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전조증상
[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가작] 전조증상
  • 김지하<사회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17> 씨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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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이 사태의 전조증상이었다. 머리가 미칠 듯 가려웠던 것 말이다. 모기에 물린 것 같기도 맨다리에 억센 풀이 스치는 것 같기도 했다. 가장 참기 힘든 건 몸에 바짝 소름이 돋는 종류의 가려움이었다. 정수리부터 발바닥까지 서서히. 가려움은 윤영의 온몸을 오소소하게 만들어야만 직성이 풀렸다. 그럴 때마다 윤영은 버섯 포자를 떠올렸다. 거실 베란다에 놔둔 산세베리아 화분에 돋아난 노란 버섯 군집을. 고작 며칠 햇볕을 쬐지 못했더니 흙 표면에 징그럽게 돋아나 있었다. 윤영에게 가려움은 그런 존재였다. 

 가려움은 머리를 긁는다고 해결되지 않았다. 긁어대도 그뿐이었다. 가려움이 해소된 자리에는 원인 모를 갈증이 남았다. 정확히 말하면 갈증이라기보다는 충동에 가까웠다. 머리를 긁고 나면 무언가를 하고 싶었다. 그게 어떤 행동인지, 혹은 정말 물을 마시고 싶은 건지는 저도 잘 몰랐다. 다만 찝찝한 뒷맛이 남는 건 분명했다.

 심각함을 깨닫고 피부과를 찾았을 때는 이미 빈도가 잦아진 후였다. 그 병원은 진료를 잘하기로 소문난 곳이었지만 속 시원한 원인을 찾아내진 못했다. 대신 붉은 반점이 올라오면 바르라며 스테로이드 연고 하나를 처방해 줬다. 다음은 집 앞 의원, 그다음은 사거리의 종합병원, 심지어 단골 미용실까지 다녀왔지만 큰 수확은 없었다. 남은 곳은 왕복 한 시간 거리의 대학병원과 옆 동네의 오래된 한의원 정도였는데, 후자는 썩 내키지 않았다. 

 한의원은 옆 동네 터줏대감 중 하나였다. 그래서 병원이지만 동네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겸했다. 윤영이 그곳을 찾은 건 손에 꼽힐 정도였다. 십여 년을 그 동네에서 나고 자랐지만 한의원 안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한의원 근처에 묻어 있던 특유의 냄새만은 생생했다. 나무 냄새라기에는 진득하고 꾸덕한 향. 뜨겁게 달여진 고리타분한 향은 한의원 앞마당에 깊숙이 배어있었고, 윤영의 엄마도 그런 냄새를 풍겼다.

 엄마는 종교가 없는 대신 한의학을 종교처럼 믿었다. 주일이 되면 교회에 가는 교인들과 똑같았다. 감기에 걸려도 침을 맞았고, 몸살이 나면 체내의 독을 빼낸다며 부항을 떴다. 약 몇 봉지에 나을 증상을 키워오기도 부지기수였다. 몇 번은 엄마를 다그쳤지만, 윤영은 이내 인정하기로 했다. 엄마가 사이비에 빠졌으면 집에 숟가락 하나 남아나지 않았을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오히려 다행이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럴 수 있는데. 요즘 잘 주무세요?”

 “머리가 가렵기 전까지는 잘 잤어요. 딱히 스트레스를 받은 기억도 없고…….”

 “몸이 스트레스에 무뎌진 걸지도 모르죠. 무의식중에 꽤 스트레스를 받은 일이 있을지도요.”

 저는 스트레스가 심하면 없던 멀미를 하더라고요. 의사가 무언가를 빠르게 타이핑하며 말했다. 가정의학과 의사는 최근에 만난 의사 중에서 가장 친절했지만, 윤영은 불친절해도 좋으니 눈에 보이는 확신을 얻고 싶었다. 

 “일단 약 사흘 치를 드릴게요. 그래도 호전이 없으면 스트레스 검사를 받아봅시다.”

 “스트레스 검사요?”

 “음, 자율신경계라고 들어보셨죠?”

