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침공’에 대학은 속수무책, 해결 방법은...
‘문과침공’에 대학은 속수무책, 해결 방법은...
  • 이지원 기자
  • 승인 2023.03.14
  • 호수 1561
  • 3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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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이 문·이과 통합형으로 개편된 후 이공계열 학생들이 인문계열 전공에 대거 교차지원하는 ‘문과침공’ 현상이 2년째 이어지고 있다.

문과침공은 대학 정시 모집 전형을 통해 이과에서 문과로 넘어오는 비중이 급격하게 늘어난 현상을 일컫는 것으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문·이과 통합 수능이 실시되며 발생한 문제다. 주요 대학들이 통합 수능 실시 후 인문계열 지원 시 응시해야 하는 사회탐구 과목의 응시 제한을 없애 상대적으로 표준점수가 높은 과학탐구를 응시한 이과생들이 문과로 교차지원한 현상이 늘어났다.

올해 서울대 정시모집에서 인문·사회과학계열 학과에 최초 합격한 386명 중 213명(55.2%)이 이과생으로 집계됐다. 우리 학교의 경우에도 지난해 교차지원율이 74.5%로 나타났으며, 서강대와 서울시립대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이 가운데 교육부와 주요 대학들은 ‘문과침공’ 현상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 중이다.

대학들의 골머리, 교차지원
이렇듯 문·이과 교차지원 현상의 급증으로 인해 대학가의 혼란이 가중된 상황이다. 우선, 신입생 선발 방식 자체가 기존 대학의 학제 질서와 맞지 않단 목소리가 존재한다.  본래 대학에선 융합적인 성격보단 각 학문의 전문성 및 세분화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공 체제가 구성돼 있다. 그러나 교차지원은 융합 교육의 성격을 강조해 이 체제를 깨뜨려 혼란을 가져오는 것이다. 조상식<동국대 교육학과> 교수는 “융합을 골자로 한 현재의 입시 정책은 기존 대학의 학문 질서와 다른 내용을 무리하게 대학 입시에 적용한 것”이라며 “대학의 신입생 선발 체계와 현행 교육 체계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교차지원을 통해 입학한 학생들은 전공에 적응하지 못해 낮은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다. 실제 경희대에서 통합 수능을 치룬 22학번 학생들을 대상으로 학업 성적을 조사한 결과, 교차지원으로 인문계 학과에 들어온 이과생은 문과생 평균 학점인 3.19에 못 미치는 2.68의 학점을 받았다.

이런 영향으로 중도포기율이 증가해 학내 사회 역시 얼어붙은 상황이다. 동일 설문에서 나타난 중도포기율 역시 문과생 제적 비율인 9.8%를 훨씬 웃도는 16.1%로 집계됐다. 사회대 비상대책위원장 정현경<사회대 정치외교학과 21> 씨는 “작년에 과 활동을 즐기던 새내기들이 2학년이 되자 반수, 전과 등으로 떠난 사례가 증가해 학과 분위기가 어수선하다”고 밝혔다.

학벌지상주의가 불러온 문과침공
이는 교육부가 별다른 가이드라인 없이 문·이과 통합 정책을 성급히 추진해 학생들이 전공적합도와 상관없이 대학 간판만 보고 학교에 지원하는 경우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남윤곤<메가스터디 입시전략연구소> 소장은 “한국 사회에 고착된 학벌주의로 인해 수험생들은 정규 교육과정을 따르는 건설적인 진로 선택보단 학교 급 높이기에 치중하게 된다”고 전하며 “이런 현상이 교육적 차원에선 바람직하지 않기에 우려된다”고 전했다. 실제 이과에서 문과로 교차지원한 A씨는 “같은 성적으로 공대를 지원하면 합격이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해당 대학의 인문·사회계열 학과에 지원하면 안정적으로 합격할 수 있어 문과로 교차지원을 했다”고 답했다.

이처럼 ‘대학 급’을 위해 이과생이 자신이 하고 싶은 공부와 전혀 관계 없는 인문계열 학과에 입학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해 입시업체 유웨이가 대학교 입시에서 인문·사회계열로 교차지원한 자연계열 수험생 454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자연계에서 인문계로 교차지원한 목적에 대해 40.7%가 ‘대학의 레벨을 올리기 위해’ 교차 지원을 선택했다고 답했지만, ‘평소 가고 싶던 학과이기 때문에’라 응답한 사람은 13%에 불과했다.

 



조 교수는 “이런 현상이 지속된다면 학문 탐구 기관인 대학 자체의 취지가 무색해질 수 있을 정도로 대학의 기능을 파괴하는 형태로 이어질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대학의 학사 기능과 사회적 역할이 왜곡될 가능성에 대해 우려를 표했다.

혼란스러운 대학, 해결방법은?
전문가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교육부가 근본적으로 수능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입을 모아 지적한다. 박성철<유웨이 진로진학센터 대치점> 소장은 “근본적으로 입시 제도를 변경하지 않으면 당장 교차지원 문제를 해소할 순 없다”며 기초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것을 주장했다. 조 교수 역시 “대학 학부 구조를 학문의 융합성을 키우는 방향으로 갖춰야만 문·이과 통합의 취지를 살릴 수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교육부는 문과침공에 대해 오는 2028년까진 근본적 해결방안을 마련할 수 없단 입장이다. 학생들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교육과정을 개정하더라도 4년 후에 정책을 실시할 수 있는 ‘4년 예고제’로 인해 관련 제도를 당장 바꿀 수 없단 것이다. 지난 1월 개최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학 입학처장 간담회에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은 “선택과목별 유·불리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단 점을 알고 있기에 다음 개편이 이뤄지는 2028학년도 개정 전까지 선택과목별 유·불리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난이도를 최대한 조정할 계획”이라 밝혔다.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진로를 설계하도록 도입된 문·이과 통합수능의 취지가 퇴색됐다. 활발한 논의를 통한 교육계의 근본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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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53:04
수능의 문·이과 통합 현상은 대학의 입시와 교육 체계에 혼란을 초래하고 있습니다. 학생들이 대학 간판과 학벌을 따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진로와 관련된 관심과 열정을 바탕으로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교육부와 대학들은 근본적으로 수능과 대학 입시 체계를 개선하여 학문의 융합성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