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상] 우리 모두의 정의를 위해
[단상] 우리 모두의 정의를 위해
  • 김유선<인문대 철학과 21> 씨
  • 승인 2023.04.10
  • 호수 1564
  • 6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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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유선<인문대 철학과 21> 씨

 

필자는 개똥철학 하나를 가지고 있다. “알면 해야지” 그래서 어릴 적 영화 「동주」를 보고서 시인 윤동주를 경멸했다. “어째서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거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그럼 해야지” 오히려 필자의 우상은 동주의 사촌이었던 송몽규나 시인 이육사같이 실제로 실천하고 투쟁하는 인물들이었다. 필자에겐 소신을 실천으로 잇는 이들의 의지가 가장 빛나 보였다.

알면서 실천하지 않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정의를 고민하고 오랜 고민 끝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바가 실천으로 이어질 수 있게 원칙을 세웠다. 그렇게 중학교에 입학해선 이 세계에 비속어를 쓰는 모습을 남기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땐 비속어를 쓰지 않는 게 올바르다고 생각했다. 가장 처음엔 필자의 올바른 행동거지에 관해서만 고민하던 것이, 점차 대의를 향했다. 도덕적인 시비를 가리는 것은 평범하게 불평등에서 시작했다. 그렇게 필자의 눈에 비치는 부조리를 하나씩 깨부수는 게 삶의 목표가 됐다. 그 목표를 이룩하는 것이 필자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는 길이라고 굳게 믿었다. 돌아보면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단 열망이 지금껏 필자를 이 자리까지 오게 한 듯하다.

머리가 크면서 아는 게 많아질수록 보이는 불의도 많아졌다. 고등학생이 돼서 마주한 불의는 거대하고 굳건했다. 불의를 보고, 알고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학생이란 필자의 지위가 어느 땐 무력하게도 느껴졌다. 성인이 돼 대학에 가면, 그런 불의에 맞설 수 있는 지성을 갖기를 바랐다. 그리고 대학에 가면 필자의 의견에 동의하고 공감할 동지가 있을 거란 환상을 가졌다.

정의감에 불타올랐던 필자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다. 철학을 하면 세상을 구할지도 모른단 헛된 망상에 빠져있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평생의 의구심을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다.

큰 꿈에 부풀었지만, 막상 대학에 오니, 학교는 실체가 없었다. 화면 속에 있는 교수님, 검은 배경에 얼굴도 모르는 동기들. 만나서 유대를 쌓고 각자의 견해를 밝히기엔, 현실적으로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았다. 서로를 이해하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효율적인 소통을 위해 말의 길이를 줄이고 그 단편적인 정보만으로 상대방을 판단했다. 필자는 그렇게 지레 겁을 먹고 스스로 승인한 안전지대로 숨어들었다. 그리고 외부로부터 들려오는 안타까운 소식에 마음이 동하기보단 그저 눈을 감았다. 그리고 필자가 최소한으로 승인한 부조리만을 부조리로 선택적으로 여겼다. “여기까지만 해도 괜찮겠지” 하며 일말의 정의감과 줄타기를 했다. 필자가 가진 재능으로 사회에 기여하는 것도 일종의 정의구현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타협했다. 사회적으로 주어진 소명에 필자의 정의감을 대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렇게 쉽고 편한 길만 찾았다. 좋게 편하게. 자신이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만. 알면서도 행하지 않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라고 외치던 아이는 어디 가고 현실에 안주하는 어른만 남아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흐르고 흘러 새내기였던 필자를 어느새 3학년으로 만들었다. 코로나로 모든 것이 정상화되기까지 2년이 걸렸다. 4년에 걸친 대학 생활의 전반전이 지나고 후반전, 캠퍼스가 다시 활기를 찾고 있다. 캠퍼스에서 움트는 학우들을 보고 있으면 다시 윤동주의 시가 떠오른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경멸했던 윤동주의 모습에 왠지 필자가 비쳐 보인다. 잊었던 부끄러움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특히 캠퍼스에서 각자의 이상을 향해 주저없이 행동하는 이들을 볼 때 더욱 그렇다. 필자가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해 도전하고 있는 이들을 응원하는 만큼, 소신에 부끄럽지 않게끔 대의를 쫓을 필자를 누군가는 응원하지 않을까.

필자에게 남은 시간 2년, 동아줄을 붙잡듯 주어진 모든 기회를 붙들어보고 싶다. 옳다 생각한 일에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 움츠러 들지 않고 그 시선마저 포용할 수 있도록. 지나간 시간에 후회가 남지 않게. 이젠 필자만의 정의감에 취하지 않고 공동체의 정의를 위해, 혼자가 아닌 여럿이서. 그렇게 한 발자국씩 내딛다보면 어린 필자가 꿈꿨던 정의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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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03:45
윤동주의 시와 필자의 경험이 어우러져, 알면서도 실천하지 않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과 책임을 느끼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또한, 대학 생활과 사회에 대한 현실적인 갈등과 타협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가 담겨있어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러한 솔직한 감정과 결의로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의지가 느껴지며, 필자의 성장과 앞으로의 희망에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