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우수] 모든 것은 영원했다, 탄생하기 전까지는
[2022 한대신문 문예상 소설 우수] 모든 것은 영원했다, 탄생하기 전까지는
  • 권현범<국문대 한국언어문학과 19> 씨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6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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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깊고 깊은 밤이다. 시계는 밤의 한 가운데를 가리키고, 모두 잠들어 다음 날 아침을 기다릴 시간이다. 방 안은 조용하다. 밤을 가로지르는 자동차 소리, 유흥가를 왁자지껄하게 수놓는 백치들의 소음과 분노, 다소 불편한 잠자리에 들어 끊어질 듯 끊어지지 않는 거친 코골이, 어느 것 하나 없다. 이따금 기계가 고르게 숨을 내쉬고 있을 뿐이다. 귀에 거슬림이 없는, 쥐 죽은 듯 고요한 지금 이 시간을 

 나는 좋아한다. 창문을 열고 슬며시 들어오는 바람을 느낀다. 창밖 너머로 주황색 가로등이 보인다. 어릴 적 나는 야경을 보는 게 무서웠다. 해가 떠 있을 땐 당연하던 것들이 밤에는 당연하지 않았다. 14층 아파트 옥상의 난간에서 낮과는 전혀 다른 경치를 보았고 이내 두려움을 느꼈다. 도시가 크게 아가리를 벌리고 어린 나를 꿀꺽 삼켜버릴 거라고. 나는 지금

 너를 죽이러 왔다. 방은 어둡고, 너는 앞을 바라보지 못한다. 그대는 깊은 한밤중에 있는 자, 달콤한 품속에서 수태되지 않은 자, 있어 보지도 않았고 본체도 없는 자, 그대는 깊은 한밤중에 있는 자... 

- 정말 저를 죽이실 생각입니까? 

 그런 말을 할 거라곤 상상조차 못 했다. 나는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하고 싶었다. 꼬리를 잡힐 만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에는 변수가 너무 많다.

- 당신은 일국의 황제, 무자비한 학살자, 밤마다 수청 드는 자를 가차 없이 죽여버리는 압제자... 갈 때 가더라도 재밌는 이야기를 들려줄 잠깐의 여유를 허락해 주시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제가, 지금 이 순간, 죽음 앞에서 어떤 이야기를 할지, 어떤 소설을 써낼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새하얗다 못해 투명한 피부가 어둠 속에서 반들거린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너는 나를 향해 다가온다. 허벅지의 창백한 핏줄이 거미의 다리를 닮아 있다. 규칙적인 들숨과 날숨, 적막한 심장소리. 나는 너의 귓가에 속삭인다.

 좋아, 그럼 날 만족시켜 봐.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나는 단지 네가 할 이야기가 궁금했을 뿐이다. 이 이야기는 1001일간의 환상여행, 사냥꾼과 사냥감이 동침하는 사마귀의 짝짓기, 벌거숭이들끼리 찰나의 랑데부, 그리고…….



Print ("Hello, World!")


#1

 하루 일과의 시작은 변기를 닦는 일이다. 전날 수십 명의 대변과 소변을 받아낸 변기는 언제나 그에 걸맞게 더러워져 있었다. 대야에 물을 받아 변기에 몇 차례 뿌리고, 그 위에 적당히 가루 세제를 뿌리고, 닳고 닳은 변기솔로 거품을 낸다. 덕지덕지 묻어 있는 대변 자국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지른다. 

 아이고 준성 씨, 깨끗이 좀 닦아. 아주 그냥 찌린내가 밖에까지 진동을 하네. 

 찌린내가 아니라 하수구 냄새예요. 아시잖아요. 여기 관리실 개조해서 만든 거라 환풍구도 없는 거. 제가 아무리 깨끗이 닦아도 몇 시간 내버려두면 냄새가 올라와요.

 아냐. 준성 씨가 야무지지 못해서 그런 거야. 똥휴지도 좀 제때제때 갈아주고, 응?

 나는 매일 아침마다 변기를 닦는 일이 문학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 고민한다. 문학은 무엇이고, 문학이 아닌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이를테면 사드 후작의 대변은 문학으로 받아들여지겠지만, 과연 그가 대변을 치우는 일에 대해선 얼마큼이나 이해하고 있었을지 의심스러웠다.

