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장르를 아우르다
음악에 대한 사랑으로 장르를 아우르다
  • 김다빈 기자
  • 승인 2023.03.02
  • 호수 1560
  • 8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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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교 작곡과 출신의 김일진 가수 겸 작곡가는 그룹 ‘허쉬’를 통해 대중음악계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이후 김 동문은 빈 국립음악대학 작곡과 석사 과정을 거쳐 순수음악을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까지도 작곡과 가창을 겸하며 꾸준히 음악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전공이나 장르의 제한을 받지 않고 폭넓은 음악적 역량을 선보이는 그를 만나봤다.

음악적 도전을 이어가던 학창 시절
호기심 많은 학생이었던 김 동문을 음악의 길로 들어서게 한 것은 어렸을 적 읽었던 위인전기였다. “어릴 적 집에 있던 위인전기에 실린 위인 중 유독 음악가가 제 눈에 많이 보이더라고요. 그걸 보고 ‘음악 하는 사람은 위대하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 후로 제 학창 시절은 늘 음악과 함께였죠.” 이후 그는 종교 음악에서부터 클래식, 재즈까지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나의 놀이처럼 접했고, 그 과정에서 ‘떠오르는 대로’ 악보를 그리고 곡을 쓰기도 했던 경험이 모여 작곡가의 꿈으로 이어졌다.

진로가 확고했던 그는 자연스레 본교 작곡과로의 진학을 택했다. 김 동문의 대학 시절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모든 음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찼다고 한다. “주변 가수들의 공연에 코러스나 세션으로 참여하기도 하고, 편곡을 돕기도 하며 대중음악 관련 경험을 쌓다 보니 대학에서의 작곡 공부를 마칠 때쯤엔 문득 가요가 해보고 싶어졌어요.” 그가 본교를 졸업한 후 그룹 ‘허쉬’로 가요계에 데뷔한 이유는 연예인이나 가수가 되고 싶어서가 아닌 그저 ‘대중가요가 하고 싶어서’였다.

그는 그룹 허쉬로 활동하며 하고 싶었던 대중음악을 할 수 있어서 즐거웠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음악에 대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고 말했다. 가수로 활동하다 유학길에 오르게 된 계기도 음악 공부를 끝까지 해보고 싶단 마음 때문이었다.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 진지하게 고민하다 보니 순수 음악을 끝까지 해보고 싶어졌어요. 순수 음악의 고장인 빈으로 가길 결정하고 난 후에 바로 떠났던 것 같아요.”

음악에 대한 열정 하나로 대학에 합격하기도 전에 호기롭게 유학길에 올랐던 김 동문의 유학 생활은 전혀 순탄치 않았다. 그는 오스트리아에서 모든 것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만 했다. 빈 국립음악대학의 합격을 기다리며 말조차 통하지 않는 타국의 수업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독일어를 배웠고, 한국에서 수료한 학사 학위가 인정되지 않는 탓에 다시 학사 과정부터 차근히 밟아나갔다. “늦은 나이에 입학해 저보다 10살 어린 친구들과 경쟁하려니 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못 한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창피한 것까지 가는 거예요. 그런 순간들이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마치 어려운 모험에 도전하듯 8년간의 유학 생활을 견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유학을 선택한 것은 인생에서 가장 잘한 선택 중 하나였다”고 말한다. “형편도 어렵고 힘든 상태에서 음악을 하는 게 ‘배고픈 사치’ 같았어요. 그래도 내가 정말 예술가가 된 것 같단 생각이 들어서 유학 생활을 버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라고 덧붙였다. 힘들었던 유학 생활은 김 동문의 실력과 내면을 모두 성장시키는 밑거름이자, 앞으로 나아가는 자신감이 됐다.

