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참사를 기억하는 법
우리 사회가 참사를 기억하는 법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3.06.05
  • 호수 1568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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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는 이 땅 위에 그런 가슴 아픈 탈이 일어나지 않도록 다짐하고자’
 

▲ 삼풍백화점 위령탑에 적힌 세움 글의 모습이다.
▲ 삼풍백화점 위령탑에 적힌 세움 글의 모습이다.

이는 지난 1995년, 1천500여 명의 사상자를 낳은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위령탑 세움 글에 적힌 문구다.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이태원 참사가 200일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사회는 반복되는 사회적 참사에 대해 어떻게 추모하고 있는지 추모 공간을 통해 알아보려고 한다. 

추모 공간이란
추모 공간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망자에 대한 기억을 회상하며, 그들을 위로하고 애도하는 공간을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추모의 의미는 ‘죽은 사람을 그리며 생각함’을 뜻하지만, 추모 공간에서 그 의미는 특정 인물을 애도하는 것뿐만 아니라 역사적인 사건이나 사고를 기억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조종수<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는 “추모 공간에선 인간의 기억과 감정을 통해 참사와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가 이뤄진다”며 “같은 장소에서 참사 기억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추모 공간은 사건 재발 방지 및 사회적 트라우마 치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선, 추모 공간은 지속적으로 사회적 참사를 기억하게 하며 재발을 방지한다. 노용석<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는 “추모 공간을 통해 국가의 기능 부재로 발생한 사고를 기억하고 추모의 마음을 가지게 한다”며 “사고의 원인과 결과를 시민들이 기억하게 해 이후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추모 공간은 참사 이후 사회적으로 만연한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공간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다. 김성호<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사람들에게 슬픔과 아픔을 표현하고 공유하는 공간을 제공함으로써 유가족과 시민들의 트라우마를 치유한다”며 “슬픔을 혼자 외롭게 감당하지 않고 공동체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이라 전했다. 실제 지난해 이태원 참사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던 우리 학교 학생들은 서울캠퍼스에 설치된 임시 분향소를 통해 위로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학생 A씨는 “분향소에서 추모하는 사람들과 함께 슬픔을 공유하면서 위로받았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추모 공간은 지금
기자는 이러한 추모 공간을 직접 느끼기 위해 서울에 위치한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이하 성수대교 위령비)’와 ‘삼풍참사 위령탑’ 두 곳을 방문했다. 우선 지난 1994년 50여 명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성수대교 붕괴 사건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된 위령비를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숲역에서 내려 지도 앱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니 철조망으로 막힌 자동차전용도로가 나타났다. 해당 도로에서 무단횡단을 하지 않으면 위령비에 도착할 수도 없었다. 결국 다시 역으로 돌아와 성수동에 위치한 수도박물관에서 내부로 들어가 ‘한강가는길’이라 쓰인 간판을 따라 육교로 올라갔다. 이후 육교에서 내려간 후 강변북로의 터널과 차도 옆을 지나 위령비에 간신히 도착할 수 있었다. 위령비 가까이엔 인도가 아예 없어 차도 옆으로 걸어가는 기자에게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이는 설립 당시엔 도보로 접근이 가능했으나, 지난 2005년 성수대교 위령비 근처로 강변북로가 신설되며 현재와 같은 상태가 된 것이다. 도착한 추모 공간엔 2개의 안내판과 위령비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평소 성수대교 근처를 자주 산책한단 학생 B씨는 “성수대교 주변으로 산책을 자주 하지만 위령비가 존재하는지도 몰랐다”며 “만약 안다고 해도 찾아가는 방법을 몰라 접근이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 성수대교 위령비로 가는 길의 모습이다.
▲ 성수대교 위령비로 가는 길의 모습이다.
▲ 성수대교 위령비의 모습이다.
▲ 성수대교 위령비의 모습이다.


삼풍백화점 참사 추모 공간의 경우 현재 양재시민의숲에서 지난해 이름을 변경한 ‘매헌시민의숲’ 안에 위치해있다. 원래 서초동에 위치한 삼풍백화점에서 일어난 참사지만, 집값이 떨어진단 주민들의 반대로 해당 위치에 세워질 수 없었던 것이다. 김 교수는 “참사의 추모공간 건립에 대해 경제논리로 접근한 주민들이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며 “삼풍백화점 참사의 경우에도 이러한 주장으로 인해 다른 곳에 위치하게 된 것”이라 말했다. 과거 삼풍백화점의 위치엔 현재 고층의 주상복합 아파트가 들어섰다.

기자는 차량을 이용해 내비게이션의 안내에 따라 위령탑으로 출발했다. 하지만 근처 고속도로 중간에서 안내가 끊겼다. 위령탑이 매헌시민의숲의 깊숙한 내부에 있기 때문에 도로 위에서 안내가 종료돼 차량으론 이동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결국 매헌시민의숲 입구로 도착지를 재설정한 후에야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공원 안으로 들어간 후에도 삼풍백화점 위령탑은 공원 내 도로 시설 정비로 인해 아예 접근할 수조차 없었다. 매헌시민의숲 관계자 C씨는 “현재 공원 내 도로의 정비공사가 이뤄지고 있어 위령탑에 접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위령탑으로 접근할 수 있는 길이 하나이기 때문에 그 길이 막힐 경우 시민들은 아예 접근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 삼풍참사 위령탑과 성수대교 위령비는 모두 차량으론 접근이 불가능하다
▲ 삼풍참사 위령탑과 성수대교 위령비는 모두 차량으론 접근이 불가능하다.
▲ 현재 삼풍백화점참사 위령탑은 공사중이라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 현재 삼풍백화점참사 위령탑은 공사중이라 접근이 불가능한 상태다.

