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는 의사, 경계 없는 사랑을 실천하다
찾아가는 의사, 경계 없는 사랑을 실천하다
  • 김다빈 기자, 윤재은 기자
  • 승인 2023.03.14
  • 호수 1561
  • 8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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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최성욱 의사는 국내외를 오가며 다양한 의료봉사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 동문은 <엄홍길 휴먼재단>, <지구촌나눔운동> 등의 국제개발 NGO 단체에서 다양한 의료봉사를 하며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힘을 보태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자신의 힘이 닿는 곳까지 최선을 다해 환자를 치료하려 노력하는 최성욱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양대 병실에 누워 의사의 꿈을 꾸다
최 동문과 본교의 인연은 그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부터 시작됐다. 초등학교 2학년 왁자지껄한 교실에 있어야 할 소년은 수많은 의료 기계와 링거줄, 의사와 간호사에게 둘러싸여 한양대병원 1층 응급실 한켠에 있었다. 그는 교통사고로 두 다리를 심하게 다쳐 본교 병원에 약 1년 6개월간 입원하며 10회 이상의 수술을 받아야 했으며, 이후 중학교 시절에도 여러 차례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병원의 최장기 입원 환자였던 그는 수많은 마취와 수술을 반복하면서도 “꼭 다 나아 의사가 돼 환자를 최대한 아프지 않게 치료하겠다”는 다짐을 지금도 잊지 않고 살고 있다고 한다. 그는 “다리가 아파 병원에 오래 있느라 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죠. 학교 시험을 병원에서 보기도 했고요. 그렇게 병원이 제게 익숙한 공간이 되면서 나중에 꼭 ‘정형외과 의사’가 되어 한양대병원에 다시 오겠단 꿈이 생긴 것 같아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한양대병원에 입원 했을당시의 모습이다.
                                         ▲한양대병원에 입원 했을당시의 모습이다.

의사가 되기 위해 달려온 학창 시절 
스무 살의 소년은 본교 의과대학에 합격하며 어린 시절의 다짐을 지켜냈다. 다시 한양대 의대에 오겠단 다짐을 실현한 순간인 지난 1994년 한양대 운동장에서의 합격 발표 현장을 그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본교에 입학한 후 최 동문은 다양한 교내외 활동들로 바쁜 나날을 보냈다. “하고 싶은 게 많은 학생이었습니다. YMCA(기독교 청년회)에서 활동하며 학우들과 철학이나 인문 관련 교양을 쌓기도 하고, 한양의보사 편집장을 맡아 직접 기사를 작성하거나 집회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비교적 공부량이 적었던 1, 2학년 방학엔 아르바이트도 많이 했는데, 건설 현장부터 상가 분양까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였어요.”

외부 활동들과 더불어 잦은 시험과 쉴 틈 없는 수업으로 힘든 학부 시절이었지만, 그는 의사가 되겠단 꿈 하나만을 바라보며 대학 시절을 보냈다. 전공 공부를 하며 힘든 순간이 올 때도 정형외과 의사란 확고한 꿈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다. 최 동문은 “어릴 때 저를 치료해 주셨던 소아정형외과 황건성 교수님께 따로 찾아가 실습을 부탁드린 적도 있어요. 교수님께선 의대생이 방학 때 개인적으로 실습을 요청한 경우는 제가 처음이라며 놀라시곤 다른 선생님들께 저를 챙겨주느라 힘들었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라며 웃었다.
 

▲본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의 모습이다.
                                             ▲본교 의과대학에 입학한 후의 모습이다.