음악계의 ‘하이브리드’가 되다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본격적인 ‘제2의 음악 생활’을 시작했다. 빈 국립음악대학에서 순수음악을 배우고 복수전공으로 재즈를 공부했기에 김 동문이 가진 음악적 역량은 더욱 풍성해졌다. 그는 이러한 배경지식을 토대로 가수 겸 작곡가로서 순수음악과 대중음악 활동을 병행하며 △리처드 용재 오닐 △앙상블 ‘Ditto’ △이기찬 △이은미 등의 앨범 프로듀싱과 편곡을 맡았다. 또한 각종 OST나 발라드 작곡을 담당했으며, 동시에 꾸준히 자신의 앨범을 발매하고 OST 가창에 참여하기도 했다. 스스로 끊임없이 고민하던 ‘앞으로 어떤 음악을 해야 할지’에 대한 해답을 ‘여러 음악을 하는 것’으로써 찾은 셈이었다.

클래식과 대중음악에 대한 자신의 애정을 비율로 견주어 나타낸다면 ‘5대 5’로 나뉜다는 그. 그는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둘 다 하고 싶다”는 말에 친구가 “그러면 그렇게 하라”는 단순한 답을 내려준 것이 현재까지의 음악 생활에 큰 도움이 됐다고 전했다.  다양한 장르를 시도하는 일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 동문은 “음악은 장르가 다르더라도 다 연결되는 부분이 있어서, 큰 틀 안에서 스타일을 바꾼다고 생각하면 쉬워요. 한 장르의 음악적 지식이 다른 장르에 도움이 되기도 하죠.”라고 답하며, “저는 가요와 클래식을 이론으로, 또 경험으로 충분히 공부했기 때문에 둘 다 즐길 수 있었어요.”라 말하며 웃었다.

그는 음악을 하는 모든 순간이 다 행복했다고 말한다. “순수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 결과물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과정이 좋아요. 그중 녹음하는 순간을 가장 좋아합니다. 녹음 과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제 손을 거쳐 직접 지휘하고 통솔하는 게 참 즐거워요. 힘들면서도 재미있어요.” 길었던 그의 음악 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마리아칼라스홀에서 단독 공연을 진행했던 때라고 한다. “정말 잘하고 싶어서 제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했던 공연이었어요. 제가 작곡한 노래를 직접 피아노를 치며 부를 수 있다는 게 좋아서 세션 하나까지 세심하게 신경 썼어요.”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자신의 삶에서 음악이 가지는 의미를 묻자 김 동문은 “제 안엔 음악이 너무 커서 그냥 제가 음악 안에 있는 것 같아요.”라고 표현했다.
 

단독공연 리허설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단독공연 리허설을 준비하는 모습이다.

‘반짝반짝’ 빛날 그녀의 음악 생활
음악 하나만을 보고 열심히 달려온 그는 앞으로 단순히 음악 하는 사람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그동안 제가 조금 아팠는데, 점차 회복되는 중이라 이제부턴 다시 음악 작업을 할 거예요. 요즘 들어 클래식이 가진 깊이가 좋아져서 클래식한 느낌의 피아노 앨범을 준비해 볼 생각입니다.” 그는 피아노를 통해 오래 들어도 매번 새롭게 들리는 음악으로 대중 앞에 서고 싶단 뜻을 전했다.
 

▲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모습이다.
▲ 피아니스트로 활동하던 모습이다.

끝으로 자신처럼 음악을 사랑하는 후배들에겐 ‘지금 자신이 있는 자리를 귀중하게 생각하는 자세’를 강조했다. “열심히 임하다 보면 그 결과는 꼭 음악이 아니더라도 다른 좋은 성과물로 반드시 나타나요. 그런 성실함은 어디서든 다 알아주니까요.”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 하나로 항상 최선을 다하며 다양한 장르와 역할을 넘나드는 김 동문. 성실함이 곧 힘이 된다는 그의 말처럼, 지금의 위치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다 보면 언젠가 보다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사진 제공: 김일진 가수 겸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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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14:21:43
자신이 좋아하는 음악으로 세상에 도움을 주고 싶다는 그의 의지와 미래 계획에 공감합니다. 음악을 통해 깊이 있는 감성을 전달하고자 하는 그의 음악적 탐구와 창조적인 노력을 응원합니다. 그의 음악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위로를 전해주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