 홍보 경쟁도 뒤로 하고, 눈도 닫고 귀도 닫은 채 오로지 두 눈만 책속에 박고 있는 그들이 열람실을 지키고 있기에 중도는 열정으로 후끈후끈하다. 그러나, 이들의 노고를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한 취업의 문은 나날이 좁아져만 간다.

올해, 인사고용인원은 26만명 정도로 작년 보다 4만명이나 줄었다고 한다. 악재는 항상 겹친다더니 고용악화로 소비가 둔화되어 경제성장률도 4.5%정도에 머물 것이란 전망도 있다. 희망차게 새학기를 시작해야겠지만 2007년 취업 기상도가 ‘흐리고 비’라는 우울한 기사만 어쩐지 눈에 띄는 게 영 맘이 불편하기만 하다.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 ‘십장생(10대도 장차 백수가 되는 것을 생각해야한다)’같은 재기 넘치는 신조어에도 쉬이 웃을 수가 없다.
이번 행정고시에 합격한 송오영<사회대·행정학과 02>선배가 밤늦게 다정히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과방으로 오셨다. 고시 시절 가장 힘들었던 일이 무엇인지 물어봤더니 밥을 혼자 먹는 게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평균 12시간 씩 공부를 했는데 혼자 밥을 먹기 싫어 하루 한 끼씩만 먹었단다. 부대찌개까지는 혼자 먹어봤지만 고기를 혼자 먹을 수 없었다는 게 가장 슬펐다고 우스겟 소리로 이야기 했지만 이보다 더 진솔하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으랴.

밤 10시 30분. 밤늦은 시간이지만, 중도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서부터 전화 받는 사람, 방석을 들고 올라오는 사람으로 북적댄다. 열람실 안에 들어서니 두자리에 1명꼴로 졸릴 눈을 비비며 공부하는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노트북으로 이어폰을 꽂고 인터넷강의를 듣는 사람·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 신문사도 오늘, 밤을 잊고 1241호 작업을 할 테지만 그들도 오늘 중도의 불을 환하게 밝힐 것이다. 왕십리가 불타는 이 밤, 학교 안에 갇혀 씨름해야하는 처지가 같아 그런지 묘한 전우애를 느낀다. 당당히 중도와 안녕을 고하는 날까지 중도 열람실에서 이 밤의 끝을 잡고 있는 많은 이들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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