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에도 감수성이 필요하다
언어에도 감수성이 필요하다
  • 이예빈 기자
  • 승인 2022.10.10
  • 호수 1555
  • 5면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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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인 △반바지 △반팔티. 우리가 일상에서 빈번히 사용하는 이 단어들 중 누군가에게 차별적일 수 있는 표현은 무엇일까? 이 문제는 지난 15일 방영한 인기 방송 프로그램 「당신의 문해력+」에 등장한 문제로, EBS 측에서 배포한 ‘성인 언어 감수성 검사’의 일부다. 약 13만 명이 응시한 이 검사에서 응시자들은 10점 만점에 평균 5점 정도를 기록했다. 앞선 문제의 정답은 맹인과 반팔티인데, 만약 정답을 바로 알아차렸다면 이미 자신의 언어 습관을 기민하게 살피는, 언어 감수성이 높은 사람일 가능성이 크다.

‘맹인’, ‘반팔티’ 뭐가 문젠데?
맹인은 사람에 따라 시각장애가 서로 다른 정도로 나타남을 간과한 채 모두를 ‘눈먼 사람’이라 지칭하는 표현이며, 반팔은 팔이 전부가 아닌 반쪽만 있단 뜻이므로 신체의 정상성을 전제하는 표현이다. 모두 알게 모르게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차별이 숨어있는 표현이지만, 이에 둔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최근 젊은 층 사이에선 언어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이 성행하고 있다. 앞서 언급된 것처럼 차별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표현뿐만 아니라 △월세 거지 △이백충 △주린이처럼 누군가를 노골적으로 폄하하는 신조어가 광고나 인기 유튜브 영상에 등장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월세 거지’와 ‘이백충’은 각각 월세를 내며 거주하는 사람과 월급 200만 원을 버는 사람을 조롱하는 표현이며, ‘주린이’를 비롯해 각종 분야의 앞글자와 합성해 재생산하는 ‘골린이’, ‘요린이’ 등의 표현은 어린이를 미숙하고 배움이 부족한 존재라고 전제하는 표현이다.

부족한 언어 감수성, 이유는 무엇일까
젊은 층을 중심으로 언어 감수성이 부족한 말하기가 생산 및 확대되는 이유는 이들이 언어를 받아들이는 특성에 있다. 허수연<공공정책대학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10·20대는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 표현을 그대로 흡수해 실생활에 적용하는 경향이 짙다”며 “이는 해당 표현의 문제 여부를 파악할 기준이 형성되지 않은 상태라 일부의 경험을 쉽게 일반화하는 것”이라 분석했다. 예를 들어 무례하거나 무조건적 양보를 요구하는 일부 노인을 조롱하는 ‘틀딱’이란 혐오 표현을 접했을 때, 실제로 그런 노인을 만나보지 않았음에도 모든 노인은 그럴 것이란 혐오를 개념화한단 것이다. 특히 허 교수는 “다수 집단에 속하고자 하는 경향성이 두드러지는 10·20대 사이에서 유행어 및 신조어가 가지는 파급력은 더욱 크다”며 “이들은 동질감이나 소속감을 느끼기 위해 잘못된 표현인 걸 알면서도 그에 점차 익숙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더해 뉴미디어의 사용이 만연한 소통 환경도 언어 감수성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온라인 채팅 △인터넷 커뮤니티 △SNS 등 젊은 층이 자주 사용하는 뉴미디어는 대화가 비대면으로 빠르게 오간단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언어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을 스스로 검토해보기 어렵게 만든다. 허 교수는 “과거에도 언어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은 존재했으나, 최근 대중화된 온라인 소통 방식은 무분별한 혐오를 서슴없이 하도록 유도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서 “최근엔 유행어가 뉴미디어를 통해 급속도로 광범위하게 퍼진단 점에서 더 위험하다”고 지적했다.

언어 감수성이 꼭 필요한 이유
전문가들은 언어 감수성이 부족한 표현이 재생산 및 대물림되는 상황에 우려를 표한다. 「당신의 문해력+」를 제작한 김지원<EBS 교육다큐부> PD는 “언어엔 각 시대별 사용자들의 생각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허 교수는 “누군가를 벌레라 칭하는 ‘–충’이나 기초생활수급자를 비하하는 ‘기생수’와 같은 표현은 우리 사회에 내재한 소수자에 대한 혐오를 나타낸다”고 말했다.
이렇듯 언어 감수성은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을 나타내는데, 지금과 같은 경향은 사회의 갈등을 끊임없이 유발하고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마저 야기한다. 권우진<국문대 한국어문학과> 교수는 “부족한 언어 감수성은 상대를 혐오하는 분열적 사회 분위기로 이어질 것”이라며 “이는 주로 사회적·정치적 힘이 약한 소수 집단을 향하기 때문에 다수 집단이 문제를 방관해 더욱 심각한 상황을 초래할 것”이라 지적했다. 이어 그는 “분노하거나 상처받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모두가 치러야 할 사회적 비용이 커진다”고 강조했다. 특히 젊은 층의 언어 감수성 실태는 곧 우리 사회의 미래와도 연결된단 점에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권 교수는 “젊은 층은 향후 2~30년간 사회의 동력이 되기에 이들의 태도가 앞으로의 사회 분위기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 언급했다.

언어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노력
전문가들은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 개개인이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검토해 점차 사회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자신의 언어 습관에 대한 지적을 받았을 때 열린 태도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신지영<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상대가 내 말을 불편하게 느꼈다면, 이에 감정적으로 대응할 게 아니라 스스로 언어 습관을 검토해야 한다”며 “특히 젊은 세대가 언어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선 그들이 보고 자라는 어른들이 먼저 언어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언어 감수성을 키우기 위한 사회적 차원의 노력도 중요하다. 권 교수는 “차별적 표현을 줄이기 위해선 교육을 통해 이에 대한 사회 전반적인 문제의식이 공유돼야 한다”며 “이를 통해 올바른 언어 사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한국인터넷자율기구(KISO)는 지난 3월부터 진행한 ‘차별표현 바로알기 캠페인’을 통해 일부 어학 사전 속 차별·비하 표현의 뜻풀이에 해당 단어가 차별적인 단어임을 명시하는 방향으로 수정하기도 했다. 

언어 감수성은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을 미리 방지할 수 있도록 한단 점에서 슬기로운 언어 습관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언어 감수성 키우기를 일상의 작은 습관으로 만들어보는 건 어떨까.
 



도움: 김지영 수습기자 eekfrl7752@hanyang.ac.kr
김지원<EBS 교육다큐팀> PD
신지영<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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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혜원 2023-08-01 20:59:49
언어 감수성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반영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주거나 차별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언어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개개인이 자신의 언어 습관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존중하며 대화를 진행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또한, 교육을 통해 사회적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올바른 언어 사용을 유도하는 노력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사회를 조금 더 포용적이고 따뜻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