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질환 대학생', 어디도 속하지 못하면 어디서 도움을 받나요?
'정신질환 대학생', 어디도 속하지 못하면 어디서 도움을 받나요?
  • 이예빈 기자
  • 승인 2023.05.22
  • 호수 1567
  • 4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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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상 앞에서 홀로 고뇌하는 학생의 모습이다.

한국 청년들 정신건강에 켜진 적신호가 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정신질환을 진단받은 청년들이 계속해서 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만 18세에서 28세 사이 ADHD와 우울증 환자 수 모두 지난 2021년 까지 4년간 전부 2배 이상씩 증가했다. 이뿐만 아니라 2021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대의 사망원인 1위는 전체 원인 비중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고의적 자해’, 즉 자살이었다.

캠퍼스에 켜진 적신호
상황이 심각한 건 청년들이 가장 많이 모이는 공간 중 하나인 대학 캠퍼스 내부도 마찬가지다. 지난 2021년 한국대학교육협의회에서 국내 대학(원)생을 상대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지난 1년간 수일간 지속적인 불안감이나 우울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두 항목 모두 30%를 웃돈다. 심지어 진지하고 구체적으로 자살 생각을 해봤단 응답자는 20% 이상으로, 전체 20대의 자살 생각 비율보다 높다. 전문가들은 특히 대부분 대학생이 속한 청년층의 경우, 성인이 됐지만 그에 상응하는 인지적 성숙이나 심리적 안정이 이뤄지지 않아 불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뿐만 아니라 중·고등학생 때의 치열한 입시 경쟁 이후 대학에 와서도 취업을 위한 스펙 경쟁에 뛰어드는 것 때문에 사회적·심리적 압박감이 크게 나타날 수 있다. 실제로 학생 A씨는 “대학에 입학해서 새로운 환경에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져야 한단 점이 두렵고 부담스럽게 느껴졌다”며 “이 때문에 스무 살엔 한동안 바깥 활동을 기피하고 방 안에만 있는 등 은둔 생활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정신질환과 학교생활을 떼어놓을 수 없는 이유
불안정한 심리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은 학교생활 중 학습에 어려움을 느낄 수 있다. 이들은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시험에 응시하기 어려워하는 것뿐만 아니라 심하면 이로 인해 낙제나 자퇴하는 등 학업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기도 한다. 장창현<느티나무의원> 전문의는 “이를테면 공황의 경우 △두근거림 △손발 저림 △쓰러질 것 같은 느낌 등 신체적 불안 증상을 수반한다”며 “공황장애가 있는 사람은 발표 상황 등에서 불안 증상을 느낄 수 있어 이런 상황을 꺼리게 돼 학업을 지속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ADHD를 진단받은 학생 B씨는 “ADHD의 증상 중 하나인 주의력 결핍으로 인해 시험을 거의 치르지 못했다”며 “이런 상황이 반복돼 자퇴를 고민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렇듯 불안정한 심리와 정신질환으로 고통받는 대학생들은 많지만, 이들이 학교에 학습 지원을 기대하긴 어렵다. 일부 신체장애의 경우 대필이나 장애학습도우미 같은 지원책이 존재하지만, 정신질환으로 인한 학습 장애에 관해선 지원 서비스를 찾아보기 어렵다. 결국 학생들은 학교의 도움 없이 적응하기 위해 홀로 씨름해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고통이라 부르지 못하고
정신질환은 증상이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환자가 어려움을 인정받기 어렵단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정신질환의 종류와 정도를 분류하는 체제가 존재하긴 하지만, 그조차 기준이 불명확하다고 비판받는다.현재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분류 체제 중 하나는 미국 정신의학회가 마련한 DSM(정신질환 진단통계편람)이다. 우리나라에선 대체로 해당 기준에 따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환자를 이해하고 진단한다. 그러나 도서 「최의헌의 정신병리 강의」에 따르면 정신질환은 그 특성상 혈액 검사나 방사선 촬영처럼 객관적 지표를 사용할 수 없다. 대신 일반적으로 환자가 호소하는 증상이나 의사가 관찰한 증상을 토대로 한다. 문제는 이런 이유로 의사마다 진단이 다를 수 있단 점이다. 현재 상황에선 정신질환자가 고통을 호소해도 명쾌하고 일관적인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게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모호한 경계에 가로막히다
정신질환 학생들은 법적 사각지대에 놓여있단 점에서도 제대로 된 지원을 요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법적으로도 이들을 도울 뚜렷한 방법이 부재하기 때문이다. 정신질환 학생은 특수교육대상자엔 포함되지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른 장애인의 정의엔 포함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장애인복지법에서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한 정신장애인에 △강박장애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우울장애 등은 포함되지만 △공황장애 △외상후스트레스장애 △ADHD 등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관련 법안이 아예 부재한 건 아니지만, 현실에서 대학의 ‘장애 학생 지원’은 신체장애를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편 전문가들은 정신질환의 치료를 두고 질병이나 신체장애와 비슷하게 접근해선 안 된단 목소리를 낸다. 장 전문의는 “정신질환은 질병처럼 어떤 증상을 ‘박멸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증상에서 벗어나려 하면 상황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대학의 정신장애 학생 지원을 강제하는 법안이 있는 것도 아니다. 대학은 초·중등교육법의 특수교육법에서처럼 정신장애 학생의 학습권을 법적으로 보장할 의무를 강제하는 대상에서도 벗어나기에, 정신질환 대학생들은 말 그대로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학습의 장애물이 되지 않도록
우리나라에선 아직 정신질환 자체나 그 치료에 대한 연구개발과 지원을 두고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이 때문에정신질환 대학생의 학습권에 대한 논의 또한 현재로선 부족하다. 하지만 더 많은 이들에게 지원을 보장하고자 하는 사회도 있다. 장 전문의는 "미국과 같은 국가에선 우리나라와 다르게 ADHD 증상을 겪는 사람도 장애 진단과 관련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학업의 꿈을 안고 입학한 학생들이 정신질환을 이유로 그 꿈을 포기하는 비극이 반복돼선 안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꾸준한 관심이 이어져 대학에 학생을 돌려보내지 않아도 되는 학업 환경이 조성되길 바란다.



도움: 장창현<느티나무의원>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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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1:19:55
정신건강에 대한 인식과 지원이 더욱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정신질환은 눈에 보이지 않아 사회적 이해와 지원이 부족한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 캠퍼스는 청년들이 많이 모이는 공간인데, 그곳에서도 정신건강에 대한 어려움을 겪는 학생들이 많다는 사실이 더욱 더 심각한 문제로 다가옵니다. 정신질환자들에게는 학교생활에서 지원이 필요하며, 법적 사각지대에 놓인 상태에서 적절한 지원을 받기 어려운 현실도 안타깝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이해와 지원 체계를 개선하고, 학습의 장애물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