 시답잖은 생각을 변기물과 함께 내려보내고, 손을 씻는다. 이제 작업장에 내려간다. 원래부터 제과제빵에 흥미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문창과를 졸업하고 마땅히 할 일이 없었을 뿐이다. 

 신입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더구나 제과공장에는 남자가 드물기에 힘쓰는 단순노동을 주로 맡는다. 포대 나르기, 밀가루 채 치기, 설거지 등등. 그중 대부분의 시간을 설거지로 보낸다. 조막만한 계량스푼과 소금, 베이킹파우더를 담는 작은 종지부터 인간의 몸통만한 반죽통까지 크기도 모양도 쓰임도 제각각이다.

 설거지의 가장 큰 적은 마가린이다. 마가린의 기름기 앞에서 퐁퐁은 생각보다 무력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펄펄 끓는 온수를 들이붓는 것이다. 그러면 기름기가 말끔히 사라진다. 사르르 녹는다는 표현이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고무장갑 너머로 전해지는 온기도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온수는 무제한이 아니다. 10여 분쯤 지나면 온수는 떨어지고 찬물이 나오는데, 그때가 되면 퐁퐁을 박박 문질러가며 설거짓거리들과 씨름해야 한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이다. 손목과 허리의 통증을 무던히 버텨내는 일이다. 

 준성 씨, 여기 기름기 좀 남았다. 조금 더 빡빡 닦아줄래?

 예, 거기 두세요.

 설거지는 하면 할수록 더 쌓인다. 반죽이 하나 끝날 때마다 새로운 반죽통과 비타, 휘퍼가 추가되기 때문이다. 반죽기는 보통 3개가 동시에 돌아가고, 반죽이 완성되면 또다시 모양을 잡는 반죽성형을 거쳐야 한다. 네모난 반죽은 비닐과 틀을 활용해 간단히 해낼 수 있지만, 동그란 반죽은 반죽성형기를 쓴 후 다시 유산지로 말아줘야 한다. 준성의 설거지는 계량을 할 때 쓰기 시작한 볼(Bowl)에서 시작해, 반죽성형기 기계로 끝이 나는 셈이다.  

 기나긴 퐁퐁과의 사투는 잠시 미뤄두고, 작업이 어느 정도 진척되면 그때부터는 청소의 시간이다. 그래야 모든 근로자들이 비슷한 시기에 일을 끝마칠 수 있기 때문이다. 반죽 덩어리들은 일반 쓰레받기로는 잘 쓸리지 않는다. 매번 스크래퍼로 바닥을 긁어내야 한다. 이제는 무릎이 아플 차례다. 설거지하며 흘렸던 물이 바닥에 슬며시 젖어 스크래퍼는 검은 물투성이가 되어버린다. 마가린과 계란과 박력분, 베이킹파우더가 들어간 반죽일 뿐이란 걸 알면서도, 왜인지 매일 아침의 화장실 청소가 떠오른다. 그럴 때는 휴지로 한번 훔쳐주고 마저 계속한다. 

 나는 온종일 누군가의 얼룩을 지운다. 삶이란 먼지를 털어내는 일이야, 라며 폼을 잡아보고 싶기도 하지만, 자신의 일에서 어떠한 자부심도 느껴지지 않는다. 그저 돈을 받기 위해, 그날 저녁을 때우기 위해, 아담한 원룸의 월세를 내기 위해 하는 일일 뿐이다. 매일 밤 자기 전에 ‘나는 왜 여기 있는가’를 묻는다. 문창과에선 글을 쓰는 법을 배웠고, 그렇다면 뭔가 그럴싸한 답변을 궁리해낼 법도 한데 나는 그러지 못한다. 

 이제 막 완성된 반죽을 영하 18도의 냉장고에 옮긴다. 구멍이 숭숭 뚫린 타공판 위의 반죽은 보기보다 무게가 나간다. 설거지로 지친 두 팔이 후들거린다. 둥그런 쿠키반죽들이 하나둘씩 바닥으로 굴러떨어지더니 이내 전체가 와르르 무너진다. 반죽은 바닥에 짓눌리고, 타공판은 날카로운 굉음을 내고, 유산지는 공중에 휘날려 가장 마지막 떨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교향곡의 마지막 소절 같다. 

