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인을 쫓아내는 적대적 디자인, 누굴 위한 벤치인가
노숙인을 쫓아내는 적대적 디자인, 누굴 위한 벤치인가
  • 박선윤 기자
  • 승인 2022.11.21
  • 호수 1557
  • 4면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벤치는 사람들에게 편안한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설치됐지만 이중 일부는 특정 대상을 내쫓는 용도로 설치되기도 한다. 중랑천  근처 벤치는 팔걸이가 설치돼 있으며, 각지고 기울어 있었다. 살곶이 다리부터 한양여대 앞까지 야구장, 축구장 근처 다중 이용시설엔 팔걸이 벤치가 많다. 김태환<공대 도시공학과 22> 씨는 “몇 년 전부터 공원, 지하철 역 근처에서 이런 벤치를 발견할 수 있었다”며 “팔걸이가 생겨 3명이 앉을 수 있던 자리엔 2명밖에 앉을 수 없고 굴곡지거나 튀어나온 부분이 너무 불편하다”고 말했다. 이것은 노숙자와 같은 특정 대상을 공공장소로부터 쫓아내기 위해 만들어진 ‘적대적인 디자인’이다. 손주휘<공대 건축학과> 교수는 “공공시설을 설치 목적과 다르게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그 행위 자체를 제한하도록 만드는 것을 적대적인 디자인이라 일컫는다”고 설명했다. 

본지에선 노숙인을 포함한 모두를 쫓아내는 도시의 적대적인 디자인을 찾아나섰다. 어렵지 않게 우리가 자주 타는 지하철 역들에서 이 디자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기자가 서울역에 내리자마자 팔걸이 벤치와 철제 기둥을 피해 계단에 누워있는 여러 노숙인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서울역 근처 노숙인들을 돕는 단체를 운영 중인 이병선<살맛나는 공동체> 대표는 “시에서 마련한 내부 시설이 있으나, 열악한 환경으로 인해 노숙인분들이 외부에 자리하는데, 이런 구조물들로 인해 제약이 있다”고 밝혔다. 역 내부도 마찬가지였다. 벤치엔 가운데 팔걸이를 설치해 노숙자가 누울 수 없도록 했다. 또한 강남역 2번 출구에서 논현역으로 가는 5분 동안 S자 벤치 4개를 마주했다. 이는 앉을 수 있는 면적을 좁게 만들어 오랫동안 벤치에 머물지 못하도록 한 구조물이다. 
 

▲서울역 내부 팔걸이 벤치의 모습이다.
▲서울역 내부 팔걸이 벤치의 모습이다.


이는 노골적으로 사람을 배척하는 극단적 범죄예방디자인의 일종이다. 손 교수는 “범죄예방디자인은 사각지대를 없애고 미러시트를 부착하는 등 적절한 디자인을 통해 범죄를 예방하려는 디자인”이라며 “하지만 적대적 디자인은 직접적으로 노숙인들을 범죄자로 규정해 범죄를 차단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범죄예방디자인은 범죄예방의 효과적 관리, 비용 이익 등으로 국내에서 널리 설치되고 있지만, 사회적으로 특정 계층을 몰아내는 차별적 디자인이란 반대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 대표는 “인도적으로 모두가 이용하는 공공시설에서 특정 대상을 내쫓는 것은 문제”라며 적대적 디자인을 지적했다.

이런 디자인의 문제점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모두를 범죄자로 바라보고 배척한단 점이다. 이 대표는 “저런 벤치가 생기고 난 후 벤치에서 자는 것이 어려워진 노숙인 분들이 팔걸이가 없는 벤치를 찾거나 바닥에서 자기 위해 다른 장소로 이동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적대적 건축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사람 대부분은 주거취약계층이다. 그런데 이들을 단순히 범죄자로 취급하며 내쫓는 것은 일반화의 오류다. 손 교수는 “노숙자 전부를 잠재적 범죄자로 보고 공원이나 광장에서 내쫓는 건축물을 설치하는 것은 잘못”이라 말했다. 

노숙자와 같은 주거 취약계층을 내쫓는 적대적인 디자인은 실효성이 낮다. 이와 관련한 여러 연구 결과에선 팔걸이 벤치를 설치한 공원에선 노숙자가 줄었지만 설치 장소 주변까지 넓은 범위로 고려했을 땐 오히려 노숙자 수의 변화가 없었다. 이 대표는 “결국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눈 앞에서 이들을 사라지게 하는 디자인은 표면만을 보는 것”이라며 “이들의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교육과 환경 제공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적대적인 구조물은 사회적 약자들을 계속 내몰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다시 머무를 곳을 찾아 헤매게 한다. 그리고 그렇게 모여드는 곳이 생긴다면 다시 적대적 디자인을 도입돼 악순환이 반복된다.

전문가들은 궁극적으로 범죄예방에 효과적인 디자인은 사회적 약자를 수용하는 건축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범죄예방디자인의 본 목적은 다양한 사회 구성원이 섞인 도시에서 특정 공간에서 범죄가 발생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건강한 도시를 만들고자 했던 것”이라며 “하지만 점점 디자인이 과해지면서 노숙자들을 내쫓는 동시에 평범한 사람들에게까지 불편함을 주는 적대적 디자인에 이른 것이다”라 말했다. 

도시에서 사람들에게 편안함을 제공해야할 벤치가 사회구성원을 구분해 지역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역할을 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극복하길 바란다.
 



도움: 이병선<살맛나는 공동체> 대표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혜원 2023-08-01 19:47:46
적대적인 디자인으로 설치된 벤치는 사회적 약자들을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자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사실이 안타깝습니다. 범죄예방을 위한 디자인이라는 명목 아래 사회적 약자들을 배척하는 것은 옳지 않으며, 이런 디자인은 단순히 문제를 눈치채지 못하거나 해결하지 못하는 피상적인 대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고 이해하는 디자인과 정책이 필요하며, 편안함과 휴식을 제공하는 벤치는 그러한 노력의 일부로서 사회적 포용을 실천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