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담는 노래를 만드는 가수 The film
추억을 담는 노래를 만드는 가수 The film
  • 김소희 기자
  • 승인 2007.03.11
  • 호수 12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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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어 송 라이터 ‘The film'(본명 황경석)은 우리학교 신방과 97학번 동문이다. 재학 때 2001년 제 13회 유재하 가요제에 입상하여 1집에서는 「괜찮아」라는 곡으로 사랑받았고, 2집에서는 타이틀곡 「A형이잖아」로 일명 혈액형 발라드를 선보였다. 지난달 22일에는 디지털 싱글 「안녕」을 발매했다. 싱글에서 타이틀곡 ‘안녕’ 외에 유리상자의 박승화 씨가 참여한 「눈물이 앞을 가려」도 들을 수 있다. 그를 눈발이 흩날리는 지난 7일 대치동 녹음실 근처에서 만났다. <편집자주>

나의 음악, 나의 추억

사람을 만나면 이름을 가장 먼저 묻는다. 가수로서의 그의 이름 ‘The film’은 어떻게 짓게 됐는지 물어봤다.

“‘The film’이라는 예명은 대학교 때 가요제 나갈 때 필요해서 지은 이름이에요. 요즘엔 솔로가수라도 이미지화를 위해서 예명을 많이 짓잖아요. 가수 비의 경우에도 정지훈이라는 본명을 두고 이름을 지었듯이 저도 본명 황경석 말고 이미지화를 하고 싶었어요. ”

2집 앨범의 부제를 보면 그의 이름의 뜻을 알 수 있을 듯하다. ‘영화 같은 음악의 시작’. 한 편의 영화 같이 다가오는 음악이 그가 하고 싶은 음악인 걸까.

그는 작사, 작곡, 편곡 등을 모두 소화하는 싱어 송 라이터이다. 그는 요즘에는 엄밀한 의미의 싱어 송 라이터가 없는 것이 아쉽다고 했다. 짧은 시이기도 한 가사를 그는 어떠한 방법으로 쓸까.

“노래 하나가 내 일기 중의 하나 같아요. 며칠까지 곡을 써야 겠다고 곡을 쓰는 게 아니라 매번 앨범을 준비하면 이번엔 어떤 일기를 꺼낼까 생각하면서 하나하나씩 꺼내요. 2집 앨범 중에 이루마와 같이 부른「일산호수공원」이란 노래가 있어요. 이 노래도 제가 가진 하나의 추억을 꺼내서 보여준 거예요. 그 가사에 보면 ‘쪽빛 하늘을 따라 내 맘도 너와 함께 마음을 따라/신촌 어느 모퉁이 구석진 골목에 옛스런 모습 가진 그 역을 찾네’란 가사가 있어요. 혹시 신촌역이 어디에 있는지는 아세요?”

지하철 신촌역이 곧 떠오른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신촌역은 기차역이었다. 이제는 문을 닫아버린. 지금은 헐어버리려고 했다가 역사를 보존하자고 해서 불쌍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는 덧붙여 자신이 노래하고 싶은 것들은 어떤 것이 있는지 말해줬다.

“‘옛 추억의 현재진행형’이라고 제 음악을 표현한 적이 있어요. 난 현재의 음악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이 흑백필름 같다고들 해요. 전 기록하는 것을 좋아해요. 내 오래된 일기장 속에서 옛것들을 버리고 싶지 않아요. 2집 앨범에 있는 ‘일산호수공원’, ‘공중전화와 호출기’는 그런 면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곡이죠. 저는 공중전화와 호출기에 대한 추억이 많아요. 거리를 지나가면서 공중전화를 보면 저기가 되게 낭만적인 곳이었는데 지금은 다 없어지고 그냥 지나치고 하니까 슬퍼져요. 그런 추억이 담긴 것들을 잃는 게 싫어요. 어차피 미래에 대한 얘기는 많이 하니까 전 그런 잊혀져 가는 것들에 대해서 노래하고 싶었죠. 성격이 좀 아기자기 해서 옛것들이 많이 들어가는 것 같다.”

그의 노래 중 사랑이나 이별에 관한 노래는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면서 가사를 쓰지 않을지 궁금해졌다. 「난 A형이잖아」는 특히 그가 실제로 A형이어서 겪은 일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이 들기도 한다.

“가사 쓸 때 70프로는 제 이야기이고 30프로는 가공이에요. 가공은 이상향의 모습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죠. 팬들이 제 노래가사를 보고 너무 착하신 것 같다고 해요. 제가 그렇게 착한 사람이 아닌데 착하게 만들려고 하는 거죠. 자기가 되고 싶은 방향으로 써지는 경향이 있어요. 슬픈 건 더 슬프게 만들기도 하구요.

70프로의 제 이야기도 실제 있었던 일을 담은 건 아니죠. 가사 속에 현상이나 경험이 나온다기보다 성격이 나오는 것 같아요. 「난 A형이잖아」도 제 사랑 방식을 담은 가사예요. 저에게 있어 첫사랑이든 마지막 사랑이든 간에 제 성격은 그대로고 사랑하는 방식은 비슷하니까요.”

“음대에 가면 음표에 갇힐 것 같았죠”

학부 시절 전공은 신방과인데 어떻게 음악의 길을 가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대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도 음대에 가지 않은 이유는 음대에 가면 음표에 갇힐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대중음악을 하려면 가사를 쓰고 자기가 사는 얘기를 해야 되요. 그러려면 평범하게 살아봐야 한다고 하더라구요.

신방과에 온 건 작가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방송작가 말구요. 정통 작가. 신문에도 관심 있었어요. 언론고시도 생각해봤고.

