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제3자 변제안
[사설] 누구도 환영하지 않는 제3자 변제안
  • 한대신문
  • 승인 2023.03.14
  • 호수 1561
  • 7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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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외교부는 일본 강제징용 배상 문제의 해법으로 이른바 ‘제3자 변제안’을 내놨다. 이는 일본 기업이 아니라 우리나라 행정안전부 산하 일본 강제 동원 피해자 지원 재단이 대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을 변제하는 것이다. 즉, 일본이 아닌 한국 기업이 기부금 형태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금을 지급하는데, 여기엔 일본 피고 기업의 참여와 사과는 포함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다.

정부가 이러한 대책을 내놓은 건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의식했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지난 2018년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 이후, 우리나라를 상대로 한 일본의 수출 규제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수출 규제 해제를 의도한 정부는 경제 및 안보 전략상 일본과의 관계 개선을 우선하여 현안인 강제징용 피해자 보상 문제를 조급히 해결하고자 했다. 하지만 성급하게 변제안을 내놓는 바람에 국내외 부작용이 속출하고 있다.

해당 변제안은 국민들과 소통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나온 결과물이다. 지난 1월 외교부는 피해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강제징용 해법 논의를 위한 공개 토론회’를 개최했지만, 이는 보여주기식 절차에 불과했다. 해당 토론회에선 피해자들과의 질의응답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채 중단됐으며, 피해자들은 토론회 전날 저녁에야 배상안 자료를 받았다. 이후 정부는 피해자의 의견 수용 없이 변제안을 일방적으로 내놓았으며, 추가적인 논의를 하지 않고 변제안에 대한 합의를 강행했다. 결국 정부는 피해자들이 수십 년 간 고군분투해온 시간을 무시한 채, 불통의 행정 처리를 보여줬다.

정부가 내놓은 변제안은 반헌법적 결정이라는 비판 역시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지난 2018년 대법원에선 ‘일본 전범 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져야한다’는 판결을 내렸고, 해당 청구권은 ‘일본 기업의 반인도적 불법 행위를 전제로 한 위자료 청구권’이라 판시했다. 그러나, 이번 제3자 변제안은 위자료가 아닌 보상금이며, 일본 전범 기업이 손해배상 책임을 지지 않으니 대법원 판결에 역행하는 결정이다. 행정부가 대법원의 권한을 침범했으니, 삼권분립의 헌법 가치를 훼손한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것이다.

또한 이번 결정으로 피해자에 대한 가해자의 채무가 영구적으로 소멸됐다. 이로서 일본의 강제징용 피해자들은 제3자 변제안이 성사됨에 따라 가해자의 채무가 소멸된다는 민법 469조에 따라 앞으로 더는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방도가 없어지게 됐다.

가장 심각한 것은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변제안에 포함되지 않았단 것이다. 한 일본 여당 국회의원은 일본이 잘못한 것처럼 보이니 변제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주장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 없는 해결책은 한일 간의 정서적 갈등만 심화시킬 뿐이다. 과거를 지푸라기로 대충 덮고 손을 잡는 건 건설적인 관계가 아니다. 과연 내부적 합의 없이 한국 정부가 말하는 상생과 미래 지향적인 관계가 가능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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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3:58:23
피해자들의 의견 수렴과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 결정되어야 한다는 점, 대법원 판결과 반헌법적 결정 사이의 상충 문제, 그리고 일본 기업의 사과와 배상이 포함되지 않은 점이 주요 관심사였습니다. 이러한 사안은 한일 관계와 정서적 갈등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문제이며, 신중하게 고려되어야 합니다. 정부의 결정에 대한 논의와 투명성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