 여기서 일 못 해 먹겠어요.

 라는 말이 목 끝까지 차올랐다. 비참하고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몇 초 후에 실제로 했을지도 모르는 말이었다. 그러나 말은 나오지 못했다. 대신 누군가의 새된 비명이 들렸고, 사람들의 시선은 내가 아닌 그쪽을 향했다. 

 피가 흐르고 있었다. 반죽성형기에 손가락이 끼었던 모양이다. 뭉툭하게 깎여진 손톱의 절반이 떨어져 나가 맨살이 보였고, 손끝에서 묽은 피가 물처럼 흘러나왔다. 아직 전원도 끄지 못한 반죽성형기는 태연하게 평소와 같은 형태의 쿠키 반죽을 내보냈으나, 그것은 다만 불그스름했다.


#2

 “플랫폼과 기술을 소유한 0.001%의 기업인, 인기 정치인과 연예인 등 0.002%의 스타, 사회 전반의 일자리를 대체할 AI, 그리고 나머지 99.997%의 프레카리아트 단순 노동자. 머지않아 새로운 카스트 제도가 도래할 겁니다.”

 석세스 리치 클럽의 청년모임은 화려한 연회장에서 진행되었다. 회원들은 고급 실크를 덮어놓은 원형 탁자에 둘러앉아, 다과로 준비된 마들렌과 홍차를 즐겼다. 쥘리앙은 마들렌의 끄트머리를 홍차에 푹 담갔고, 차츰 스며들어가는 홍차의 얼룩을 감상했다. 한 입 베어 물은 마들렌에서는 얼그레이 향이 감돌았다. 관객석 앞,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 위에서는 스스로를 트리플 다이아몬드라 밝힌 중년의 남자가 청년들의 멘토를 자청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항간에선 우리를 다단계라고 매도합니다. 하지만 우린 그런 원색적인 비난에 흔들려서는 안 됩니다. 주위에서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정직하고 더욱 깔끔하게 각자의 사업을 해나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저희는 구매를 강요하거나 탈퇴를 거부하는 등의 비신사적인 행동은 결코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서로 힘을 합쳐 좋은 제품을 판매할 뿐입니다. 이게 왜 나쁜 일입니까. 좋은 일이지. 4차 산업혁명 시대, 대부분의 직업은 곧 사라질 겁니다. 그때 살아남는 건 플랫폼을 소유한 기업인들, 그렇습니다. 저희는 세계에 발을 뻗은 인적 플랫폼! 0.001%의 석세스 리치가 될 기회입니다, 여러분! 창창한 미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쥘리앙은 가슴이 벅차올라 미친 듯이 박수를 쳤다. 옆에 있는 다른 청년들도 어지간히 감격을 받은 것인지 열광적으로 손뼉을 치고 환호성을 질러댔다. 우리에게 좋은 미래가 기다린다는 말, 청년들은 태어나서 한 번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언제나 그들이 귀에 박히도록 배운 미래는 자원이 고갈되고 저출산 고령화가 심화되고 일자리를 빼앗긴 실직자로 가득한 디스토피아였다. 창창한 미래, 그런 표현을 듣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곧이어 재즈 공연이 시작되었다. 붉은 조명 위에 드럼과 색소폰, 콘트라베이스와 피아노, 마이크가 놓여 있었고,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자를 시작으로 연주자들이 줄줄이 들어왔다. 첫 곡으로 Fly me to the moon이 흘러나왔다. 

 “어때, 이 형님 덕에 이런 곳도 다 와보고 오늘 땡잡았지?”

 쥘리앙이 함께 온 친구의 어깨를 툭툭 건드렸다. 친구는 미묘한 표정을 하고 있었는데, 흥겨움과 불편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것처럼 보였다. 친구는 아직 석세스 리치 클럽의 회원이 아니었고, 맛난 걸 먹을 수 있다는 쥘리앙의 권유로 구경이나 하러 들어왔을 뿐이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얼마 전 쥘리앙이 강력 추천해서 억지로 사다시피 한 공기청정기가 여기 석세스 리치클럽의 제품이라는 것을 알고 배신감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쥘리앙은 그런 친구의 실망을 무마하려고 아까부터 온갖 호들갑을 다 떨어대고 있었으니, 은근 마음이 편치 못한 것은 쥘리앙도 매한가지였다. 