 주말 아침 방송에서 스치듯 들은 기억이 났다. 현대인의 스트레스 특집이었다. 윤영이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가 팜플렛 하나를 펼쳤다. 몸의 평면도와 뇌 그림이 보였다. 그림 옆에는 자잘한 설명이 빼곡했다. 글씨 크기가 너무 작은데. 윤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밑줄을 죽죽 긋는 볼펜에 집중했다.

 “자율신경계가 우리 몸의 신진대사를 제어하는데, 스트레스가 바로 여기에 영향을 미쳐요. 스트레스 지수가 높을수록 심장박동이 빨라지거든요. 그래서 심박수 검사를 하면 몸이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죠.”

 “스트레스 몇 점, 이런 식으로 나오는 건가요?”

 “네. 스트레스 점수도 나오고, 신체적 스트레스가 높은지 정신적 스트레스가 높은지도 알 수 있고. 여러모로 환자분에게는 도움이 될 것 같네요.”

 윤영은 팜플렛을 가져와 찬찬히 읽었다. 표지에는 활기차게 강변을 달리는 남녀 한 쌍이 인쇄되어 있었다. 한 페이지를 넘기자 똑같은 사람들이 생기는 오간 데 없는 표정으로 하품했다. 바로 옆 장은 검사와 관련된 각종 숫자와 그래프로 빼곡했다. 윤영이 관심을 보이자 의사가 새 책자를 꺼냈다.

 “필요하면 깨끗한 걸로 챙겨가세요. 맨 뒤에 적힌 번호는 병원에서 운영하는 스트레스 클리닉인데, 생각 있으면 상담 한 번 받아보시고요.”

 무의식의 스트레스니 나도 모르는 심리니 하는 말은 영 믿음직스럽지 않았다. 윤영은 언제나 가시적인 것이 좋았다. 그래서 항상 수치나 확률, 그래프 따위에 흔들렸다. 자신에게 확신을 주는 건 그런 종류였다. 지금 상황만 봐도 그랬다. 의식 저편에 숨어 있던 스트레스가 이제서야 가려움으로 나타나니 뒤통수를 맞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무의식이 몸의 주도권을 빼앗아 반란을 꾀하는 것 같았다. 

 

 

*

 “어쨌든 이가 생긴 건 아니라는 거지?”

 옮을 일은 없어서 다행이야. 윤영의 이야기를 듣던 그가 시시덕대며 농담을 건넸다. 그는 거실 소파에 앉아 닭가슴살이 들어간 두꺼운 샌드위치를 먹는 중이었다. 그가 샌드위치를 한 입 크게 베어 물었다. 그리곤 걱정하지 말라는 듯 윤영의 어깨를 가볍게 다독였다. 팔 움직임의 반동으로 호밀빵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던 양상추 한 조각이 하얀색 러그로 떨어졌다. 앗. 그가 짧은 탄성을 흘리며 윤영을 흘긋 쳐다봤다. 

 “그게 원인이면 지금까지 이를 백 마리는 잡았겠지.”

 윤영은 휴지를 뽑아 양상추 조각을 주웠다. 케이블 채널에서 철 지난 드라마가 시작하려는 참이었다. 유명 작가가 쓴 막장 드라마였다. 낯익은 주인공의 얼굴이 화면 가득 들어찼다. 언뜻 봐도 고지식하게 생긴 주인공의 남편이 이혼 서류를 들고 노발대발하고 있었다. 윤영은 갑자기 흥미가 떨어져 채널을 돌렸다. 이번엔 말쑥하게 차려입은 기자가 국회에서 여당이 어쨌네, 야당이 저쨌네 하는 소식을 보도했다. 한 덩어리로 뭉쳐져 난장판이 된 사람들이 자료화면으로 지나갔다. 한껏 비이성적으로 싸우는 사람들 때문인지, 가려움이 스멀스멀 몰려왔다. 참지 못하고 두 손으로 머리를 벅벅 긁었다. 

 “야, 너 그러다 피나!”

 그가 윤영의 손을 잡아채며 말했다. 아니나 다를까 손톱 사이에 피가 검은 때처럼 끼어있었다. 내일 스트레스 검사를 받아야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병원 다시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가서 뭘, 머리통이 가려워서 미칠 것 같다고 해?”

