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심사평]
[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부문 심사평]
  • 신성환<인문대 미래인문학융합전공학부> 교수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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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소설 부문 작품은 예년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7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개개의 완성도 면에서는 높은 수준을 보였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충분히 준비하고 공들여 집필한 작품들을 응모했으리라고 여겨집니다. 다들 안정적인 문장력을 바탕으로 긴장을 잃지 않고 집요하게 서사적 문제의식을 구현하고 있는 것도 고무적입니다. 짧고 빠른 것들만을 선호하는 우리 시대에, 소설을 쓰는 일의 심각함과 지루함을 기꺼이 참아내는 노력이야말로 지극히 인간적이고 아름답습니다. 긴 시간을 들이고 강한 인내심을 발휘해 준 응모자들의 글 쓰는 삶을 열렬히 응원합니다.

자기 정체성에 대한 탐구, 관계와 기억의 상실, 온전한 소통과 공감을 향한 갈망, 새로운 과학기술이 초래한 불확실성 등 응모작품들이 다루는 주제는 우리 시대가 공유하는 사회문화적 불안을 예민하게 포착하고 있습니다. 특히 음식을 함께 먹거나 나눔으로써 삶의 위안과 온기를 얻는 설정이 서너 편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거창하고 극적인 경험이 아닌, 담담하고 소박한 일상 속에서 일종의 ‘숨 쉴 공간’을 찾아내려는 소설적 모색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당수 소설들 속에서 요란한 사건이나 갈등이 부재한다는 점도 특이했습니다. 실종이나 이별 같은 사건이 나오기는 하지만, 인물들이 마땅히 자연스레 받아들일 만한 일로 그려집니다. 외부의 맥락을 따져 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고 되새기는 계기로 수용하면서 결국엔 작은 시작을 가늠하는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세계와 사회를 변혁하려는 서사적 상상력이 위축된 반면, 주어진 현실을 점검하고 미래의 불투명함을 감내하려는 내성적인 태도가 반영된 탓일 것입니다. 덧붙여, 미학적인 문장을 쓰기에 골몰하기보다는 소설의 고유한 세계관에 부합하는 정제된 문장을 사용할 것을 권유합니다. 소설의 진정한 개성은 문장보다는, 문장이 빚어내는 소설의 세계관에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우수상으로 선정한 <모든 것은 영원했다, 탄생하기 전까지는>은 제목과 도입부를 보고 다소 관념적인 작품으로 생각했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흥미진진하고 독창적인 소설이었습니다. 예술을 창작하는 인간만의 고유성을 기계에게 강탈당하는 설정은 진부한 것이겠지만, 다섯 개의 섹션을 통해 유려하게 이야기의 서술 방식과 톤을 변주해 나가는 솜씨가 인상적이었습니다. 다양한 문체와 문채를 구사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사변적인 표현을 과하지 않게 사용하면서도 제빵공장 노동, 다단계 마케팅, 과학기술의 특이점(特異點) 등의 시의적 소재를 잘 녹여내었습니다. 도입부와 결말부를 천일야화의 모티브로 매끄럽게 연결하여, ‘발견하는 읽기’의 재미도 선사했습니다. 소설을 읽는 지적인 즐거움을 보여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작으로 뽑은 <전조증상>은 흠잡기 어려운 탄탄한 서사구조와 문장형식을 바탕으로, 어머니와 연인과의 관계에서 빚어진 주인공의 내밀한 심리적 장소를 독자가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했습니다. 가작인 <밤바다 기차>는 비소설적인 진술에 가까운 부분들이 적지 않아 아쉽긴 했지만, 환상적인 상상력을 무리 없이 활용하면서 영원히 불가해한 존재로서의 타인과 고립적 자기 인식을 곡진하게 담아냈습니다. 마지막으로 가작인 <얼그레이차와 라티아오>는 단편 소설로 보기에는 짧은 분량이지만, 타자를 통해 발견하는 스스로의 타자성이라는 주제를 가독성 있게 풀어낸 작품이었습니다. 해마다 한대신문 문예상 응모 소설들을 읽으며 즐겁게 11월을 마무리합니다. 귀한 글이 주는 감동,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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