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팍스 시오노 나나미”
“팍스 시오노 나나미”
  • 한대신문
  • 승인 2006.12.28
  • 호수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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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호소하고 싶은 것은 ‘공생’이다. 먼 옛날 피부색도, 민족도, 종교도 다른 사람들이 공존공생하며 살았던 ‘로마’라는 제국이 지구상에 있었다고 알리고 싶은 거다.”『로마인 이야기』의 작가 시오노 나나미의 말이다. 지난 연말『로마인의 종언』을 마지막으로 15권의 대작『로마인 이야기』를 끝난 작가가 던진 말이다. 1992년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다”를 필두로 매년 1권씩 발표해 15권을 완성하겠다는 독자에 대한 약속을 지키고 나서 한 말이다. 왜 이야기 대상이 로마인인가라는 질문에 로마인의 ‘공생’ 정신을 이유로 제시한다.

그녀는 또 말한다. “로마인은 현실적이고 개방적이었다. 다신교를 믿는 로마인들은 정복한 이민족의 신까지도 받아들였다. 속주를 우호국으로 삼아 인재를 등용하고 속주 출신 황제까지 배출했다. 종교와 민족이 달라도 로마인들은 포용했다. 이것이 ‘팍스 로마나’였고, 공존공영의 정신에 의한 다민족 운명공동체였다. 종교와 민족이 달라도 로마인들은 포용했다.” 그래서 로마인과 로마제국에 매료됐다고, 로마인의 관용과 포용정신을 배웠으면 한다고 그녀는 말한다.

장장 15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한 권씩 써내려간 작가, 한번도 휴가다운 휴가를 보내지 못했다면서 이제야 방학을 맞은 셈이라고 미소 짓는 이 여류작가의 화두는 그 무엇보다도 공생과 관용이었다. 이념의 이념으로 이 ‘함께 삶’과 ‘너그러움’을 그녀는 어느 민족 어느 국가보다도 로마인과 로마제국에서 발견한다. 15년간 고문서부터 현대의 연구 성과까지 치열하게 정독하고 북아프리카부터 스코틀랜드, 옛 영토의 구석구석을 살피면서, 2만 1000장의 원고를 쓰고 만년필만 5자루를 버리면서 ‘팍스 로마나’의 진정성을 독자에게 여실하게 보여준다.

여고시절 호메로스의 일리야드에 심취해 라틴어를 독학하고 대학에서 서양철학을 공부하면서 마키아벨리와 조우했던 이 69세의 노여인이 지난 세모에 담담히 던진 공생과 관용, 이 두 단어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너무나도 ‘함께 삶’이 없었고 지독히도 ‘너그러움’이 없었던 우리의 지난 삶 때문인가. 그녀는 첨언한다. “리더는 조직을 생각하고 자기 배를 채우지 않는다”고, “가장 나쁜 것은 기력도 활력도 있는데 눈앞의 작은 것에 집착해 진짜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라고.

국가의 리더를 선출하는 올해의 ‘코리아나’, 아니 ‘지금 여기’ 우리가 속해 있는 작은 조직들에 과연 공생과 관용의 정신이 있는지 시오노 나나미가 생각하게 만든다. 이런 생각들이 너무 거창해서 실감이 나지 않는 독자들을 위해 그녀는 웃으면서 말한다. “15년간 병원에 가지 않았다. 건강 검진을 했다가 뭐라도 나오면 일이 중단된다. 물론 독자들은 기다려 줬겠지만 나로서는 한번 중단한 뒤 다시 시작하기는 무척 어려웠을 거다.” 또 “역사를 쓰는 작업도 역사와 맹렬히 싸우는 것이다. 자신의 모든 지능과 모든 존재를 걸고 결투를 벌이는 것이다.” 15권의 분신을 세상에 내 보낸 후 “지금은 머리가 텅 빈 상태”가 되었다는 인간 ‘팍스 시오노 나나미’, 그녀에게 정해년 새해 벽두 가슴 깊은 곳에서 뜨겁게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의 목례를 보낸다.

이현복 교수<인문대·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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