 그 사이 화면 속 사람들은 더욱 격렬하게 싸워댔다. 윤영은 문득 저들의 스트레스 지수가 궁금해졌다. 저렇게 치고받으면 오히려 스트레스 지수가 낮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치고받아서 스트레스가 배로 높아졌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진통제라도 맞으면 괜찮아질까 해서.”

 “너 아까 내 말 못 들었니? 병원을 세 군데나 갔는데 죄다 별 이유는 없다고 했다니까. 오늘은 무의식중의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더라.”

 윤영은 ‘지금 보니 그 스트레스의 원인이 너’까지 말하려다 그러면 정말 싸울 것 같아서 입을 다물었다. 그는 들었는데 아까는 네 기분이 너무 안 좋아 보여서, 하며 말끝을 흐렸다. 그가 볼에 침을 모아둔 것처럼 웅얼대면 괜히 답답했다. 권태기가 오면 밥 먹는 게 가장 꼴 보기 싫다고 했던가. 하지만 그가 뭘 먹는 모습을 보는 건 괜찮았다. 오히려 윤영은 음식을 복스럽게 먹는 게 그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됐어. 내가 알아서 할게.”

 윤영이 손톱에 낀 피를 닦으며 일어났다. 너 오늘은 소파에서 자. 갑작스런 축객령에 그가 억울하다는 듯 쳐다봤다. 아무렴 어때. 윤영은 방문을 세차게 닫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머리는 여전히 가려웠고 문 틈새로는 옅은 말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예능 프로그램 진행자의 걸쭉한 사투리가 들렸다. 소리 좀 줄일래? 윤영의 외침에 그가 대답 없이 인공지능의 이름만 애타게 속삭였다. 

 지니야? 네. 소리 줄여줘. 소리를 줄이려면 지니에게 ‘소리 줄여줘’라고…… 그게 아니라, 지니야. 지니야……

 그는 볼륨보다 램프의 요정 지니를 먼저 소환할 기세로 인공지능 스피커를 부르짖었다. 알라딘의 지니는 소원을 세 가지나 들어줬는데 그의 인공지능 지니는 영 신통치 못했다. 이 정도면 리모컨을 들 만도 한데 그는 이상한 구석에서 끈질겼다. 처음엔 그런 부분이 좋았던 것 같기도 했다. 윤영은 한참을 뒤척이다 뒤집어 놓은 스마트폰을 켰다. 

[애인이 말하는 모습이 꼴 보기 싫어. 같이 밥 먹는 건 좋거든? 걔가 밥을 진짜 맛있게 먹어. 근데 말할 때마다 끝을 좀 웅얼거리는데... 그게 약간 침 덜 삼킨 사람 같아서 짜증나.]

 익명 커뮤니티의 연애 게시판은 늦은 시간일수록 활발했다. 금세 댓글이 하나 달렸다.

 ↳ 그건 그냥 애인이 아니라 먹방 유튜버 아님? 먹방 유튜버가 ASMR이랍시고 먹다가 말하면 존나 짜증 나던데.

 윤영은 웃음소리를 들키지 않으려고 이불 속에서 끅끅댔다. 이어서 남들의 연애 고민을 읽었다. 정신없이 읽다 보니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향했다. 화면을 끄고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스마트폰의 열기에 얼굴과 손바닥이 뜨끈했다. 온종일 머리에 감각을 집중한 탓에 피곤했지만, 먹방 유튜버라는 단어가 자꾸 맴돌았다. 윤영은 푹 자겠다는 일념으로 다시 눈을 감았다. 구불거리는 빛무리가 눈꺼풀에 일렁였다. 침실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가만히 누워있을 뿐인데 정수리에서 세찬 맥박이 뛰는 듯했다. 

 

 

*

 반차를 쓰고 스트레스 클리닉에 가려던 계획은 무산됐다. 