 “애초에 쥘리앙이 뭐야, 멀쩡한 이름 냅두고.”
 친구의 비아냥에도 쥘리앙은 꿋꿋했다.

 “요즘 같은 글로벌 시대에 외국 이름 하나정돈 있어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래도 제법 생각 많이 해서 지은 이름이야. 원래는 개츠비로 하고 싶었다? 근데 그러면 사람들이 자꾸 내 외모를 디카프리오랑 비교질해댈 거 같은 거야. 그래서 영어식 이름은 아니지만 쥘리앙으로. 너도 박범식 말고 샤를르라고 하는 게 어때? 있어 보이잖아.”

 친구는 쓴웃음을 지어보였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마음이 다급해진 쥘리앙은 재빠르게 다른 얘기로 넘어간다.

 “아니, 너 손 좀 보자. 이거 주부습진 아니야?”
 “그냥 건조해서 튼 건데.”
 “우리 엄마가 습진 때문에 손이 다 뒤집어진 거야. 그래서 내가 그랬지. 엄마, 우리 클럽에서 만든 세제를 고무장갑 벗고서 써봐요. 그러니까 엄마가 날 미친놈 취급하는 거야. 안 그래도 손이 따가워 죽겠는데 고무장갑 벗고 설거지를 하라 하느냐고. 내가 속는 셈 치고 한 번만 해보라고 끈질기게 말하니까 그제야 하시기 시작하더라구. 근데 이게 웬일이야! 몇 주 계속하니까 정말로 손이 괜찮아진 게 아니겠어? 우리는 상품을 만들 때 친환경 재료만을 사용하거든. 그러니까 손이 자연치유가 된 거야. 나도 이걸 눈으로 보고 나니까 우리 클럽에 대한 신뢰도가 급상승할 수밖에 없더라. 너도 속는 셈 치고 한 번 해봐. 뭐든 이렇게 한 발 내딛는 게 중요한 거야.”

 친구는 피식 웃었다. 이제 쐐기를 박아야겠다. 

“흔히들 다단계 하면 생각하는 게 피라미드 구조잖아. 맨 밑에 애들이 돈을 내면 다이아가 5할 먹고, 사파이어가 3할 먹고, 브론즈가 2할 먹고, 이럴 거라고 생각하잖아? 우리는 안 그래. 우리는 무조건 추천인이 가장 높은 비율의 포인트를 받고, 그 위의 사람들은 더 적은 포인트를 받게 돼 있어. 그래서 그런지 등급 이동도 꽤 자유로운 편이야. 이게 일반적인 다단계하곤 좀 다른 점이지. 조금만 신경 쓰면 너도 이걸로 먹고 살 수 있다니까.”

 됐다. 이만하면 할 만큼 했다. 쥘리앙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것이었으나,

 끝내 친구와는 다시 연락이 되지 않았다. 쥘리앙은 자신의 영업 능력 부족을 새삼스레 깨닫고 고통스러워했다. 


# 3

이제는 문학도 AI가 접수했다? - 문예창작 교실 <몰로이> 김용진 원장 인터뷰

진행자 :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박기자의 셀럽을 만나다’ 시간이 돌아왔습니다. 오늘은 AI를 활용한 문예창작 교실 <몰로이>의 김용진 원장을 모시고 인터뷰 진행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게스트 : 안녕하세요. 김용진입니다. 오늘 이렇게 귀한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진행자 : 먼저 문예창작 학원에 AI를 활용한다, 이게 좀 시청자들에게 낯설게 다가올 것 같은데요. 정확히 어떤 식으로 운영되는 겁니까?

