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빨리 한국 와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해주세요?
[장산곶매] 빨리 한국 와서 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일 해주세요?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09.26
  • 호수 1554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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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경<편집국장>

“아무리 우리가 해외에 있는 좋은 기업에 간다고 해도 우린 거기서 외국인 노동자야.” 

이 말, 어떻게 들리는가? 가족과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하다 필자의 남동생이 한 말이다. 왜인지 모르게 불편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국내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일자리를 뺏으러 온 불쌍하고 가난한 사람들이란 인식이 있어서일 것이다. 아무리 좋은 개발자, 좋은 변호사 등으로 해외 취업에 성공하더라도 외국에선 우리도 이들과 다르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일 테니 말이다.

정말 이런 말 하기 껄끄럽지만 어디에선가 들어본, 외국인 노동자는 이제 없어선 안 될 꼭 필요한 존재란 얘기가 와닿고 있다. 감염병 시기를 통과하며 출입국 제한으로 인해 국내 곳곳 특히 업무 강도가 높은 직종에서 심각한 구인난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말은 즉 흔히 필수적이지만 많은 이들의 기피 대상인 3D 직종을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고 있었단 뜻이 된다.

최근 정부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출입국 제한과 취업 규제를 서둘러 완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는 올해 상반기 고용 허가를 받고도 현지에서 입국 대기 중인 자와 하반기 비자 발급 예정자를 모두 신속 입국 조치시키는 계획을 내놓았다. 또, 이미 고질적 문제가 된 음식업계 인력난 해소를 위해 비전문취업 비자로 입국한 외국인이 음식점에 취업할 수 있도록 취업 가능 업종을 내년 하반기부터 확대할 예정이라고 지난 14일 밝혔다. 

이쯤 되니 지난 2020년 겨울, 비닐하우스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외국인 노동자가 떠오른다. ‘비닐하우스는 집이 아닙니다’라는 인권 단체의 호소가 온 방송과 신문을 장식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코로나19 기간 수많은 외국인 노동자들은 국내에서 멸시당하고 차별을 겪었다. 똑같이 감염 위험을 가진 인간임에도 검사를 강요하는 행정명령까지 떨어졌었고, 아예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었다. 이후에도 제대로 된 감염병 예방 지원책이 부재해 이들은 타지에서 병들고, 다치고, 죽었다.

그러다가 감염병 상황이 완화되니 부랴부랴 외국에서 노동자를 수입하겠다며 나선 것이다. 솔직한 말론 이들의 경제 상황을 악용한 신종 노예무역 같다. 이들은 그저 필요할 때만 찾는 노동계 부품인가?

산업 외주화는 언제나 문제가 된다.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것도 있지만, 싼 맛에 중독돼 외주화를 진행하다 보니 계속해서 기본적인 것들이 부실해진다. 외국인 노동자에게 3D 업종을 맡기겠단 심보도 이러한 양상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싼 맛에 이들을 굴릴 수 있고, 이들은 필요해서 자발적으로 하는 것이니 처우 개선은 안중에도 없어진다. 한국 애들은 이제 힘든 일 안 하니까 저렴한 노동력에 바로 눈을 돌려버린 게 너무나 우스운 꼴이다. 비닐하우스에서 죽은 자는 그새 잊혀졌다.

고강도 노동에 대한 대우가 확실하고, 위험 직종에서 위험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까? 아르바이트를 하던 대학생이 무거운 컨테이너에 깔려 죽고,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고치던 스무 살 직원이 끼어 죽는데 어느 젊은이가 이런 일에 나서겠는가. 더럽고 냄새나는 쓰레기 처리장은 우리 동네에서 치워 달라 농성하고, 음식물 처리 일에 종사하는 사람에게 콩알만 한 급여를 쥐여 주는데 그 누가 이 일을 하겠는가. 요즘 젊은 애들은 힘든 일 안 하려고 한다는 말, 죽거나 무시당하느니 덜 배부른 게 차라리 낫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대한민국은 외국인 노동자를 수용(收用)하는 것이 아닌, 진정으로 수용(受容)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정현종의 시 「방문객」 중 일부다. 외국인 노동자에 관련된 정책은 이들의 삶을 살피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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