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교 84주년·창간 64주년 기념호 축사] 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개교 84주년·창간 64주년 기념호 축사] 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 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 승인 2023.05.15
  • 호수 1566
  •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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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 이기정 한양대학교 총장

오늘은 한양대학교 개교 제84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이 뜻깊은 날을 기념하고 축하하기 위해 이 자리에 함께하신 모든 여러분께 진심 어린 감사와 환영의 인사를 올립니다.


84개의 성상, 이제는 하나의 “역사”라 말해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과연 역사라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대체 무엇이냐 물어온다면, 저는 2023년 봄날의 총장으로서 여러분을 대신하여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한양을 역사라 칭할 수 있음은, “첫째, 이 땅에 쉴 새 없이 요동쳤던 근대사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 피하지 않으매 의연히 서 있었음이며, 둘째, 때로는 역경으로 때로는 도전으로 얽히고설킨 시대의 운명적 부침을 일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받아들여 왔음이며, 셋째, 한양이 그려왔던 모든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 언제나 <사랑>이라고 하는 초인류적 가치가 변함없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었노라”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우리의 빛나는 과업은 물론이거니와 사랑의 끈으로 84년간 함께 한 우리 자신에게 격려와 인정의 축하를 보낼 자격이 충분히 있습니다. 한양이라고 하는 대서사를 완벽하게 이룩한 이가, 한양이라고 하는 이름이 자부심 그 자체가 될 수 있도록 한 이가, 다름 아닌 재학생과 학부모님, 교직원, 그리고 전 세계 37만 동문, 바로 우리 모두인 까닭입니다. 그러니 오늘만큼은 한양을 일으키고 한양의 정신을 일깨운 선배님들의 노고를 기리는 동시에, 여러분 옆자리 자리마다 창의와 도전과 성실과 인내로써 한양을 대표하고자 했던 우리의 자랑스러운 동료들에게 아낌없는 칭찬의 박수를 보내드렸으면 좋겠습니다.

한 흥미로운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조 바이든 미합중국 대통령의 집무실에 취임과 더불어 새로운 흉상이 하나 들어왔다는 기사인데요, 원래 있었던 윈스턴 처칠의 빈자리를 세자르 차베스라고 하는 비폭력 민권운동가의 흉상으로 채운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힘이 없는 자도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꿈꿨던 그는 생전에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교육의 목적은 반드시 남을 위한 봉사여야 한다.” 제게 그 말이 깊은 인상으로 남았던 이유는, 처칠의 능력과 강인함이 차베스의 포용과 부드러움으로 대체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떠오르기도 했거니와, 실제로 그의 말은 1939년 25세의 백남 선생님께서 품었던 사랑의 정신과 너무나도 많이 닮아있었기 때문입니다. 여담일 수 있겠습니다만, 백남 선생님께서는 흉상의 주인공인 차베스에 앞서 13년 먼저 출생하셨으니, 오늘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실천해온 사랑의 역사와 정통성을 우리만의 것으로 기념할 충분한 명분이 있다고 자부해도 좋을 것 입니다. 도대체 희망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엄혹하고 암울했던 시절, 84년 후의 한양을 그리며 젊디젊은 한 교육가가 냉혹한 어둠의 현실을 이길지도 모른다는 온화한 한 줄기 빛의 꿈을 품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은 연민과 자비, 근면과 독창성으로 사회에 봉사하는 사랑의 지도자를 일구어내고자 하는 한양대학교의 정신, 그것이 되었습니다.

한양 가족 여러분, 정말 고맙습니다.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 1939년의 그 꿈에 미래를 향한 우리의 야심찬 대도약의 비전을 연결할 때가 되었습니다. 인공지능, 생명공학, 청정에너지 등 최첨단 분야의 연구역량을 강화해야 합니다. 학제 간 협업을 촉진하여 세상의 혁신을 주도하고 글로벌 과제를 해결하는 선봉에 서야 합니다. 그리하여 인류의 더 나은 삶에 이바지하는 세계적인 교육기관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해야할 것입니다. 그 여정은 쉽지 않을 것이지만, 자주 말씀드리는 바와 같이, 우리가 “함께”할 수 있다면 어떤 장애물도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과거의 지혜와 현재의 노력과 미래의 약속에 따라 탁월함을 함께 추구하면서 너나 할 것 없이 굳게 손을 맞잡아야 하겠습니다.