또한 기자가 방문한 두 곳 외에도 △사고 위치와 다른 곳에 만들어진 씨랜드 추모비 △주변 공사로 접근조차 어려운 98금양호 희생자 위령탑 △주민들의 반대로 사고 현장으로부터 16km 떨어진 팔공산 대구시민안전테마파크에 자리 잡은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 공간 등 재발 방지와 추모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추모 공간은 우리 사회에서 기피시설로 취급돼 건립 취지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 

이렇듯 현재 우리나라의 추모 공간들은 여러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추모 공간의 접근성과 조성 방법에 대해 지적했다. 우선, 추모 공간에 대한 시민들의 낮은 접근성이 문제다. 김 교수는 “성수대교 위령비의 경우 접근성이 떨어져 대다수의 시민들이 어디인지도 모르며 찾아가기도 힘들다”며 “이 때문에 형식적인 면피용으로 세워놓은 것이란 비판도 존재한다”고 밝혔다. 

또한 추모 공간의 조성 방법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조 교수는 “삼풍백화점과 같은 참사의 우리나라 추모 공간은 기념비적, 상징적 성격으로 위령탑만이 존재해 왔다”며 “이러한 방식의 추모는 관람자와 공간이 상호작용하는 요소가 낮고, 현대의 사람들에게 어떠한 위안과 감동도 주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상 속에서 참사와 희생자들을 기억하도록 돕는 것이 추모 공간의 목적인데, 우리나라의 추모 공간 상당수는 이 역할을 전혀 수행하지 못하고 있단 것이다.

이러한 추모 공간 조성과 관련한 문제는 현재까지 반복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지난 2019년 ‘4.16생명안전공원’의 계획이 발표됐지만 현재 첫 삽도 못 뜨고 있는 상황이다. 정부자<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서> 부서장은 “과거 추모 공간과 다르게 시민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원으로 조성하고 싶었으나, 재정과 행정 처리 문제로 5년 가까이 진행조차 안 되고 있다”며 “국가 기능의 부재로 인한 참사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교훈을 줄 수 있는 장소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의 경우, 임시 분향소조차 시민들에게 불편을 줄 수 있다며 서울시에서 철거를 요청해, 제대로 된 추모 공간이 조성되기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가 참사를 기억하려면
전문가들은 올바른 추모 공간 조성을 위해선 시민들과의 상호작용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아 강조했다. 조 교수는 “추모 공간은 관람객에게 역사적 사실을 전달하는 교육적 기능을 수행해야 함과 동시에 공간과 관람객이 상호작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현재까지 우리가 행해왔던 기념비적, 상징적 추모방식이 아닌 시민들이 직접 경험하고 마주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한 것”이라 말했다. 즉, 일상적으로 그 당시 마주했던 아픔을 대면하고 추모하며 기억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단 것이다. 이어 그는 “해외에선 추모 공간을 주민들이 자주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한다”라 전했다. 

실제 2만 8천여 명의 사상자를 낸 9.11 테러 추모 공간인 메모리얼 공원은 미국 시민의 곁에 만들어졌다. 뉴욕 맨해튼은 지구상에서 가장 비싼 땅값을 자랑하지만 참사현장인 세계무역센터 자리에 새로운 건축물을 신축하지 않고 폭포가 흐르는 빈 공간으로 남겨둔 것이다. 약 3천여 명의 희생자의 이름이 일일이 각인된 공원은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쉽게 접하고, 기억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돼 모범사례로 남았다. 실제 해당 장소를 방문했던 D씨는 “한국엔 이런 곳이 없고, 있어도 방문하기 어렵다”며 “이곳은 접근이 쉬웠고, 시민들이 고요함 속에서 일상을 공유하고 있어 추모 공간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세네갈 르 줄라호 침몰사고, 미국 타이타닉호 침몰 사고 등 해상 참사를 추모하는 위령탑은 마을 입구, 광장에 조성돼 있어 일상적인 접근이 용이하도록 하고 있다. 
 

▲ 미국 뉴욕에 위치한 9.11테러 추모공간인 메모리얼 공원의 모습이다.
▲ 미국 뉴욕에 위치한 9.11테러 추모공간인 메모리얼 공원의 모습이다.

노 교수는 “한국에선 현재 추모 공간에 대한 담론이 제대로 형성돼 있지 않다”며 “국가의 과오로 일어난 일에 대해서도 국민 모두가 함께 추모하고 기억해야 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의 추모 공간들이 참사를 반복하지 않고 모두의 트라우마를 치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남길 바란다. 


도움: 김성호<한국성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노용석<부경대 국제지역학부> 교수
정부자<4.16세월호참사가족협의회 추모사업부서> 부서장
조종수<건국대 건축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제공: https://blog.naver.com/yencoc/223105621923
https://blog.naver.com/mozzijelly/221397718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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