음악 하는 게 기자의 성격과 비슷해요. 저는 저한테 기자의 재능이 있다고 생각해요. 음악 하는 것도 기자도 작은 관찰력이 중요하거든요. 가사를 쓸 때 사람의 감정이나 그 당시의 현상, 풍경을 잘 기억해서 그게 하나하나 담겨야 되요. 작곡을 할 때도 완전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 취합을 해야 하는데, 이게 굉장히 끈질긴 일이거든요. 체력을 요구하는 집요한 일이죠. 기자도 집요해야 되잖아요. 저는 제가 기사를 써도 잘 썼을 거 같아요.”

한양대라는 공간이 그에게는 꿈과 연관해서 어떤 의미가 됐을까.

“아무래도 ‘유재하 가요제’가 가장 연관이 될 듯싶은데…· 고등학교 때 신문반 이었는데 첫 기사를 쓴 게 ‘유재하 가요제’였어요. 그런데 어떻게 한양대 들어와서 ‘유재하 가요제’에 나와서 수상을 하게 됐네요. 나도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인연이 이어져 온 것 같아요. 어머니라고 하면 세세하게 좋아해서 어머니가 아니라 그냥 ‘품’이듯이 한양대도 어머니 같은 공간인 것 같아요.”

음악의 樂과 苦

대부분의 가수들은 음악이 자신의 운명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는 어떨까. 음악을 하게 된 것이 운명인 것 같긴 하지만 음악을 업으로 하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애썼다고 말한다.  

“고등학교 때는 ‘창조하는 삶을 살자’라는 것이 목표였어요. 글 쓰는 것 좋아하고 원래 무언가 만드는 것 좋아했어요. 가수의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하지 않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요새는 사회적인 일도 수명이 짧더라구요. 명퇴당해야 되고 정말 정리들이 빨라요.
내가 악보 그리는 거나 작곡 할 때 나만 알아볼 수 있게 약어로 쓰는 걸 보고 주위 사람들이 의사들이 진료서 쓰는 것 같다고들 해요. 그런 소리 들으니까 이것도 나름 전문직인데 잘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차피 다들 수명이 길지 않은 거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느니 내가 가진 재능을 살려야 겠다고 결심했죠. 그리고 이젠 이런 생각이 매너리즘을 벗어나게 해주는 것 같아요. 음악은 좋아해서 하는 게 강하죠. 음악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좋아서 하는 게 크죠. 그래서 그런지 음악 하는 사람치고 삭은 사람이 없어요(웃음). 음악하면서 나오는 행복한 호르몬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고 사는 사람이기에 갖는 딜레마도 얘기해줬다.

“가끔 음악이 즐겁지가 않아요. 취미가 아니고 일이 됐기 때문에 내가 그토록 바라던 게 일이 되면 밥벌이를 생각할 수도 있고…자기가 자발적으로 생산 하는 게 아니라 타의성이 생기기도 하죠.”

음악하는 이들에게 가장 최악의 현실인 지금의 음반 시장. 얼마 전에 가수 신해철은 자신의 시디를 사주는 마지막 한명이 있을 때까지 시디를 낼 거라고 말했지만 반대로 이승환은 mp3만 내기로 했다는 말을 했다. 이에 대해 그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물었다.

“이승환 씨가 자연스러운 게 아닐까요? 우리는 CD를 내고 싶은데 시장이 그렇게 안돼 있죠. 인터넷에 ‘더 필름’을 검색하면 절반이 더 필름 다운이라고 떠요. 우리도 노력을 안한게 아니에요. 우리가 무슨 자선 사업가도 아니고…. 솔직히 힘이 많이 빠지는 게 사실이죠. 승환이 형이 훨씬 이해가 가요. 해철이 형은 돈도 많이 벌었으니까.(웃음) 문화를 만들어내는 뿌리가 많이 죽고 있으니까 음악 하는 사람이 제대로 성장할 기반이 안 생기죠.

신해철 씨가 음악이 민주주의화가 됐다고 해요. 음악을 즐길 수 있는 저변이 넓어지고 실용음악과도 점점 많아지고 있죠. 그런데 환경이 이러니까 연예인은 많이 생겨도 음악을 창조하는 크리에이터들은 많이 나오지 않아요. 정말 힘들게 음악하고 있어요. 진짜로.”

그의 열변에 음악이 보이지 않는 재화라고 공짜라고 생각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하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도둑에 맞서 싸우고 있었다.

앞으로의 The flim은…

“축제 때 많이 만나려고 노력을 할 거고 앞으로 드라마 음악이나 영화 OST로 계속 작품 활동을 할 거예요. 전에도 한석규 김지수 주연의 「사랑할 때 이야기 하는 것들」 OST에 참여한 적이 있어요. 굳이 가수라는 타이틀에 집착할게 아니라 제 곡을 다른 사람한테 주기도 할거구요. 싱 어송 라이터는 싱이 아니라 라이트만 할 때도 있거든요. 라디오 듣다가 제 노래 나오면 기분이 무척 좋아요. 제 노래 듣고 안부 전하는 전화 올 때도 있고. 향기, 흔적을 남기는 일이 노래를 만드는 것 같아요. 그런 면에서 노래가 매력이 있죠.

 

인터뷰 뒷담화
▲인터뷰 도중 걸려온 전화, 편하게 반말로 대답하는 그. 기자는 친구일 거라고 예상했다. 끊고 나서 그가 하는 말. “어머니예요.” 반전이었다.
▲음악하면서 힘든 점에 대해서 물었다. “요즘 매너리즘에 빠져 있어서 좀 힘들었죠. 그래도 물론 mp3가 젤 힘들죠. CD 안사시죠?”
기자는 그의 질문에 뜨끔해져서 아무 말도 못했다. 작년까지 CD를 모으다가 최근 mp3를 다운 받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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