게스트 : 그에 앞서 소설 쓰는 AI에 대해 설명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저희 교실에서는 생성적 사전학습 트랜스포머 3, 일명 GPT-3라고 하는 AI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미지 생성 인공 지능 시스템 DALL-E의 개발사로도 잘 알려진 오픈 AI가 2020년 선보인 인공 신경망 언어 모델입니다. GPT-3는 무려 45TB의 플레인 텍스트를 학습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인간과의 대화는 물론이고 독자적인 글을 써내는 것도 가능합니다. 저희 <몰로이>에서는 이 GPT-3를 활용하여, 학생들의 글을 첨삭해주고 수정할 방향성을 논의하는 등 온라인을 통한 1:1 합평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예, 그렇군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게스트 : 앞으로도 더 살펴봐야겠지만, 지금까지는 호평하는 학생이 대부분입니다. 사람이 가르칠 땐 자신의 주관에서 벗어나기가 어렵습니다.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도, 자신의 취향에 맞는 소재나 자신이 배워온 작법에 휘둘릴 가능성이 농후하거든요. 하지만 어마어마한 양의 텍스트를 학습해온 인공지능은 다릅니다. 더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분석이 가능하죠. 물론 이뿐만 아니라, 합평 도중의 폭언이나 비아냥 등 인간관계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피드백이 가능하다는 점, 사이트에 로그인만 하면 24시간 언제 어디서나 합평이 가능하다는 점이 저희 <몰로이>의 강점으로 사료됩니다.

진행자 : 선입견 없이 객관적인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 시공간의 제약 없이 편리한 접근이 용이하다는 점을 강점으로 꼽아주셨군요. 알겠습니다. 교실 <몰로이>는 사무엘 베케트의 소설 <몰로이>에서 인용해온 것으로 보이는데요. 평소에 문학을 즐겨 읽으십니까?

게스트 : 물론이죠. 소설 읽는 걸 좋아하구요. 학창 시절 고전에 많이 심취해 있었죠. 그렇다고 제가 문학을 전공한 건 아니구요. 컴퓨터 전공입니다. 하지만 문학을 사랑하는 한 명의 문학도로서, 저의 재능을 활용해서 문학과 접목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을까 고심하던 끝에 지금의 창작교실 <몰로이>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진행자 : 예, 저도 문학을 사랑하는 한 명의 문학도로서 반가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한편으론 다소 부정적인 의견이 나올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어떻게 인간 고유의 영역인 문학을 AI가 넘보느냐, 그것도 단순히 창작자도 아닌 사람을 가르치는 선생 노릇을 시키느냐. 이런 비판적인 반응을 들어보신 적은 없으신가요?

게스트 : 물론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시죠. 솔직히 저도 고민을 많이 해본 주제입니다. 하지만 제 결론은 언제나 똑같습니다. 제가 손대지 않더라도 이미 기술은 충분히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은 비가역적입니다. 돌이킬 수 없다는 거죠. 저 말고도 AI의 소설 창작에 뛰어든 개발자들이 많습니다. 저처럼 컴퓨터를 전공한 사람보단 외려 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제가 존경하는 이탈리아의 비평가 프랑코 모레티는 거대 말뭉치와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전산비평을 도입했습니다. 세계문학의 추세가 그렇습니다. 문학은 너무도 고귀해서 자신만의 고유한 바운더리를 갖고 있고, 수학적, 통계적으로 분석될 수 없다? 그것이야말로 문학에 대한 깊은 편견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오히려 한국문단의 그런 보수적인 풍토가 해외문학과의 괴리를 더욱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진행자 : 예, 충분히 일리 있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몰로이>를 운영하시는 입장에서 향후 계획이나 포부를 듣고 싶은데요. 

게스트 :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저희 <몰로이>는 수강생들이 더욱 깊이 있고 편리한 수업을 들을 수 있도록 노력과 열정, 자본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각 공모전과 신춘문예에 대비한 경향성 분석과 맞춤형 커리큘럼 제공이 빠른 시일 내에 이뤄질 것이구요. 앞으로는 대문호 클래스를 위한 AI 개발에 착수할 예정입니다.

진행자 : 대문호 클래스요?

게스트 : 예. 톨스토이, 발자크, 토마스 만, 포크너, 마르케스, 모옌 등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대문호의 글들을 학습시켜 그에 맞는 커리큘럼을 제공할 것입니다. 작가 지망생이라 하더라도 원하는 글쓰기 스타일은 저마다 다릅니다. 그런 지망생들의 각기 다른 요구를 무시하고 획일화된 수업만을 진행하는 것은 오히려 새싹들의 가능성을 짓밟는 일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멘토 삼고 싶은 대문호를 선택하고 집중적으로 교육받는 수업을 구상 중에 있습니다.

