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장벽 아래 숨은 마음을 돌보다
언어의 장벽 아래 숨은 마음을 돌보다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3.04.04
  • 호수 1563
  • 8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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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무대로 하는 스포츠 선수들의 뒤엔 그들이 ‘언어의 장벽’을 넘도록 든든하게 뒷받침해주는 스포츠 통역사가 있다. 본교 체육학과 출신의 최윤지 스포츠 통역사는 △대전 KGC인삼공사 △수원 현대건설 힐스테이트 △인천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등 다양한 구단의 통역사로 활동해왔으며, 2021년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의 통역을 맡은 바 있다. 약 7년간 여자배구 스포츠 통역사로 활동하며 보이지 않는 위치에서 원활한 팀 운영과 경기 진행을 위해 힘쓰는 최 동문을 만나봤다.

체육에서 언어까지, 그의 발자취
학창 시절부터 운동을 무척 좋아하는 학생이었던 그는, 중·고등학교 시절 △발레 △태권도 △현대무용 등을 익히며 체육의 재미를 깨닫게 된다. 그 후 최 동문은 운동의 매력에 푹 빠져 막연히 스포츠와 관련한 일을 하고 싶단 꿈을 품고 본교 체육학과에 진학했다. “스포츠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어요. 스포츠 통역사란 직업이 있단 걸 알게 된 건 대학에 온 후였죠.”

그는 대학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를 폭넓게 배우며 ‘나를 찾아가기 위한 공부’를 이어갔다. 그런 그에게 꿈을 찾아준 계기는 대학 시절의 자원봉사였다. “지난 2011년도 대구에서 열린 세계 육상 선수권 대회에서 자원봉사를 했었어요. 당시 그곳의 관계자 중 유일하게 스페인어를 하는 언니가 있었는데, 그분이 현장에서 바쁘게 일하는 모습을 보면서 외국어를 좀 더 배워보고 싶단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 최 동문은 스페인어 공부를 마음먹고 대학교 4학년 무렵 멕시코로 교환학생을 떠났다.

언어에 대한 감각이 남달랐던 최 동문은 장기 유학 없이 대학 시절 단 한 번의 교환학생 경험으로 영어와 스페인어를 모두 익힐 수 있었다. 외국어 실력의 비결에 관해 묻자 그는 “부모님 덕에 일찍부터 일상에서 영어 동요나 TV 프로그램을 접했어요. 외국어에 자연스럽게 노출되다 보니 외국어를 좋아하게 되고, 또 잘하는 사람으로 성장한 것 같습니다.”라고 답했다. “마찬가지로 멕시코에 있을 때도 하루 종일 스페인어를 들으며 그 언어에 노출돼있었던 게 언어를 빨리 익히는 것에 큰 도움이 됐어요. 언어에 대한 좋은 욕심도 한몫했고요.” 이처럼 스포츠와 언어를 향한 열정은 그가 스포츠 통역사가 되는 발판이 됐다.

통역, 언어의 장벽을 허무는 일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일을 함께 하고자 노력한 끝에 운동과 언어를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스포츠 통역사가 된 최 동문.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통역사의 업무와는 달리 스포츠 통역사의 일은 경기장과 훈련장뿐만이 아니라 밖에서도 이어진다. 스포츠 통역사는 외국인 선수의 △비자 관련 업무 △식단관리 △재활 △적응 등 선수와 관련된 전반적인 일을 모두 처리한다.

▲ 미국인 선수와 함께 여행을 간 모습이다.
                                      ▲ 미국인 선수와 함께 여행을 간 모습이다.

그는 “스포츠 통역사는 선수들과 함께 단체생활을 하며 팀 내부에서 외국인 선수 개인의 일상에 집중해야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을 여러 사람과 함께 지낼 수 있는 사회성과 더불어 남을 꼼꼼히 챙겨줄 수 있는 이타심이 필요해요.”라고 전했다.

