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에필로그(Epilogue)
[장산곶매] 에필로그(Epilogue)
  • 임윤지 편집국장
  • 승인 2022.06.07
  • 호수 1550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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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편집국장>

처음 한대신문에 들어왔을 때까지만 해도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시간은 어느새 하루하루 착실하게 흘러 그 끝을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저는 기나긴 여행을 끝맺기 위한 마지막 에필로그를 써보려 합니다.

1학년이었던 2018년, 한양대역 2번 출구 한가운데 비치된 한대신문을 보며 이곳의 존재를 처음 알게 됐습니다. 괜한 호기심에 ‘나도 여기 한번 지원해볼까’ 기웃거렸지만 쓸데없이 스스로 감당도 못할 일을 벌이는 건 아닐까 걱정돼 지원서 파일만 열었다 닫기를 2년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난히 비도 많이 내리고 더웠던 2020년 여름날, ‘이렇게 고민만 할 바엔 일단 들어가 보자’고 다짐했고 그렇게 저와 한대신문의 인연이 시작됐습니다.

학과 공부에만 몰두했던 제게 한대신문은 늘 역동적이고 나날이 새로운 일들이 펼쳐지는 신기한 곳이었습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밤새 서로 의견을 주고받고 힘들어하면서도, 월요일이 밝아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또 열띤 토론을 하는 선배 기자들의 모습에 ‘나도 저렇게 뭔가에 푹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수습을 거쳐 정기자가 되면 마냥 저렇게 멋있어질 줄 알았던 저는, 웬걸요. 기획안을 발제해갈 때마다 양파처럼 까이기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무슨 악바리였는지 서른여 개 넘는 기사를 내고 기어코 편집국장까지 됐네요.

학보사 생활을 하며, 어떠한 문제에 대한 해답은 오로지 ‘사회 속의 나’가 사안에 주목하고 이야기해 나감으로써 그 답을 찾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모두 어디엔가 살아가고 존재합니다. 그 ‘어디’는 우리가 발붙이고 숨 쉬는 장소를 의미함과 동시에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생활하는 사회 공동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사회와 개인은 이렇게 복잡하게 상호작용하고 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갑니다. 때문에 개인이 자아를 해석하는 일은 사회를 해석하는 일과도 같다고 할 수 있겠네요. 그러한 맥락에서 작은 목소리라도 우리가 기록하고 전달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지난 2년간 학보사 기자로서 신문을 만드는 동안 최선을 다했냐 누군가 제게 묻는다면 후회는 없다만, 수많은 사건을 둘러싼 말풍선들을 조금 더 따뜻하게 대하지 못한 일말의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할 것 같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 아무리 발로 뛰고 노력해도 제가 마주한 세상은 이미 너무나 공고했습니다. 쏟아지는 사건과 취재, 이해관계가 얽힌 여러 증언 속에서 나 자신을 잃고 있는 건 아닐까 수십 번도 고민했습니다. 세상을 염세적으로 보고, 자꾸 스스로 타협해가며 기사를 썼던 게 아니었나 짙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나의 사건을 둘러싼 말풍선들을 더 다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였다면 어땠을까요. 그래도 보잘것없는 능력이지만, 제가 써놓은 글들 중 한두 글자라도 누군가에게는 유의미한 호기심 정도는 됐을 것이라 조용히 믿어봅니다.

피곤이라는 핑계로 그동안 애써 소중히 다루지 못했던 지난날 저의 학보사 생활을 어루만지며, 길었던 여행의 마지막 장면을 눈에 담아봅니다. 언제든지 쉽게 떠날 수 있다면 ‘여행’의 가치는 지금처럼 특별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떠나야만 하고 떠날 수 있는 그런 시기’는 모두 달라도 누구에게나 한 번쯤 찾아옵니다. 제게 한대신문이 그런 순간이었던 것처럼 말이죠. 이 소중했던 순간을 마무리하는 지금의 저는 조금은 아쉽지만 그래도 담담하게 이 순간을 매듭지으려 합니다.

“이상 한양대학교 학보사 한대신문 기자 임윤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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