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곳 없는 청소년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갈 곳 없는 청소년들,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하나요?’
  • 이지원 기자
  • 승인 2023.03.02
  • 호수 1560
  • 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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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하던 날도 평소처럼 싸우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선반이나 옷장의 내용물을 바닥에 쏟으면서 집을 나가라고 했어요” “새벽에 방에서 울다가 이럴 바엔 진짜 나가버리잔 생각에 가출했죠” 가정 밖 청소년 A씨는 가출 사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A씨는 부모님의 폭력적인 언행을 이기지 못하고 집을 나왔다. 가족과의 잦은 마찰에 지쳐 가출을 택한 것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청소년매체이용및유해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들은 약 11만 명에 달한다. 그중 74.1%는 가정폭력으로 인해 집을 나섰다. 이뿐만 아니라 최근 가정 밖 청소년의 저연령화와 장기화 현상이 나타나면서 문제는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동일 설문에 따르면 가정 밖 청소년의 최초 가출 연령은 만 13세이며, 5회 이상의 반복적인 가출은 47.2%로 집계됐다.

청소년 쉼터에는 청소년이 없다
한편 정부는 청소년 쉼터를 통해 가정 밖 청소년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현재 청소년 쉼터는 △쉼터 수 부족 △지자체 별 쉼터 수 불균형 △쉼터에 대한 정보 부족 등의 문제로 이용률이 저조한 상황이다.

우선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을 수용하기엔 쉼터의 수가 적고, 이마저도 절반이 수도권에 몰려있어 지역 간 쉼터 수 불균형이 심각한 상황이다. 한국청소년쉼터협의회에 따르면, 국내 136개의 쉼터 중 47%가 수도권에 위치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수도권이 아닌 지역은 지자체에 설립된 쉼터 수가 적어 이용자 수용에 차질을 겪고 있다.

그러나 쉼터가 몰려있는 수도권 역시 넉넉한 실정은 아니다. 수도권에서 쉼터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청소년 A씨는 가출 당시 경험을 전하며 “방문한 시설에 자리가 없으면 입소하지 못할 수도 있단 소식을 듣고 많이 무서웠다”고 전했다. 쉼터 대부분이 위치한 수도권에서조차 쉼터 부족 현상을 체감한 것이다. 청소년 쉼터에 근무 중인 사회복지사 B씨는 “청소년 방문 시 자리가 없으면 다른 기관으로 연계하는 방법밖에 없다”며 협소한 시설에 대해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또한 집을 나선 청소년들은 쉼터에 대한 정보가 없어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위기청소년지원기관이용자생활실태조사」에 따르면 가출 경험이 있는 41.5%의 청소년들이 쉼터에 대한 정보를 알지 못해서 쉼터를 이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A씨는 “쉼터에 대한 시설 안내나 실질적인 정보가 부족한 것 같다”며 “쉼터에 대해서 충분히 찾아봤다고 생각했는데, 단기쉼터나 중·장기쉼터는 일시쉼터를 먼저 거치지 않으면 입소가 불가능하단 사실을 중·장기쉼터에 방문해서야 알았다”고 전했다. 이뿐만 아니라 쉼터를 이용한 적 있는 C씨는 “지자체 및 행정단체의 안내가 아닌 ‘쉼터에 살았다’란 웹툰을 통해 쉼터에 대해 알게 됐다”고 전했다.

심지어 쉼터의 존재조차 모르는 경우도 존재한다. 쉼터 경험이 없는 D씨는 가출 당시 왜 쉼터를 이용하지 않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쉼터가 있는지도 몰랐다”며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단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다”고 전했다.

 

위험에 처한 가정 밖 청소년
이렇게 쉼터에서 보호받지 못한 가정 밖 청소년들은 거리로 나오면서 수많은 위험에 노출된다. 우선, 청소년들은 일부 악의적인 헬퍼들에게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된다. ‘헬퍼’란 인도적인 동기로 도움이 필요한 청소년을 돕는 일종의 인터넷 자선사업가들이다. 실제 기자가 직접 SNS에 ‘헬퍼’라고 검색해본 결과 “힘드신 분들 도와드려요”란 내용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헬퍼를 자처한 한 SNS 계정에선 자신의 동기를 “부담이 안 가는 선에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면 소소하지만 뿌듯하기 때문”이라 밝혔다.

