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여기에서 가을의 진정한 의미
지금 여기에서 가을의 진정한 의미
  • 취재부
  • 승인 2005.09.12
  • 호수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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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도흠 <인문대·국문> 교수 

어느덧 가을이다. 아직 날씨는 덥지만 가을 기운은 시나브로 행당 언덕에까지 스며들었다. 아침, 저녁으로 삽상한 바람이 교정의 잎새들을 흔들며 계절이 변했음을 알린다. 다시 가을을 맞으며 ‘지금 여기에서’ 가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본다.
흔히 말하듯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 며칠만 더 지나면 들판은 황금물결로 출렁일 것이며 오롯한 과실들은 눈 부시게 투명하게 푸른 하늘을 배경 삼아 농익은 향내들을 바람결 따라 온 천지에 흩뿌릴 것이다.

그러나 들판의 이름모를 풀씨처럼 지극히 작은 열매조차도 여름의 폭양과 폭풍과 폭우를 이기고 이를 통해 내면을 살찌운 결실들이다. 고통 없이, 시련 없이, 도전에 대한 응전 없이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이럼에도 우리는 과정 없는 결과를 노력 없는 결실을 바라고 추구했고 그 대가로 환경위기, 갈등과 소외의 심화 등의 위기를 맞고 있다. 빠름의 속도를 지향하는 문화 속에서 비약과 도약이 오히려 칭송받는 분위기 속에서 진지한 사색과 성찰 없이 연구를 수행하고 공부를 하고 일을 하지 않았나 각자 돌아볼 일이다.

가을은 성찰의 계절이다. 더위가 기운을 토해내며 사라지고 산들바람이 이마를 스치면 여름 내내 지쳤던 두뇌는 그 기운을 대신 받아 활력을 되찾는다. 녹음을 자랑하던 나무들이 낙엽이 되어 하나 둘씩 사위어가면 별 생각없이 살던 이들도 사라짐과 영원함, 삶과 죽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다. 그럼에도 인간이 살아가야 할 의미가 있다면 완전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인간이 완전을 지향할 때 전제 조건은 성찰이다. 성찰 없이 발전은 없다. 인류 사회는 과거에 대한 기억과 성찰을 통해 현재를 분석하고 미래를 건설해 왔다.

해방 후 반민특위의 실패가 군사독재와 매판자본의 지배를 낳았고 이 유산은 아직까지 한국인의 삶을 옥좨고 있다. 그럼에도 친일세력들은 친일인사 명단 발표에 조직적으로 저항하고 있다. 군사독재 시절 학살과 고문 등 야만을 자행하였던 이들이 아직 권력의 정점에 서서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 가을, 그들은 물로이거니와 우리들 자신도 ‘더불어 깊이’ 자신의 과거와 현재에 대해 성찰할 일이다. 너와 나의 진정한 미래를 위해.

가을은 변혁의 계절이다. 가을은 여름에서 겨울로 전화하는, 삼라만상의 모습이 뒤바뀌는 때이다. 변혁은 옛 것의 거부, 상투성에 대한 반역이다. 길가에 홀로 핀 들국화를 외롭다고 노래하는 것은 시가 아니다. “당신은 오아시스 없는 사막이요.” 운운하는 편지를 읽고 감동할 사람은 없다. 지금 한국 사회는 새로운 사회를 맞을 수 있는 호기를 맞고 있다. 그럼에도 참여정부는 개혁을 추진하기는커녕 정략만 일삼고 있다. 상당수 국민들 또한 “경제가 살아야”라는 상투적 이데올로기에 매달리는 사이에 대한민국은 ‘삼성공화국’으로 전락하고 있다. 바야흐로 21세기다. 이제 낡은 껍질을 깨고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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