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도덕에 대한 오해와 도덕적 사고의 확장
[칼럼] 도덕에 대한 오해와 도덕적 사고의 확장
  • 한대신문
  • 승인 2023.03.14
  • 호수 1561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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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호상<한국교원대 윤리교육학과> 박사과정

 

2023년 2월 6일, 비극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튀르키예에서 7.8, 7.5의 강진이 연달아 일어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2만 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는 사실은 우리의 감정을 더욱 슬프게 자극한다.

국제사회의 터키에 대한 구호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 우리나라만 봐도 정부 차원에서 긴급구호대를 파견했으며, 시민들이 기부를 인증하고 있다. 댓글만 달아도 기부가 된다는 글에서도 사람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확인할 수 있다.

혹자는 도덕을 자신의 이익 중심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튀르키예와 시리아의 사례만 본다면 여기에서 선행을 베푼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이득이 될 것은 없어 보인다. 다르게 말하자면 선행은 자신에게 이득이 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항상’ 자신의 이득이 되는지는 미지수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왜 도덕적인 행동을 할까?

도덕은 언제 어디서나 같다는 주장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도 그대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고대 그 리스 시대에 시민은 오직 성인 남성만 해당하였다. 여성, 노예는 사회의 시민이 될 수 없었다. 이들은 그렇기에 도구처럼 다뤄질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 노예제는 폐지되었고 여성 인권 또한 그때와 비교하면 비약적으로 향상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도덕성과 지금의 도덕성은 같다는 것인가?

진화적 관점에서 볼 때 집단 편향을 지니고 있는 인간은 자신의 편에게는 친절하지만, 적에게는 적 대적이다. 이 적대성은 갈등으로, 심지어는 전쟁으로 이어진다. 그렇게 인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전쟁을 겪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없는 나라까지 선행을 베푼다. 분명 우리의 도덕적 고려 범위는 이전과 비교했을 때 확장되었다.

또한 지금의 도덕은 인간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개, 고양이 등 반려 동물의 학대는 법적 처벌을 받는다. 도덕적 고려 범위가 확대되지 않았다면, 상상도 못 했을 상황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와 중세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동물이 인간을 위한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 시대에서 지금의 동물에 대한 대우는 받아들여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도덕적 고려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이 이야기의 결론은 자신의 이익을 신경 쓰지 말고 항상 선행을 베풀라는 것이 아니다. 개인의 이익 증진과 도덕은 이분법적 관계가 아니다. 오히려 이 둘은 일상에서도 충분히 조화를 이룰 수 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며 얻는 즐거움은 도와주지 않는 데서 비롯되는 찜찜함보다 나을 수 있다.

베푸는 종은 그렇지 않은 종보다 생존과 번식 기회가 많다. 이것은 리처드 도킨스가 <이기적 유전자> 에서 주장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그는 유전자가 이기적이지,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다만, 그는 또한 도덕이 우리와 무관한 인간, 심지어 동물로까지 확장되는 것은 진화적으로는 있을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인간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지 않은가? 도덕에는 진화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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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4:00:27
도덕은 인간과 사회의 변화에 따라 발전하고 있으며, 이는 인류의 진보와 인권의 증진과도 연결됩니다. 이제는 자신의 이익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 동물들에 대한 도덕적 고려를 확대하는 경향이 보여집니다. 도덕은 인간뿐만 아니라 다양한 생명체와 자연에 대한 존중과 배려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도덕적인 행동은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핵심적인 요소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