 저녁 회식이 없어진 대신 팀에서는 종종 점심 회식을 했다. 굳이 따지자면 윤영은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했다. 윤영이 좋아하는 건 누군가와 밥을 같이 먹는 행위 그 자체였다. 하지만 몇몇은 맛있는 밥보다 그 안에서 이뤄지는 대화를 더 좋아했다. 스몰 토크라면서 항상 빅 토픽을 물었다. 말마따나 날씨나 어제 본 드라마 정도가 적당할 것 같은데 주변에선 애인의 유무, 사귄지 얼마나 됐는지, 결혼 생각은 있는지를 더 궁금해했다. 

 윤영은 머리를 긁적이며 조용히 칼국수 면발을 건져 먹었다. 다행히 오늘은 다른 주제가 활발했다. 맞은 편에 앉은 백 부장이 열심히 침을 튀겼다. 어제 시사 프로그램에서 본 그 이야기였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늘 아침에 그와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출근한 것이 마음에 걸렸다. 윤영은 일단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윤영 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윤영 씨가 몇 달 전까지는 이십 대였으니까 의견 좀 들어보자고. 백 부장이 윤영을 쳐다봤다. 야당에 뭐라고 하는 부분까지는 들었는데 그 뒤는 문자를 보내느라 기억에 없었다. 윤영은 수그린 고개를 치켜들며 되물었다.

 “네?”

 다시 생각해도 얼빠진 목소리였다. 순간 정수리에서 무언가가 꿈틀거리며 태동했다. 벼락같은 가려움이 정수리로 들어와 몸을 관통하는 느낌이 들었다. 스트레스 때문이에요…… 무의식중의……. 의사의 말이 메아리처럼 울렸다. 윤영은 머리를 긁는 대신 손등을 꼬집었다. 

 “아무래도 항상 양측 다 만족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오케이. 그럼 이십 대 의견은 중도인 거로.”

 백 부장은 낮술을 하겠다며 맥주 한 병을 주문했다. 윤영이 한 잔 받아 마시는 사이에 화제가 다시 전환됐다. 서울의 벚꽃 명소 이야기였다. 그와 윤영도 저번 주엔 벚꽃 명소에 다녀왔다. 벚꽃만큼이나 사람이 많았다. 벚꽃이 핀 호수 둘레를 줄지어 걸을 정도였다. 이동의 자유를 잃은 채 둥근 호수를 나란히 걷는 처지가 회전초밥과 다름없었다. 그날 뭘 했더라. 윤영은 젓가락으로 칼국수 사리를 잘근잘근 끊으며 생각했다. 딱히 떠오르는 건 없었다. 옆자리에 앉은 윤영의 사수가 그만 짐을 챙기라며 속삭였다. 

 “전 오늘 미팅이 있어서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어, 그래. 미팅 끝나고 회사 복귀하면 나 좀 보자고.”

 백 부장이 나가보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윤영도 자료 준비를 돕는다는 핑계로 함께 일어났다. 윤영의 사수가 식당 앞 커피 자판기에 서 있었다.

 “주임님. 담배 피우고 자판기 커피 마시면 입에서 쩐내나요. 이따 미팅 간다고 하셨으면서.”

 “이 맛대가리 없는 국숫집에 딱 하나 있는 장점이 커피야. 요즘 공짜로 커피 주는 데가 어디 있니?”

 정 주임이 자판기 커피를 들이켰다. 그리고 오늘 클라이언트 재수 없으니까 입 냄새 좀 나도 돼. 윤영은 깔깔거리며 웃었다.

 “주임님. 진짜 큰일 낼 사람이네요.” 

 “윤영 씨, 몰라? 오늘 만나는 클라이언트랑 부장,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야. 그래서 우리 거래처 된 거잖아. 저번에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는데 꼰대 둘이서 아주 형님 아우 하더라.”

 “안 그래도 아까 이상한 소리 하셔서 당황했잖아요.”

 윤영은 주머니에서 자일리톨 껌을 꺼내 씹었다. 입이 화해지니 가려움이 좀 가셨다.

 “손등은 왜 그래?”

 정 주임이 윤영의 손을 보며 물었다. 아까 너무 세게 꼬집었는지 불그스름한 손톱자국이 보였다.

 “요즘 이상하게 머리가 엄청 가렵네요. 그래서 꼬집었는데 상처 난 줄은 몰랐어요.”