이외에도 그는 꾸준히 의료봉사 활동과 전공 실습을 병행하며 의사의 꿈을 이루기 위해 차근히 나아갔다. 전라북도 정읍시에서 6년 정도 지속적으로 의료봉사를 했던 그는 “1학년 땐 환자들에게 어떤 약이 필요한지 확인하고 보조하는 일을 했었는데, 3학년이 됐을 땐 제가 의료봉사활동 대장을 맡아 직접 차트도 쓰고, 현직 의사분들을 도와 간단한 진료도 볼 정도로 성장해있었어요.”라 전했다. 학부 시절부터 꾸준히 의료봉사를 다니던 기억이 현재까지도 큰 의미로 남아 그를 ‘봉사하는 의사’로 이끌었던 것이다.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힘 닿는 데까지’
한양대학교병원에서 전공의를 거친 후 정형외과 전문의를 취득해 외래교수로 활동한 그. 그는 다양한 길이 있지만 금전적 부담이 없는 수술을 제공하고 싶어 개인 의원을 운영하는 것을 선택했다. “비용 문제로 큰 병원에서 치료받기 어려운 환자들을 위해 개인병원을 운영해 보다 적은 비용으로 상급 수술 및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고 있어요.” 환자를 진료하는 일이 항상 행복하고 즐겁단 그는 ‘의사는 나보다 남을 더 위하는 직업’이기에 진료 과정에서 환자와 의사 간의 믿음과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고 말한다.

최 동문은 진료 외에도 해외 세미나, 학회 등에 참석하며 바쁜 나날을 보내면서도 봉사에 대한 열정으로 꾸준히 의료봉사를 이어가고 있다. “어려서부터 의사에겐 치료에 대한 믿음을 줄 수 있는 실력과 더불어 남을 도우려는 봉사 정신이 가장 중요하단 생각을 갖고 있었어요. 진료실 안에서뿐만 아니라 의료혜택을 받기 어려운 곳에서도 환자에게 최선의 도움을 주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해요.” 최 동문은 자신이 가진 능력을 최대한 발휘해 도움이 필요한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의사의 진정한 역할이라고 말한다.

의료봉사 과정 속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그의 봉사에 대한 마음을 꺾을 순 없었다. 해외 봉사의 경우 각 국가나 도시마다 필요한 △물품 △서류 △조건 등을 고려해 사전 조사를 하는 것은 기본, 개인 봉사는 다 자비로 지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음에도 그는 봉사를 이어나갔다. “이동 경비와 봉사에 필요한 약 등을 모두 자비로 준비해야 했습니다. 준비한 약을 그 나라에서 불법으로 취급하는 경우엔 공항에서 뺏긴 경우도 많죠. 의료봉사를 갔을 당시 정형외과 진료를 개시했지만 귀나 머리가 아픈 사람들만 찾아와서 당황한 적도 있어요.”라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하지만 최 동문은 “그래도 봉사는 저에겐 휴가 같아요”라 전하며 미소 지었다.

이렇듯 최 동문은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누리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미력하나마 힘을 보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그는 지난해엔 대한 장애인골프협회 의무 이사로서 대한장애인골프협회와 협력해 개발도상국의 장애 아동들에게 휠체어 및 각종 이동 보조기구를 지원했으며, 지구촌 나눔운동본부 의무 이사로서 개도국 장애아동을 위한 치료 봉사에 나서는 협약을 체결하는 등 그의 끝없는 봉사활동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의료봉사를 묻는 질문에 그는 지난 2019년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진행했던 네팔 카트만두 지역의 초등학교 봉사를 꼽았다. “가장 멀고 힘든 지역으로 손꼽히던 곳이었어요. 가족과 함께 2박 3일간 진행한 봉사활동이었는데, 길이 워낙 험하고 산이 많아 마을에 진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나요. 의료봉사에 필요한 모든 물품은 제가 조달했고, 현지 소장과 직원들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이동했습니다.”장소의 제약 없이 아픈 환자를 치료하고 싶단 그는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도 바이애슬론센터의 경기 의료 책임자로 활동하며 그 소명을 다했다. 최 동문은 의료 책임자로서 현장의 의료진들에게 눈 위에서 ‘패트롤’을 사용해 환자의 부상을 최소화하여 운송하는 법, 장비를 착용한 환자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치료하는 법 등을 교육했다. 영하 20도를 웃도는 추위를 뚫고 8시간 이상 야외 현장에 서서 경기 상황을 지켜보면서도 그의 머릿속엔 아무도 다치지 않고 큰 사고 없이 마무리되길 바라는 마음뿐이었다. 그는 “강추위에 힘들기도 했지만, 중환자 없이 대회가 마무리돼 다행이었어요.”라고 전했다.