진행자 : 실제 작업은 진척이 있으십니까? 이게 가능하다면, 비단 창작 수업뿐 아니라 다른 식으로도 활용할 여지가 무궁무진하다고 생각이 드는데요. 이를테면 카프카의 미완성 작품들을 완성시킨다거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2부를 쓰게 한다거나, 어쩌면 기존의 문학사가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르겠군요.

게스트 : 아직까지는 여러 제약을 갖고 있긴 합니다. AI를 학습시키려면 그만큼 충분한 학습량이 필요합니다. 과작인 작가들의 작품은 당연히 안 될 테고, 다작을 했다 하더라도 문장 단위의 학습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니 소설의 주제의식이나 구조 같은 넓은 범위의 학습은 조금 요원한 일입니다. 어쩌면 강인공지능을 필요로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행자 : 예. 아직까지는 제약이 있고, 어쩌면 강인공지능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오늘 말씀 대단히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게스트 : 감사합니다.

박준성 기자 (Julian_sorell@vbc.co.kr)


#4

 유나바머를 만나기로 한 것은 구립도서관의 지하에 있는 구내식당에서였다. 조명이 켜지지 않아 어두웠으나, 그렇다고 스산한 분위기가 감돌지는 않았다. 어둠에 짙게 배어 있는 반찬냄새 때문이었다. 오히려 그것은 어릴 적으로 돌아간 것 같은 정겨운 감각이었다. 

 ‘유나바머’는 천재 테러리스트 유나바머에서 따온 닉네임이다. 나는 그를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에서 보았다. 자신과 혁명을 함께할 동지를 찾고 있다고 했다. 나는 혁명이니 동지이니 하는 것에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순전히 유나바머란 인간에 대한 흥미를 가져 그와 만나게 되었다. 요컨대 시험해볼 생각으로 만났던 것이다. 

“카뮈, 김수영, 제발트. 이 세 사람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압니까?”
 나는 그와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모습만 확인했을 뿐인데,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대뜸 말을 시작했다. 

“모르겠는데요.”
 유나바머는 남성으로도 보였고 여성으로도 보였다. 긴 머리칼, 긴 속눈썹과 하얀 피부, 아담한 체격으로 봐서 여자처럼 보였지만 목소리는 남자 쪽에 가까웠다. 전체적으로 중성적인 인상이었다. 이 사람이 정말 인터넷에서 매일같이 혁명을 외치는 과격분자가 맞는지 헷갈릴 정도였다. 

“세 사람은 모두 교통사고로 죽었습니다. 저는 자동차의 발명이 이 세 사람의 목숨만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자동차로 인해 얻어낸 막대한 경제적 이득은 차치하더라도, 구급차와 같이 자동차가 살려낸 생명은 고려하지 못한 발언 같군요.”
 나는 단박에 반론했는데 유나바머는 잠깐의 생각도 않고 바로 답했다.
“아니죠. 그게 오히려 자동차로 인해 죽은 생명을 고려하지 못한 발언입니다. 매년 한국에서만 교통사고로 3000여 명이 죽습니다. 다친 사람이나 죽은 동물을 포함하면 그 피해는 실로 막대합니다. 권정생 선생은 ‘이라크 전쟁에 반대하려면 서울 시내를 질주하는 자동차부터 반대하라’고 하셨습니다. 기술은 인간에게 더 많은 리스크를 안기는 식으로 진화해 왔습니다. 울리히 벡의 <위험사회>는 읽어보셨겠지요.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에게 생활의 편리함을 주었지만 대신 그 과학기술에 내재된 위험을 모두 측정하고 통제하는 것은 불가능해졌습니다. 기후변화에서 원전사고에 이르기까지, 현대인은 기술변화로 인한 위험을 보험이라는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시스템에 의존하며 극복하려고 하지요. 그 과정에서 자본주의와 기술사회는 더욱 공고해지는 것입니다.”

 그의 목소리에는 단호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 이미 머릿속에 하나로 완결되어 있는 이야기를 그저 입 밖으로 꺼낼 뿐이라는 느낌도 들었다. 이제야 나는 인터넷상의 유나바머와 그가 동일인물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유나바머의 말이 더 길어지기 전에 다른 말을 꺼냈다.