 “긁으면 얼마나 긁는다고 상처까지 내면서 참아? 그냥 긁어.”

 그사이에 정 주임은 커피를 한잔 더 뽑아 마셨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가 뜨겁지도 않은지 후루룩 마시는 소리가 경쾌했다.

 “주임님. 아까 이 집의 유일한 장점이 공짜 커피라고 했잖아요.”

 그렇지. 정 주임이 종이컵을 구겨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럼 그 유일한 장점 때문에 여기에 오는 거예요?”

 그건 아니지. 정 주임이 대꾸했다.

 “회사에서 가깝잖아. 적당히 타협하는 거지.”

 “자신과의 타협, 뭐 그런 건가요?”

 “그럼 나랑 타협하지, 누구랑 하니? 만사가 귀찮은 나와 맛있는 점심을 먹고 싶은 나 사이에서 귀찮은 내가 이긴 거야.”

 정 주임은 실없는 소리를 들었다는 듯 웃으며 대답했다. 하지만 윤영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부장이 정치 이야기를 할 때 맞장구치는 게 타협이다. 혹은 어제처럼 하고 싶은 말을 꾹 참는 게 타협이라면 타협이다. 어쨌건 윤영은 항상 남들과 타협해야만 했다. 그래서인지 자신이 정한 어떤 기준만큼은 절대적으로 지키고 싶었다. 이를테면 혼자 앉아서 밥 먹지 않는 것이 그랬다. 

 언젠가 이 말을 들은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윤영의 어깨를 다독였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이젠 둘이니까 차차 나아질 거야.”

 문득 의문이 들었다. 처음부터 윤영은 그가 저 같은 사람이 아니어서 좋았다. 둘은 하나부터 열까지 달랐으니까. 그는 태평하고 낙천적이었으며 윤영은 천성이 그렇지 못했다. 성장 과정의 모든 요소가 윤영을 그렇게 이뤄온 것이다. 하지만 괜찮았다. 여태까지 윤영의 원동력은 바로 그 불안과 비관이었다. 오히려 제 기준에서는 끈질길 정도로 낙관적인 그가 더 이상했다. 

 “난 괜찮은데.”

 윤영이 말하자 그는 꽤 기특한 표정으로 손을 맞잡아왔다. 윤영의 손보다 온도가 높았다. 막 핸드크림을 발랐는지 촉감이 매끈했다. 그래서인지 손을 잡고 있으면서도 놓칠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윤영은 손아귀에 힘을 줬다. 맞댄 손바닥에 찌릿하고 간지러운 감각이 흘렀다. 

 “날씨가 건조하긴 한가 봐. 핸드크림을 발랐는데도 정전기가 생기네.”

 “네가 보기엔 내가 이상해?”

 “그냥 좀 긍정적으로 살아보라는 뜻이었어. 너한테도 그편이 더 좋을걸.”

 조만간 단풍이나 보러 가자. 그가 흥얼거리며 차에 시동을 걸었다. 창문을 내리자 선선한 바람이 밀려 들어왔다. 아직 색이 덜 든 은행나무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

 스트레스 클리닉은 병원 바로 근처에 있었다. 어제 들렀던 대학병원 건물이 클리닉을 아늑하게 감싸 안는 모양새였다. 밖에서 올려다 본 병원 건물은 꽤 기세등등하고 웅장했다. 이 클리닉은 우리 병원의 명성이 보장합니다. 건물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안으로 들어가니 어디선가 들어본 클래식 음악이 흘러나왔다. 베이지색 벽지와 은은한 간접 조명이 참 전형적인 느낌이었다. 카운터의 간호사가 친절한 미소로 윤영을 응대했다. 

 “오늘 7시 예약하신 오윤영 님 맞으시죠? 여기 간단한 설문 작성 먼저 부탁드릴게요.”

 검사실은 피톤치드와 아로마 냄새가 섞여 묘한 향을 풍겼다. 윤영은 반사적으로 숨을 들이마셨다. 별로 마음이 편해지는 향기는 아니었다. 코와 폐부 구석구석으로 스며드는 향이 느껴졌다. 괜히 머리가 간지러웠다. 