하지만 일부 헬퍼는 오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이 헬퍼에게 기댈 수밖에 없단 점을 이용해 이들을 범죄 대상으로 삼는다. 특히 악의적으로 미성년자에게 접근한 사람들은 의식주를 지원해주겠단 빌미로 아동 성매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실제 기자가 SNS를 이용해 집을 나선 18세 청소년인 척 헬퍼에게 접촉해본 결과, 기자를 도와주겠다고 접근한 사람들 중 일부는 “벗은 몸 사진, 영상 등을 보내주면 돈을 지원해주겠다”고 말했다. 또 다른 헬퍼는 지금 사는 곳 근처에 숙박을 잡아줄 수 있으니 자신과 하루 동안 같이 잠을 자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악의를 지닌 헬퍼들과 연루된 범죄는 매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21년, 숙식을 제공해 줄 헬퍼를 구한단 가정 밖 청소년의 글을 보고 접근해 성폭행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또한 지난해 8월에는 가출한 13세 학생을 성폭행한 혐의로 42세 남성이 구속됐다. 가해자는 가정 밖 청소년이 많이 모이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피해자를 만났고, ‘용돈을 주겠다’며 유인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뿐만 아니라 미성년자들이 열악한 노동 환경에 처해있단 점 역시 문제다. 가출 당시 쉼터가 아닌 고시원에서 생활했던 D씨는 “미성년자를 고용하려는 직장이 거의 없어 구직 조건을 따질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조리기구를 사용하던 중 안전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안전사고를 당할 뻔했으나, 그 다음날에 어떠한 조치도 받지 못하고 또다시 같은 기구를 사용해야만 했다”며 미성년자 시절 열악한 환경에서 근무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토로했다.

한편 가정 밖 청소년들이 겪는 생활고는 범죄를 저지르도록 유인하는 동기가 되기도 한다. 미성년자는 보호자의 동의 없이 아르바이트 등의 생계 활동을 이어갈 수 없기 때문에 생계형 범죄를 저지르는 경우가 적지 않은 것이다. 특히 하나의 가족 형태로 뭉쳐 다니는 가정 밖 청소년들을 이르는 ‘가출팸’의 범죄 문제는 나날이 심각해지는 추세다. 실제로 지난 1월 인천에서 조건만남을 미끼로 40대 남성을 유인해 둔기로 폭행한 후 금품을 갈취한 청소년들이 입건됐다.

가정 밖 청소년이 보호받기 위해서는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고 가정 밖 청소년들이 안전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쉼터 운영 방식 개선과 강력한 범죄 단속이 필요하단 것이 전문가들의 입장이다.

우선 가정 밖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는 쉼터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단 지적이다. 송미경<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현실적으로 쉼터의 수가 부족하기에 가정 밖 청소년들이 이용할 수 있는 전용쉼터가 늘어나야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쉼터가 청소년에게 제공하는 서비스의 질을 향상해야 한단 전문가의 의견 역시 존재한다. 본지 취재 결과 가정 밖 청소년은 주위 환경에서 겪은 트라우마로 인해 자신이 지내던 영역에서 벗어나 멀리 떨어진 쉼터에 방문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박승조<서울시립청소년이동쉼터(서남권) 상담팀> 팀장은 “쉼터의 지역 간 불균형을 해소하기보단 쉼터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한 “쉼터 직원의 이직률이 높은 현 상황은 청소년의 쉼터 부적응 문제와 직결된다”며 “청소년들을 위해서라도 질 높은 근무 환경을 제공해 직원들의 이직률을 낮춰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관할 부처의 협력 역시 중요하단 입장이다. 교육부가 주관하는 학교 시설에 여성가족부의 관할인 청소년쉼터가 적극적으로 활동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운 실정이다. 박 상담팀장은 “청소년의 쉼터 이용률을 높이려면 쉼터와 공교육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가정 밖 청소년 대상 범죄 단속 강화 역시 필요하다. 박순석<사회대 사회학과> 교수는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성범죄를 막기 위해 「청소년성보호법률안」을 철저하게 집행하고, 청소년 및 부모에게 이에 대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고 답했다. 또한 “가정 밖 청소년은 온라인 성범죄의 위험에 취약한 집단이기에 이들을 향한 지원을 지속적으로 강화하고 발전시켜야 한다”고 전했다.

가정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사회로 떠밀려 나온 가정 밖 청소년은 위태로운 상황에 처해있다. 박 팀장은 “가정 밖 청소년을 비행청소년으로 치부하는 사회적 인식이 남아있어 가정 밖 청소년의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가정 밖 청소년이 안전하게 자립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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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4:16:28
청소년 쉼터를 운영하고 이용하는데 있어서 지자체와 중앙 정부 간의 협력이 중요하며, 쉼터의 수와 질을 개선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식했습니다. 또한, 청소년들이 인터넷과 SNS에서 위험에 노출되는 상황에 대해서도 적극적인 대응과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정 밖 청소년들의 안전하고 건전한 성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더욱 노력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