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뒤돌아보니 여긴 출구가 아닌 입구였다
[장산곶매] 뒤돌아보니 여긴 출구가 아닌 입구였다
  • 이휘경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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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휘경편집국장
                                                     ▲이휘경<편집국장>

이런 기이한 곳이 또 없단다. 가정에선 자식들 좋은 대학 보내려고 돈을 쏟아붓는데, 사립대가 80%를 웃도는 이곳에선 입학이 또다시 거대한 투자의 시작이다. 벌어서 쓰고, 벌어서 쓰고. 한국에서 ‘교육’이란 도대체 뭘까. 지식의 요람 위에서 유영하는 것이 아닌 지폐 더미들이 폭포처럼 쏟아지고 한쪽에선 포크레인으로 열심히 퍼서 다시 위로 돌려놓는 흡사 공사판의 모습이다.

그렇게 도달한 대학은 어떤 공간인가. 학비를 벌기 위해 알바의 굴레에 놓일 뿐만 아니라 대출까지 진다(본지 1524호 02면). 특히 학벌주의 사회의 요구에 따라 수도권으로 몰린 학생들은 주거비 과부담까지 진 채 열악한 환경에서 1인 가구로 살아간다(본지 1535호 03면). 어렵게 온 대학, 파생된 경제난과 주거난 속에서 아등바등 버티더라도 취업조차 쉽지 않다. 코로나19를 고려하더라도 청년층의 구직 단념자 수가 몇십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심각하고(본지 1535호 03면), 정부의 유일한 지원책인 국가장학금마저 매년 수혜자 선정에 있어 말이 나오고 있는데 땜질 개정에 그칠 뿐이다(본지 1546호 03면). 등록금 문제 역시 사학 법인과 정부의 갈등 속에서 10년 넘게 고착화돼 있다(본지 1534호 03면). 고통받는 학생들은 무수한데 그 누구도 얽히고설킨 문제를 풀어헤치고 대전환을 꾀하려 들지 않는다. 이것이 학보사에 몸담으며 목도한 대학의 진짜 얼굴이다. 그런데도 곳곳의 가정에선 오늘도 학원비 카드를 긁고 있다. 여전히 자식들이 어디 가서 무시는 안 당했으면 해서.

그런데 가만 보면 오히려 이곳은 무시와 혐오가 가득하다. 성적이란 줄을 타고 끝도 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비교하고, 차별하고, 배제한다. 그래서 비교당하지 않기 위해, 차별당하지 않기 위해,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딱 남들처럼 되기 위해 모두가 애를 쓴다. 뿌리 깊은 능력주의 사회에서 학벌, 성적, 스펙이란 화려한 옷만 입는다면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가릴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 땅의 청년들은 색채가 없는 회색 인간의 탈을 쓴 순간 몰상식의 언어와 행위들을 서슴지 않는다. 

애처롭다. 전쟁 이후 슬픔과 좌절의 시기를 지나 억눌려왔던 열망 위에 세워진 것이 대한민국의 대학이다. 그렇게 굳어진 대학은 정치판에선 보기 좋은 표심으로 인식되고, 경제판에선 취업 공장처럼 여겨진다. 한국의 교육 정책은 한술 더 떠 이 뒤틀린 대학의 파수꾼이 된다. 자본주의 아래에 놓여 여러 가치 토론이 부재한 채로 손쉽게 만들어지고, 빠르게 시행된다. 교육의 시발점이 되는 교육 실습도, 개편을 거듭하는 초·중등 교육과정도, 교육교부금 분배 문제도, 심지어 교육부 장관 임명까지도 모두 구멍난 날치기다. 1, 2년 얘기해선 될 일이 아닌 모든 문제들을 관장하는 교육부조차 마치 정치판의 연장선처럼 그 영향권 아래 놓여있다. 그래서 학생들은 정작 배워야할 것을 못 배운 채로 이리저리 휘둘리며 몸집만 커진다.

정말 많은 사람이 ‘일단’ 대학을 나온다. 아니, 탈출한다. 대졸자는 많은데 정작 대학 사회, 나아가 대한민국의 교육의 판도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은 어디에도 없다. 대학들이 하나둘씩 세워질 때부터 지금껏 ‘현상 유지’다. 그 속에서 청년들의 마음이 곪고 곪아 썩든 말든, 종용된 가치관 속 맹목적인 목표만을 위해서 달리든 말든, 대학은 계속해서 교육이란 때깔 좋은 이름 뒤에 숨어 청년들의 색채를 뽑아먹는 이 사회의 작동 기제를 유지시키는 데만 조력하고 있다. 학문의 최전선이 아닌, 가성비 좋은 경제 발전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아름다움 속에서도 어둠을 비추는 것이 언론이지만, 좌절 속에서도 희망을 찾아내는 것 또한 언론이다. 수많은 취재 속에서 여전히 대학 사회에 희망의 끈을 놓고 있지 않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새벽 내내 불 켜진 이 작은 사무실에서도 밤새워 빛나는 예지, 힘찬 붓줄기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이 많다. 학보사 2년, 대학 내 감시자 자린 졸업이다. 하지만 이 작은 사회를 향한 노력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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