 “손가락 이쪽으로 주시겠어요?”

 “아, 네.”

 스트레스 검사는 기대에 비해 간단했다. 윤영이 한 일이라곤 가만히 앉아서 검지를 내놓는 것뿐이었으니까. 선이 주렁주렁 달린 뇌파 장치를 상상했던 윤영은 괜스레 민망해졌다. 몇 분이 지나자 모니터에 이런저런 그래프와 수치가 나타났다. 구불거리는 그래프를 계속 쳐다보니 정신이 혼곤했다. 검사실의 어슴푸레한 조명 탓인지 졸음이 몰려왔다. 윤영은 턱을 괸 채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리고 꿈을 꿨다. 

 꿈에서 윤영은 중학생이었다. 어릴 적 살던, 한의원이 있는 그 동네의 그 집이었다. 윤영의 시야에 엄마의 등이 보였다. 엄마는 노란 조명이 켜진 부엌 한 가운데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주변에는 택배 박스가 널브러져 있었다.

 엄마는 아빠와 이혼하자마자 가시오갈피 즙을 지어 먹었다. 백 퍼센트 국내산 가시 오가피. 뿌듯한 표정의 농부가 엄지손가락을 치켜들고 있는 박스가 집으로 배달됐다. 엄마가 박스를 거칠게 뜯었다. 그리고 즙 여러 포를 한 번에 뜯어 꿀꺽거리며 마셨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목구멍에 탈탈 털었다.

 엄마는 멈추지 않고 마셨다. 아니, 돌이켜보면 그건 마신다기보다는 목구멍으로 액체를 흘려보내는 행위였다. 무언가를 향해 혼자만의 경건하고도 미친 의식을 치르는 것 같았다. 그 게걸스러운 행위를 보고 있자니 카타르시스가 느껴지기도, 혹은 무섭기도 했다. 삼십 포짜리 가시오갈피 즙이 바닥을 보일 때쯤, 중학생 윤영이 소리쳤다.

 “엄마 미쳤어? 그만 마셔!”

 “왔어? 오늘은 좀 늦었네.”

 윤영을 흘긋 쳐다보는 엄마의 목소리가 너무나도 평온했다. 이윽고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 싱크대로 향했다. 그러고는 가시오갈피 즙 한 포를 뜯어 컵에 부었다. 끈덕하게 달여진 즙의 표면이 일렁였다. 엄마가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컵을 내밀었다.

 “너도 마셔. 몸에 좋대.”

 “안 마셔!”

 “가시나, 이렇게 좋은 걸. 나 혼자 다 마시고 오래오래 살련다.”

 엄마는 컵에 든 가시오갈피 즙을 보란 듯이 원샷했다. 윤영이 씨근거리며 소리쳤다.

 “엄마, 아빠랑 이혼해서 이래? 미안한데 난 엄마가 아빠랑 이혼한 날이 인생에서 제일 기뻤어! 난 내가 오 씨인 게 싫어질 정도로 지긋지긋해. 그러니까 엄마도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굴지 마!”

 이 공간에서 격정적으로 치달은 건 오직 윤영뿐이었다. 거친 숨소리가 잦아들자 부엌에 적막이 내려앉았다. 엄마가 윤영에게 한 발짝 다가왔다. 그리곤 마지막 가시오갈피 즙을 마셨다. 가까이에서 본 엄마의 표정은 정말 개운해 보였다. 한증막에서 긴 사우나를 마치고 나온 사람 같았다. 

 “윤영아. 너 가시오갈피 즙 효능이 뭔 줄 아니?”

 “…….”

 “가시오갈피는 해독 작용이 있대. 한의원 언니들이 그러더라.”

 “…….”

 “엄마는 지금 몸의 독소를 빼내는 거야. 즙도 어차피 물인데, 이 정도로 마시면 온종일 화장실만 가겠다. 그치?”

 “……그걸 아는 사람이 그래?”