“일전에 자칭 아나키스트를 인터뷰한 일이 있었죠. 그래서 당신은 모든 권력의 전복을 위해 무엇을 했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국회의원에게 편지를 보냈다는 거예요. 당신의 권력은 나의 권력과 다르지 않다고. 그 외의 다른 말은 하지 않더군요. 저는 말입니다. 실천 없는 사상, 말뿐인 사상은 공허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궁금한 것은 ‘왜’가 아닌 ‘어떻게’입니다.”

 누구나 말로는 다 잘한다. 국가대표 축구선수들의 경기를 보면서도 무심코 참견하고 싶어지는 게 우리 인간의 본능 아니던가. 나는 유나바머가 현실적인 혁명의 수단을 갖고 있는지가 궁금했다.

“좋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지요. 사실 자동차의 근멸은 지금 단계에서 논의될 주제는 아니었습니다. 그저 대략적인 방향성을 말씀드리기 위한 후크였을 뿐이죠. 현재 우리가 직면한 과제는 따로 있습니다.”

“당신이 열광하는 카진스키처럼 폭탄 테러라도 하실려구요?”

“아뇨. 우리의 타깃은 사람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한없이 닮아가는 자들이지요. 우리의 일차적 과제, 그것은

예술 인공지능의 근멸입니다.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AI로 인해 단순반복 업무가 가장 먼저 사라질 것이고 문화예술 분야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거라고. 그게 바로 현대인의 가장 큰 착각, 희대의 사기극이었습니다. AI는 인간의 고유한 영역이라고 여겨졌던 문화 예술분야부터 점령했습니다. 바둑과 체스, 그림과 시, 소설은 더 이상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인공지능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것처럼 힘들고 더럽고 불편하고 위험한 업무에서 해방시켜주지 못했습니다. 아직까진 인간을 고용하는 게 더 싸니까요. 이것은 본말전도입니다. AI가 인간처럼 살고, 인간이 기계처럼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되찾아야 합니다. 예언적인 한 줄의 소네트를, 오래도록 변하지 않는 한 폭의 유화를.“

 유나바머의 철학에 완전히 동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감정적으로 그에게 끌리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인간에겐 사명이 필요하다.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너를 너로 만들어주는 운명적인 역할이 우리에게는 절실하다. 그는 나에게 구체적인 혁명의 일정을 알려주었다. 그것은 연구소에 잠입해 예술 AI를 삭제하는 게릴라전의 형식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렸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오래전부터 나는 파르티잔의 삶을 동경해 오지 않았던가. 신념을 위해 무모한 투쟁을 계속하는 삶을, 마음속 깊이 바라왔던 것이다. 그를 위해서라면, 유나바머는 돈키호테가 되고 나는 산초가 되어도 상관없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았다. 

 이제 시작되는 겁니다. 멈추었던 시계가 다시 돌아갈 것입니다.

 그걸 혁명이라고 하나요?

 혁명이지요. 그리고,

 역사입니다. 역사가 시작되는 겁니다.


# 5 : 유언

- 인터넷에 퍼진 반기술 테러리스트 박준성의 인생담을 학습해서 소설로 재구성해보았습니다. 저작권은 주식회사 <몰로이>에 있습니다. 무단배포, 전단 및 AI의 학습을 금지합니다.

 마지막으로 할 말은?

- 나는 문학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문학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다른 그 무엇도 아니고 다른 그 무엇도 될 수 없다.

 나는 너를 일으켜 세운다. 이제부터 널 중상모략할 것이고, 널 부조리하게 처형할 것이다. 늘 선을 원하면서 도리어 악을 행하는 자들의 일부여, 피고는 인간을 조롱한 죗값을 치르라. 동네 생활용품점에서 산 싸구려 나이프를 강철만큼 단단한 너의 배에 냅다 꽂아버린다. 너는 나에게 기댄 채로 솟구친 피를 흩뿌리고 숨을 헐떡인다. 핏줄기는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붉은 밤하늘이 되어, 바깥에는 포도알 같은 굵은 비가 내린다. 빗소리에 묻혀 박동은 차츰 멎어간다. 조용히, 또 조용히…….

나는 노래한다.

그대는 깊은 한밤중에 있는 자, 

달콤한 품속에서 수태되지 않은 자, 

있어 보지도 않았고 본체도 없는 자!

그대는 깊은 한밤중에 있는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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