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귀찮은 시민으로서, 파타고니아 티 한 장 사렵니다
[장산곶매] 귀찮은 시민으로서, 파타고니아 티 한 장 사렵니다
  • 이휘경 기자
  • 승인 2022.09.19
  • 호수 1553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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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휘경<편집국장>

신기하다. 휴학을 했을 때 환경을 위해서라며 1년 간 비건을 했었다. 대충하지 않았다고 자부한다. 과자 하나를 사먹을 때도 성분표를 봤고, 잠깐 회사를 다녔을 때도 인턴이면서 꿋꿋이 육식을 피해 콩비지 식당만을 고집했다. 물론 어려움이 많았다. 풀은 안 불쌍하냐며 눈총을 받는 건 물론이거니와 ‘비건’이란 단어만 들어도 무슨 환경 보호냐며 비웃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때 이후로 2년이 지난 지금 환경은 그 무엇보다도 먼저 끌어안아야할 전인류적 과제가 됐고, 모두가 앞장서 환경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8월엔 살면서 처음으로 기후 위기를 생생이 목격했다. 폭우가 내려 온 도시가 잠겼고, 이후 취재를 하며 못 살 곳이 돼버린 수많은 반지하 가구들을 두 눈으로 보았다. 갈 곳이 없다며 인터뷰 도중 울음을 터뜨리신 한 할머니의 절절함은 정말로 인간의 삶을 180도 뒤바꿀 만큼 기후 위기가 코앞까지 다가왔음을 실감하게 했다.

‘기후’, ‘환경’. 요즘 들어 너무나 뜨거운 주제다. 여름철 전 세계를 휩쓸고 간 비구름 때문만이 아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국과 유럽 각국이 행한 대러 제재에 대한 응수로 러시아가 천연가스의 공급을 제한한 것도 한몫했다. 이로 인해 파리기후협약이 쏘아 올린 신(新)기후체제 개편으로부터 10년도 채 지나지 않아 유럽의 국가들은 석탄 화력발전과 원자력 발전을 재개하겠다며 난리다. 그러나 각국의 수장들은 깨달았을 것이다. 땅 아래 돌고 돌던 에너지 자원은 유한하며,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것이란 걸. 임시방편 이후엔 장기적인 관점에서 탄소 절감을 이행하면서도 국가 내에서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는 에너지 대책이 시급한 것이다.

우리나라 정부도 이제 ‘진짜로’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기후 환경 정책의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하고, 친환경에 대한 인식 제고를 주도해야하는 것은 다름 아닌 정부다. 국가 이념에서 한 발짝 물러나, 보다 면밀한 내부 공조를 통해 ‘관리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나가며 탄소 중립을 이룩해야 한다. 

한편, 우리나라는 막연히 탄소 절감을 위해 석탄과 원자력 사용을 제한하고 재생에너지를 개발하자는 뻔한 말만 외쳐서 되는 곳이 아니다. 그럼에도 환경보전에 앞장 서야 할 환경부는 산림을 파괴하지 않고는 들어설 수 없는 위치에 풍력발전소를 세우겠다며 영양군 산림 일대를 밀어버리는 걸 승인한 바 있다. 게다가 지난해엔 에너지 발전 사업 투자의 척도로 쓰이는 녹색분류체계 개편 초안에 점진적 친환경으로 나아가기 위한 중간 단계로 인식되는 LNG(액체 천연가스) 발전을 제외해버려 논란이 일자, 확정 단계에서 한시적 포함으로 전환했다. 이 같은 환경부의 우왕좌왕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

마침 지난 2월, 각 정부 부처가 머리를 맞대 연구한 ‘탄소가격 부과체계 개편방안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여기엔 탄소세 수준에 따른 탄소 배출 절감 효과와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제언이 담겼다. 탄소세란 배출하는 탄소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겠단 것이고, 배출권거래제란 기업이 배출할 수 있는 탄소량을 정해 범위 내에서만 배출하도록 하고 사업장 간 배출권 거래를 허용하는 것이다. 연구진들은 탄소세 시행 분야를 확대하고, 배출권거래제를 강화해야한다는 결과를 내놨다. 연구 결과에 대한 숙고로 정부가 보다 실효성 있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한때 육식을 줄이고, 분리수거를 열심히 하는 게 티끌 모아 태산이라며 기후 행동에 참여하고자 했다. 하지만 환경보호를 개인의 노력에 기대기엔 심하게 티끌이다. 차라리 파타고니아 티 한 장을 더 사서 기업의 친환경 활동에 숟가락 얹는 게 나을 수도 있단 생각이 든다. 

정부는 이제부터 분리수거 캠페인 포스터를 만들 시간에 탄소세와 배출권거래제에 대한 토의로 밤을 새야한다. 예전에 환경법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꼭 와 닿는다. 시민들은 귀찮으니 정부가 환경 관리를 위한 명확한 지침을 내리는 데 앞장서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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