 다시 건강해지는 거야. 엄마는 그렇게 말하며 쓰레기를 정리했다. 중학생 윤영은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짐작했다. 그 후에도 집에는 매달 가시오갈피 즙이 배달됐다. 하루에 한 박스를 다 마셨는데도 엄마의 독소는 사라지지 않는 걸까? 윤영은 조금 슬펐다.

 

 

*

 “병원에서 무슨 검사 받았어?”

 그는 스트레스 클리닉에서 보내준 자료를 읽고 있었다. 검사를 마치고 우편으로 보내주겠다던 그 검사지와 안내문이었다. 그는 팔랑거리는 소리를 내며 종이를 넘겼다. 너 생각보다 스트레스 점수가 높진 않네. 아삭거리며 사과를 먹는 탓에 말소리가 뭉개져 들렸다. 주말 아침부터 그 광경은 본 윤영은 참을 수 없는 짜증을 느꼈다. 이윽고 정수리가 미친 듯이 가려웠다. 가려움은 뒤통수를 타고 내려가 등골, 종아리 뒤편, 그리고 발바닥을 훑었다. 다만 이번에는 머리를 긁고 싶지 않았다. 

 윤영은 깨달았다. 이건 일종의 시그널이다. 여태껏 가려움은 윤영을 앞으로 밀고 있었다. 윤영의 정수리를, 뒤통수를, 발바닥을 간지럽히면서. 너무 간지러워서 그랬다는 핑곗거리가 되어줄 것처럼 윤영의 등을 떠밀었다. 그가 사과를 두 입째 먹던 순간, 윤영은 그의 손에서 우편물을 거칠게 잡아챘다. 손에서 떨어진 사과가 둘 사이로 도르륵 굴러왔다.

 “왜 이걸 네가 먼저 열어봐?”

 “아니, 그래. 내가 열어봐서 미안하다고 치자. 그런데 너 요즘 너무 예민하게 군다는 생각 안 들어?”

 윤영이 대꾸 없이 바닥의 사과만 쳐다보자 그가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리고 내가 가랄 때는 화만 내더니. 결국에는 병원 갔잖아?”

 “말은 바로 해. 결국 병원에 간 게 아니라 원래도 세 군데나 갔다 왔어.”

 “지금 그게 중요해?”

 “그럼 뭐가 중요한데? 너랑 내가 같이 사는 건 맞지만, 내 영역을 침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잖아. 별거 아닌 우편물이라도 나한테 온 걸 네가 열어보는 게 싫어.”

 “윤영아. 난 진짜, 우리가 하나가 됐으면 좋겠어. 좀 편하게 살면 안 될까?”

 과연 편하게 사는 것이란 무엇일까. 평생을 다르게 살아온 사람들이 모든 걸 공유하면 편하게 사는 건가? 서로 좋아하면 갑자기 모든 걸 나눠야 하는 걸까. 윤영은 서로의 기준을 넘지 않는 게 편했다. 그가 러그 위에서 음식을 먹어도 그냥 휴지로 줍고 마는 것. 관심도 없는 인공지능 스피커를 함께 고민해주는 것. 윤영의 걱정과 불안을 의미 없는 긍정으로 위로해도 그러려니 하는 것. 하지만 그는 자꾸 윤영을 바꾸려 들었다. 일심동체가 되자고 했다. 아빠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이 떠올랐다. 부부가 이렇게 뜻이 안 맞으니, 원……. 기억 속 아빠가 혀를 찼다.

 “야, 정선재.”

 “……왜?”

 “난 네가 너무 긍정충이어서 짜증 나. 그래도 널 만나기로 했을 때, 답도 없이 낙천적인 네 성격을 받아들이기로 했어. 그런데 넌 왜 자꾸 나한테 바뀌라고 해?”

 “바뀌라는 게 아니라 나아지자는 거야. 막말로 긍정충인 나를 만나서 부정충인 네가 바뀌면 스트레스 덜 받고 편해지는 거 아니야? 이게 그렇게 잘못됐어?”

 “긍정충은 정상이고 부정충은 비정상이니?”

 “…….”

 “선재야, 강요하지 마.”

