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화 속 공간 인테리어, 원근
회화 속 공간 인테리어, 원근
  • 윤영미 기자
  • 승인 2007.03.05
  • 호수 12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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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값’비싼 명화들이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루브르 박물관 소장 자료중 대표적인 회화 70점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오는 18일까지 국내 최초로 만날 수 있다. ‘16세기~19세기 서양 회화 속의 풍경’이라는 주제로 개최되는 이번 전시회에서는 서양미술이 예술적?학술적 성과가  적립된 시기의 회화가 전시된다. 이러한 성과 저변에는 르네상스시기 화가들의 원근법에 대한 고뇌와 탐구가 깔려 있었다.

원근법의 탄생과 발전
조르조 바사리의「예술가들의 생애」의 한 일화다. 원근법에 골몰하던 파울로 우첼로는 "원근법아, 너 참 사랑스럽구나"하고 중얼거렸고, 아내는 "원근법이 도대체 어떻게 생겨먹은 계집이냐"며 바가지를 긁었다고 한다. 르네상스기의 화가들은 파울로 우첼로와 같이 원근법에 흠뻑 빠져있었다.

원근법은 그리스시대 빛을 다룬 광학에 바탕을 뒀다. 광학에서 시각이 빛을 통해 반사된 대상의 크기와 위치를 인지하는 방식을 이용했다. 특히, 광학을 적극 활용한 선 원근법은 우리의 시각이 머무르는 한 점인 소실점을 중심으로 광선이 뻗어가듯 대각선을 이은 방식으로 나타난다.

1415년 8월,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에서 필리포 브루넬레스키는 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실험을 한다. 그는 세례당이 그려진 판자를 얼굴 앞에 바짝 갖다 대고 거울을 앞으로 밀었다 당기기를 반복 했다. 판자의 소실점에 위치한 작은 구멍으로 보았을 때 실제 세례당과 거울 안에 비치는 모습이 퍼즐에 들어맞듯 딱 맞았다. 이것이 선 원근법의 탄생이었다. 그는 이 실험을 통해 현실을 재현하는 완벽한 방법이 선 원근법임을 증명한 것이다.

그러나, 건축가인 브루넬레스키는 의뢰인에게 지은 건물의 모습을 미리 보여주기 위한 목적으로 원근법을 개발했을 뿐이다. 본격적으로 원근법을 회화의 도구로 이용한 것은 마사초의 「성 삼위일체」때 부터였다. 마사초는 앞의 물체와 뒤의 물체를 겹치게 하는 중첩법과 거리에 따라 길이를 줄여 표현하는 단축법으로 공간의 깊이를 표현해 마치 인물들이 실제 공간에 있는 듯했다.

원근법은 통일된 원근법의 거장 라파엘로의 등장과 함께 새로운 길을 모색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통해 투시 원근법을 완성했다. 더 나아가 지나치게 기하학적인 요소들이 회화에 오히려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 그는 공기 원근법을 착안해 낸다. 공기 원근법이란, 색상의 농도와 채도에 의해 거리감을 나타낸 것이다. 대표적인 공기원근법의 작품이 「모나리자」다.

원근법의 변형된 모습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최후의 만찬」을 화룡점정하기 전부터 이미 동양에는 투시 원근의 개념이 있었다. 역사가들은 중국화가 종병의 「산수화론」에서 원근법의 모태를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산수화의 황금기였던 당 말에 이르러 삼원법의 형태로 발전한다. 삼원법은 고원·평원·심원으로 구성돼 있다. 고원은 아래에서 위를 보는 방식, 심원은 위에서 아래를 굽어보는 방식, 평원은 시선을 평평하게 두어 광활함을 묘사할 때 쓰이는 방식이다. 삼원법은 구도상에서 복합적이고 역동적인 변화와 함께 독특한 공간미를 보여주고, 산수화에 많이 사용된다.

러시아에서는 공간을 나타내는 방법 자체가 달랐다. 소실점이 관찰자 쪽에 위치했기 때문에 관찰자로부터 멀리 있는 원경이 더 크게 그려진다. 이는, 그림 속 하나의 시점만 존재하는 서구와는 달리 주체를 관찰자로 바꿔 관찰자의 움직임에 따른 운동지각을 구현하기 위함이었다. 또, 러시아 미술에서는 직선이 TV 브라운관처럼 휘어진 곡선으로 표현된다. 러시아 성화에서는 종종 반원형 탁자를 볼 수 있는데, 이는 러시아 원근법 원리에 따라 철저하게 계산돼 그려진 원형탁자라고 해석해야 한다.

르네상스 시대에 원근법에 논의가 서양에서 활발했던 반면, 동시대 이슬람 세계에서는 원근법을 철저하게 배제시킨 세밀화가 여전히 그려졌다. 그렇다고 이슬람 세밀화가들 사이에서 원근법에 대한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에서는 16세기 세밀화가 들의 반 원근법의 움직임과 스스로 원근법을 터득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과거 어느 문화권을 막론하고 원근법에 대한 담론과 도론은 미술학계의 과제이자 통과의례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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