미래의 그 거대한 이야기를 위해, 이 시간, 작지만 큰 <사랑의 실천>을 하나 제안하고자 합니다. 제16대 총장으로 취임한 지 두 달이 조금 더 된 것 같습니다. 저는 요즘 거의 30분 단위의 일정으로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는데요, 그 에너지의 원천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계신 것 같아서 오늘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비결은 다름 아닌 작은 메일 한 통입니다. 그들은 가르쳤던 제자, 함께 일했던 동료,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함께 뛰고 있는 전 세계의 동문입니다. 언론 기사를 읽었는지 학교 홈페이지에서 보았는지 모르겠지만 한 자 한 자에 서린 그들의 격려와 칭찬은, 정말이지 제게 없던 힘도 솟아나게 합니다. 사실 오늘 개교기념사의 첫 부분에서 우리 서로 서로에게 보내는 격려와 칭찬을 제안한 것이 이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 정기적으로 전해지는 한양의 소식을 통해 우리의 놀라운 성과물들을 자주 접하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마음속으로만 가지고 있었던 격려와 칭찬을 밖으로 끄집어내어서, 에리카에서 한양으로, 공대에서 인문대로, 학생이 교수에게, 교수가 직원에게, 이렇게 몇 줄 적어 보내면 어떻겠습니까? 한 번도 얘기한 적도 만난 적도 없더라도 우리 모두 다 한양이라는 이름 아래 한 가족입니다. 보내기도 하고 받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연과 맥을 이어가고 서로에게 힘이 되면서, 작은 것 같지만, 이렇게 시작해서 한양 100년 대도약의 에너지를 함께 일으키면 어떻겠습니까? 창의, 융복합, 학제 간 협업, 4차산업혁명, 디지털 대전환, 사회혁신, 국제화... 그 어느 것이든 주어진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우리 각자의 동력이 합쳐져 하나로 움직이는 거대 네트워크 유기체, 다시 말해 universe를 구성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한양이라는 사자의 심장으로부터 쉴 새 없이 뿜어져 나오는 대동맥의 흐름이 기관과 기관 세포와 세포의 끝마디마다 전해져 함께 움직인다면 우리는 건학 1세기를 보다 역동적으로 준비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합대학, 즉 university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정해진 경계 속에서만 맴돌 뿐 universe로 하나가 되어 함께 회전하지 못하는 지식은 절대로 우리의 지식기반이 될 수 없습니다. 단편적 지식이 신념이 되는 것만큼 위험한 것이 또 없습니다. 그것은 고집과 맹목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아프게 했던 이 땅의 많은 갈등과 반목의 원인은 종합적 지식을 심어주지 못한 대학의 책임도 분명히 있습니다.

사랑하는 한양 가족 여러분, 경계에 함몰되지 맙시다. 시스템이라는 핑계로 우리의 핏줄을 막아서는 경직된 사고에서 과감히 탈피합시다. 우리가 앞으로 세상에 선보일 위대한 과업에서 한양인의 사랑과 향기가 매서운 세상의 시련을 녹이는 아름다움의 역사로 배어나도록 합시다. 그리고 때가 되어 다시 미래의 한양인들이 오늘의 우리를 기념하여 줄 때, 작은 밀알이 되어 그 비옥한 토양에 함께했음을 자랑스러워합시다.

길고 긴 세월 동안 온갖 세상 변하였어도
청산은 의구하니 청산에 살으리라

다시 한번 존경과 감사와 축하의 인사를 올리며, 제84주년 개교기념사를 마칩니다. 복된 날 되십시오.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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