 등줄기의 긴장이 풀리는 느낌과 함께 가려움이 말끔히 해소됐다. 윤영은 인내심이 좋았다. 그건 엄마를 닮았다. 그래서 엄마와 똑같은 독소를 지닌 거다.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가시오갈피 즙을 마신 그날. 윤영이 피가 나도록 머리를 긁어대던 그날. 그건 모녀의 체내에 지층처럼 쌓인 인내를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었다. 선재와 그만 살아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윤영은 떨어진 사과를 집어 들어 선재에게 건넸다. 표면이 반질반질한 홍옥이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선재가 사과를 받아들었다.

 짐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거실 베란다의 산세베리아 화분이 눈에 띄었다. 조그맣던 산세베리아는 분갈이가 필요할 정도로 커졌다. 이 집에서 그 정도 시간이 흐른 것이 놀라웠다. 윤영은 화분을 챙길지 잠깐 고민했지만, 그냥 놔두기로 했다. 윤영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던 선재가 물었다.

 “너 그럼 이제 밥은 혼자 먹어?”

 넌 혼자 밥 먹는 게 정말 싫다고 했잖아. 선재가 말했다.

 “구내식당 가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먹을게.”

 난 밥 먹는 공간에 누가 있기만 하면 돼. 윤영이 가방을 닫으며 일어났다. 왠지 선재를 다시 볼 일이 없을 것 같았다. 선재의 생각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윤영은 그랬다. 

 집에서 나온 윤영은 부동산이 아닌 옆 동네 한의원으로 향했다. 한 걸음을 옮길 때마다 낡은 나무 바닥이 삐그덕댔다. 여전히 특유의 향이 가득했다. 접수대에는 어딘가 까칠해 보이는 중년 간호사가 앉아 있었다. 엄마와 비슷한 나이대로 보였다. 저 사람이 엄마에게 가시오갈피 즙을 추천한 한의원 언니일까? 윤영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진료실로 들어갔다.

 “정수리에 침 한 대만 놔주세요.”

 진료실에 들어선 윤영이 다짜고짜 말했다. 나이 든 한의사는 잠시 멈칫하더니 진료대로 손짓했다. 윤영은 가만히 침대에 올라가 누웠다. 침놓을게요. 주름지고 뭉툭한 손가락이 윤영의 정수리에 침을 꽂았다. 별 느낌은 없었다.

 “아프지는 않죠?”

 “네.”

 윤영이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혹시 양선영 씨 아세요?”

 “양선영 씨……. 아, 거기라면 우리 단골이지.”

 “저희 어머니세요.”

 하하, 그래요? 노의사는 더 묻지 않고 그냥 너털웃음을 지었다. 

 “전 엄마가 왜 그렇게 한의원에 자주 갔는지 모르겠어요.”

 “흠, 한의원이 뜨뜻해서 좋다던데요. 원래 사람은 자기한테 잘 맞는 온도를 찾아가니까요. 침은 이 정도면 괜찮죠?”

 윤영은 이곳에 누워 뜨뜻함을 느꼈을 엄마를 상상했다. 어떤 자세로 누웠을지, 한의원 언니와는 무슨 대화를 나눴을지를 떠올렸다. 그렇다고 한의원이 친숙해진 건 아니었다. 윤영은 적당한 선에서 생각을 멈췄다. 정수리에 꽂힌 침이 쑥 빠져나갔다. 생각 이상으로 굵은 대침이었다.

 침을 맞고 나서는 미용실에 갔다. 뿌리 색이 빠진 염색모가 거슬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염색약을 바르던 미용사가 어머, 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저번에 머리 가렵다고 왔잖아요? 탈모 때문에 그랬나 보네. 여기, 정수리 살짝 밑에 백 원짜리 크기 정도로 머리카락 빠졌어요.”

 미용사가 윤영에게 손거울을 건냈다. 거울을 비스듬하게 기울이니 분명 그때는 없었던 구멍 하나가 보였다. 다행히도 머리카락이 조금 돋아나 있었다. 

 “그래도 곧 채워질 것 같으니까 걱정 마요.”

 윤영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십 원도, 오백 원도 아닌 딱 백 원짜리 크기의 구멍. 윤영에게 닥친 모든 일은 결국 그 정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왠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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