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극복해 나가는 트라우마
같이 극복해 나가는 트라우마
  • 나태원 기자, 이세준 수습기자
  • 승인 2022.11.28
  • 호수 1558
  • 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에서 역사상 잊을 수 없는 비극적인 인재가 발생했다. 대규모 희생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 앞에서 유가족과 부상자는 물론, 현장에 있던 목격자, 그 상황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지켜본 많은 사람이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번 참사 희생자 중 약 70%가 20대란 점에서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로 이미 또래의 죽음을 경험한 현재 청년들이 누적된 트라우마로 인해 정신 건강에 적신호가 켜질 것이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개인을 넘어 집단을 물들인 트라우마
“등교할 때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집에서 나와 자리가 널널한 버스를 이용하려 하고 있어요. 이제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왠지 모르게 불안하고 가슴이 답답하더라고요.”

이태원 참사 후로 A씨의 일상은 달라졌다. 이처럼 과거에 경험했던 충격적인 사건과 비슷한 상황에 놓일 때 △사회적 △신체적 △정신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이 지속되는 것을 트라우마라고 한다. 

이런 증상이 개개인이 아니라 한 사회 구성원을 대상으로 발생하는 경우, 이를 ‘집단 트라우마’라 일컫는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에 이어 최근 발생한 이태원 참사와 같이 온 국민이 슬픔과 불안함에 빠져 몸과 마음의 후유증을 호소하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 박영균<건국대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는 특정 사건과 직접적으로 관련 없는 사람에게까지 트라우마의 증상이 전이되는 특징을 갖고 있어 개인적 수준을 넘어 사회 전반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사회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질 수도…
전문가들은 이런 트라우마가 장기화될 경우 사회 안전망에 대한 시민들의 불신이 팽배해질 것이라 우려한다. 박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가 치유되지 않은 상태에서 누적될 경우 사람들은 사회가 제공하는 안전 시스템을 더 이상 믿지 못하고 재난 상황에서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양상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현재 20대는 세월호 참사와 같이 또래의 죽음을 목격하는 경험을 잇달아 하고 있어 사회 질서에 대한 불신이 깊을 것”이라 설명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5월 발생한 ‘상왕십리역 지하철 추돌 사건’이 대표적인 예시다. 이는 브레이크가 고장난 열차가 속도를 줄이지 못하고 상왕십리역 부근에서 앞 지하철을 들이받은 사건이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열차에선 “가만히 기다려 달라”는 방송이 나왔지만 승객들은 며칠 전 발생한 세월호 사건을 떠올리고 자발적으로 지하철 밖으로 탈출한 바 있다. 

집단 트라우마, 갈등을 야기하다
집단 트라우마는 범사회적으로 국민의 공통적인 반응으로 나타나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태도는 개인마다 상이하게 나타난다. 국혜조<한국소매틱심리연구소> 소장은 “개인이 살아온 환경이나 선천적인 성격, 연령에 따른 두뇌 발달도 등 트라우마 반응에 관여하는 요소는 매우 다양하기 때문에 같은 사건을 겪고도 사람에 따라 외상을 심하게 겪을 수도 있고 무던히 지나갈 수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태원 추모 집회에서 만난 B씨는 “뉴스에서 우연히 사건 보도를 보고 나선 제 친구도, 혹은 저 역시 그곳에 있었을 수 있겠단 생각에 ‘죽음이 일상과 정말 가깝다’는 생각을 했다”며 “어느 곳에 가더라도 사회가 안전을 보장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불안함에 지내고 있다”고 답했다. 한편, C씨는 “무고한 시민이 사망해 안타까운 마음이 컸지만 정부가 국가애도기간을 두면서까지 추모해야 하는 일인지 의문이 들었다”고 밝혔다.

임명호<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사람마다 트라우마에 반응하는 양상이 다른데 어떤 이들은 서로 다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며 “트라우마에 대한 증상과 태도엔 옳고 그른 것은 없으니 비난하려 해선 안 된다”고 전했다. 

트라우마 정책도 개선돼야
집단 트라우마 후유증을 치유하기 위해선 트라우마가 생겨난 원인을 빠르게 파악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제시해야 한다. 박 교수는 “집단 트라우마는 2개월 차가 되면 자연스레 치유되는 과정을 거치지만 이전에 이뤄지는 초기 치료가 중요하다”며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이들이 그 상황을 납득하고 사회 시스템 신뢰 회복을 위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선 트라우마 보건 정책도 개선돼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개인적 차원에서 나아가 사회 전반적인 문제로 인식해야 한단 것이다. 채수미<보건안전연구원 미래질병대응센터> 센터장은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우울증 발병률이나 극단적 선택을 할 확률이 가장 높은 만큼 사회 전반적으로 정신 건강이 좋지 않은 나라”라며 “이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맞닿은 것이기 때문에 지금처럼 사회적 차원의 정신 건강 보건 정책이 강화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의 스트레스 유형에 대한 다각적인 연구와 함께 지금처럼 사후 대책으로서의 트라우마 지원이 아닌 예방적 차원에서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이다.
▲이태원역 1번 출구 근처에 마련된 이태원 참사 추모 공간이다.

 

트라우마를 씻는 시민들의 발길
제도적 접근에 더해 트라우마를 씻을 수 있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모임도 이뤄지고 있다. 참사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한 추모 집회 등이 대표적이다. 추모 집회를 주관하는 이미연<참여연대> 간사는 “이런 추모집회는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을 위로하고 사회적으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기 위한 행사이자 진상 파악과 시스템 개선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자리”라며 “이태원 광장에서 진행된 집회는 100여명 정도의 소규모로 이뤄졌지만 지나가는 시민들이나 주변 상인 분들도 같이 참여해주는 등 많은 이의 위로의 마음이 오갔다”고 전했다. 

많은 사람이 힘든 상황에 놓여있다.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겨눌 게 아니라,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더 커지지 않도록 서로가 서로의 고통을 보듬어 줄 수 있길 바란다.


도움:국혜조<한국소매트릭심리연구소> 소장
박영균<건국대대학원 통일인문학과> 교수
이미연<참여연대> 간사
임명호<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
채수미<보건안전연구원 미래질병대응센터> 센터장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