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 놀이의 추억과 가상공간의 아픔
전기 놀이의 추억과 가상공간의 아픔
  • 취재부
  • 승인 2005.09.12
  • 호수 12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장맛비가 운동장을 적시는 날이면 가정집을 개조한 피아노 학원의 널찍한 온돌방에는 아이들이 모여들었다.
전기놀이를 하기 위해서였다. 허리까지 덮은 이불 밑으로 서로의 손을 꼭 쥐면서 전기를 보낸다. 술래 옆에 앉은 사람까지 전기가 오면, 그 사람은 술래의 손바닥을 계속 때린다. 술래는 ‘그만’이라고 외치고 아이들의 표정을 살피며 처음 전기를 보낸 사람을 지목한다. 들키지 않으려는 아이들의 표정은 진지하다.

전기놀이를 했던 이불 밑의 세계는 인터넷이 만드는 가상공간과 닮았다. 가상공간 속에서는  누구의 것인지 모르는 댓글이 계속해서 달린다. 그러나 현실 세계는 고요하다. 가상 공간 속에서 활개를 치며 욕설을 뱉어대던 사람들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가상공간은 이불 밑의 공간과는 다르다. 가상공간에는 이불 밑의 따뜻한 온돌의 기운과 맞잡은 손의 포근한 온기는 찾을 수가 없다. 또한 오고가는 전기 속의 감정교류도 찾을 수 없다. 오직 서로를 향해 싸늘한 말들을 외쳐댈 뿐이다.
가상공간에서는 술래에게 언어 공격을 가한다. 술래의 온 마음을 멍들게 한다. 함께 상처받는 가상공간 속의 사람들은 모두가 술래다.

그래도 전기 놀이에는 규칙이 있다. 술래는 ‘그만’이라고 외칠 수 있고 다음 술래를 지목할 수도 있다. 지목을 받은 사람은 순순히 술래가 된다. 그러나 가상공간에서는 계속되는 공격 속에 ‘그만’도 없고 지목과 인정도 없다.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고 술래가 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따뜻한 추억이었던 전기놀이와는 달리 가상공간은 좋지 않은 추억을 남긴다. 늘 그런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남기는 것이 사실이다. 전기놀이는 아이들에게 즐거운 교감과 친밀감을 느끼게 했다. 그러나 가상공간에 참여한 사람들은 사방에서 날아드는 전기 충격 때문에 송전의 즐거움이 아닌 감전의 고통을 느낀다.
받아들이지 못하는 말들이 가슴속에 깊은 화상을 남긴다. 그 상처에 대해 손을 내밀어 주는 사람도 잡으려는 사람도 없는 현실 또한 냉정하기는 마찬가지다. 위안을 얻으려 현대인들은 가상공간을 찾지만 그 곳을 돌아다니는 사람들은 모두가 상처투성이다.
임종빈<사회대 ·사회 0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