의사로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기에 힘들더라도 꾸준히 봉사를 이어간다는 그. “처음엔 일방적으로 제가 도움을 준다고만 생각했는데, 요즘엔 봉사를 통해서 제가 환자들에게 받는 게 더 많은 것 같아요. 세상엔 아직 기본적인 의료혜택을 받는 것조차 어려운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런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사명감이나 직업에 대한 의지가 강해지는 느낌이 들어요.”

▲<엄홍길 휴먼재단>에서 진행했던 네팔 카트만두 지역의 초등학교 봉사 모습이다.
       ▲2018 평창동계패럴림픽에서도 바이애슬론센터의 경기 의료 책임자로 활동했을 당시의 모습이다.

의사, 나보다 남을 먼저 생각하는 일
“앞으론 ‘찾아가는 의사’가 되고 싶단 생각도 있어요. 의료봉사는 병원에 앉아서 찾아오는 환자들을 치료하는 것과는 또 다른 가치나 의미가 있거든요.” 또한 그는 자신의 힘이 닿는 한 계속해서 의료봉사 활동을 지속하겠단 포부를 밝혔다. “제가 의사 생활을 하며 봉사를 한지 23년째 됐는데, 주변엔 40년, 50년 되신 분도 많고 일흔이 넘는 나이까지 봉사하시는 경우도 있어요. 그분들을 볼 때마다 사명감이 느껴지곤 하죠. 손을 떨거나 건강이 안 좋아져서 수술을 못 하는 상황이 생기기 전까진 최대한 많은 사람을 만나 치료하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마지막으로 그는 의사를 꿈꾸는 후배들에겐 초심을 잃지 말라고 조언했다. “꿈을 이루고 나면 그 다음엔 뭘 해야 할지 생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요. 의사는 워낙 바쁜 직업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그저 기계처럼 일만 하며 정신없이 지내게 되죠. 하지만 그럴 때마다 초심을 잃지 말고 자신이 의사를 선택한 이유를 잘 돌이켜 봐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능력을 십분 발휘해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단 것 자체가 보람차고 좋은 일이라 생각한다는 최 동문. 점점 더 개인주의화 돼가는 현대 사회에서 “할 수 있기 때문에 돕는다.”는 최 동문의 신념을 본받아 나보다 먼저 타인을 생각하는 삶의 자세를 배워보는 건 어떨까.

▲8세부터 48세까지 40년간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형외과와 함께하며,평생 환자의 아픔과 질병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단 최 동문.​​​​​​​앞으로도 정형외과는 자신의 인생이라며 그는 스스로를 ‘정형외과다’라고 표현했다.
          ▲8세부터 48세까지 40년간 정신적, 육체적으로 정형외과와 함께하며,
          평생 환자의 아픔과 질병 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을 약속한단 최 동문.
          앞으로도 정형외과는 자신의 인생이라며 그는 스스로를 ‘정형외과다’라고 표현했다.

 

 


사진 제공: 최성욱<지구촌나눔운동본부> 의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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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4:02:59
최성욱 의사의 의료봉사활동은 높은 도덕적 가치와 사명감을 보여줍니다. 자신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서도 다른 이들을 도우며 봉사하는 모습은 감동적입니다. 의사로서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도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그의 자세는 영감을 주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인류에게 큰 가치를 줄 것입니다. 그의 노력과 열정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선사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