또한 최 동문은 서로 다른 나라의 언어를 최대한 똑같은 의미로 옮기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무엇보다도 외국인 선수와의 ‘케미’가 좋아야 해요. 말을 하는 사람의 생각이나 가치관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야 통역의 질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거든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 외국인 선수들과 정서적으로 교감을 나누고, 대화를 통해 그 사람 자체에 대해 깊이 알아가려 하며 인간적인 관계를 쌓고자 노력하죠.”

최 동문은 지난 7년간 통역 활동뿐만 아니라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빨리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개인 매니저의 역할을 수행해오며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를 털어놨다.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는데도 유독 마음을 열지 않아 힘들게 하던 선수가 있었는데, 한국에서의 선수 생활이 끝나고 저한테 갑자기 연락이 왔어요. ‘그때 네가 있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면서 고마웠다고 하더라고요. 전혀 예상 못 했던 선수에게 그런 연락을 받으니 외국인 선수들에게 있어 스포츠 통역사의 역할이 정말 큰 의미란 걸 깨닫고 사명감도 크게 느꼈어요.”

▲ 흥국생명에서 통합 우승을 한 최 동문의 모습이다.
               ▲ 흥국생명에서 통합 우승을 한 최 동문의 모습이다.

그는 2021년엔 도쿄올림픽 국가대표 여자배구팀의 통역을 담당하기도 했다. 자신의 역할을 ‘경기장에서의 귀와 입’이라 설명하는 그. 국내 리그에선 대부분 ‘외국인 선수의 귀’가 되어 개인적인 요구 사항을 전달해야 하지만, 올림픽 국가대표팀의 통역 당시에는 ‘외국인 감독의 입’이 되어 전체적인 통솔을 대신했기에 색다른 경험이었다고 전했다. “감독은 경기를 지휘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통역시에 말투나 목소리의 크기에도 신경 쓰며 감독이 의도한 내용을 완벽하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감독이 선호하는 경기 방식에 대한 사전 조사도 철저히 하고, 이전에 다른 경기에서 했던 이야기도 분석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파악하려 했죠. 감독과 선수들이 열심히 땀 흘린 것에 절대 누가 되고 싶지 않았거든요.”

최윤지 통역사가 생각하는 미래
최 동문은 현재 7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스포츠 통역 일을 뒤로하고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쉬면서도 성장의 욕구가 큰 사람’이라 말하며, 휴식 기간 동안 미래에 대해 고민한 끝에 선수들에게 정신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스포츠 멘탈 코칭 관련 공부를 진행 중이라 밝혔다. 그는 “선수들의 심리 상태가 훈련이나 경기력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은데, 의외로 현재의 스포츠 업계에선 이런 선수들의 정신적 측면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안타까운 마음이 있었어요. 제가 스포츠 선수들의 마음을 돌보는 일을 전문적으로 공부해 선수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요.”라며 앞으로의 계획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을 향해 “특정 직업을 목표로 한다고 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경험들을 함부로 쳐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물론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지만, 대학생 때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다채롭게 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다 보면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길을 발견하고, 또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될 수도 있거든요.”

자신이 ‘언제든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으로 기억되길 바란단 최 동문. ‘말을 전달하는 사람’을 넘어 ‘마음을 보듬어주는 사람’이 되고 싶단 최 동문의 바람처럼 앞으로도 그가 언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돌볼 수 있길 바란다.


사진 제공: 최윤지 스포츠 통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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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30:00
언어 능력과 스포츠에 대한 열정을 결합하여 선수들과 함께 성공적인 팀 운영을 이끌어낸 그의 모습이 멋지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선수들의 정신적인 지지와 도움을 주고자 스포츠 멘탈 코칭을 공부하고자 하는 그의 노력과 사명감도 인상적입니다. 후배들에게 다양한 경험과 발전을 추구하는 마음을 전달하며, 선한 영향력을 지닌 사람이 되고자 하는 그의 모습에 감동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