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부분 심사평- 이승훈<인문대·국문> 교수
시 부분 심사평- 이승훈<인문대·국문> 교수
  • 한대신문
  • 승인 2006.12.02
  • 호수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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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사라진 시대의 풍경


2006년 한대신문 문예상 시부문에 응모한 작품들의 양과 수준이 지난 해보다 떨어진다. 쓸쓸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시 한 줄 쓰지 않고 어떻게 고독하고 막막한 대학 시절을 보낼 수 있단 말인가? 대학 시절 시를 쓰는 것은 시인이 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는 대학생들의 작품에서 언어에 대한 깊이 있는 자각이나 존재에 대한 질문을 요구하지 않는다. 언어의 심층에 있는 무, 존재의 결여, 사유의 스캔들 따위는 몰라도 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우리가 알면서도 응시하지 않는 것, 보면서도 생각하지 않는 것, 너와 나에 대한 관심이다.

그러나 대체로 많은 작품들이 낙서에 지나지 않고 이 시대의 삶에 대한 반성도 없고 상상력도 부족하다. 모두가 나같은 교수가 잘못 가르친 탓이고 시대 탓이고 이런 현상도 문화적인 업이라면 업이다. 그러나 시, 철학, 예술이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 점에서 당선작으로 정한 ‘사람이 없다’는 시가 사라지는 시대, 인간이 사라지는 시대, 그러니까 철학도 예술도 필요 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삶의 모순을 구체적으로 형상화한다.

응모한 많은 시들에서 예컨대 ‘혼의 부재’같은 낡은 시적 상투어나 ‘목화가 피었던 시절’같은 복고풍 서정 아니면 ‘환각의 조명뺏 혹은 ‘둔부의 곡선 끝내주는’같은 표현들을 읽는다면 이 시는 낡은 서정이 아니고 유치한 모던도 아니고 최소한 이 시대 우리 삶의 현실을 솔직하게 묘사한다.

땅과 부동산의 문제는 이 시대의 화두이고 이 화두를 노래한 점이 좋고 무슨 설익은 주장이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동원하지 않고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한 것도 좋다. 빛이 들지 않는 포도밭엔 사람이 없고, 그러나 포도는 자란다. 한 마디로 이 시가 강조하는 것은 자본의 논리에 휘말려 인간이 사라지는 시대의 풍경이다. 표현도 정확하고 산문시 형태도 자연스럽다.

가작으로 정한 ‘사근동’은 우리 학교 뒷동네를 대상으로 한 점이 무엇보다 마음에 든다. 진리는 언제나 먼 데 있는 게 아니라 가까운 곳에 있다. 이 시는 우리가 잘 알지만 제대로 응시하지 않은 것, 혹은 언제나 보면서도 생각하지 않은 것에 대한 사유와 감각을 진솔하게 노래한다. 붉은 양옥의 스레트 지붕과 바위산 인문대 건물에 펄럭이는 플래카드의 대비도 좋고 봄날 사근문방구 앞에서 노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도 좋다. 요컨대 사근동은 삭은 동이 아니고 사근사근한 동네, 부드럽고 친절한 동네이고 따라서 그 옆에 있는 우리 학교도 사근사근한 학교가 되어야 한다. 뻣뻣한 건 시가 아니고 문화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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