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지, 너 뭐 돼?
빈티지, 너 뭐 돼?
  • 박지민 기자
  • 승인 2022.06.07
  • 호수 1550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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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패스트 패션으로 유행을 따라 똑같은 옷을 입어요. 그에 반해 빈티지 패션은 시대의 유행을 담은, 단 하나뿐인 옷을 입을 수 있어 매력적인 것 같아요. 이런 점 때문에 빈티지 패션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온라인 빈티지샵을 운영하는 송민지<느루빈티지> 사장이 빈티지 의류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송 사장 뿐만 아니라 진정한 ‘패션 피플’들은 이미 흔한 보세가 아닌 구제 옷으로 눈 돌리기 시작했다. 빈티지 의류 시장은 나날이 커지고 있고, 패션계에서도 ‘빈티지’나 ‘세컨핸드’, 혹은 ‘레트로’와 같은 단어가 하나의 스타일이 됐다.  

이처럼 빈티지 패션이 많은 관심을 받으면서 빈티지샵은 지역을 불문하고 하나 둘 생기고 있다. 구제의 원조인 동묘는 물론이고, ‘힙플레이스’로 꼽히는 홍대나 성수에서도 빈티지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또한 SNS를 이용한 빈티지 마켓도 생겨나고 있다. 빈티지 패션이 사랑받는 이유가 궁금했던 기자는 직접 동묘와 성수 일대를 찾아가봤다. 그리고 이곳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철학으로 빈티지 패션을 표현하는 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그들의 세계가 궁금하지 않은가. 기자와 함께 빈티지 패션의 세계로 빠져보자.

 

빈티지는 반항적이에요
첫 번째로 만나본 사람은 양휘현<서울시 광진구 23> 씨다. 오버핏의 점퍼와 밀리터리 무늬의 카고 바지를 매치한 그는 “상의와 하의 모두 구제 옷”이라 밝히며 성수의 길거리에서 멈춰 서서 자신의 코디를 뽐냈다. 그리고 그는 본인의 패션을 ‘빈티지 펑크’라 소개했다. 구제 옷에 ‘펑크룩’을 녹여냈단 것이다. 여기서 펑크룩이란 기존의 관습과 기성세대에 저항하는 의미로 1970년대 초 뉴욕에서 성행했던 스타일이다. 

양 씨는 빈티지 의류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헤지는 것을 ‘거칠다’고 표현하며 이것이 펑크룩과 잘 맞는다고 말한다. “빈티지 의류의 가장 큰 특징은 정돈되지 않은 느낌을 준단 것입니다. 옷을 입을 땐 어딘가 반항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고, 이를 잘 드러낼 수 있는 빈티지 패션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오늘의 코디는 가방이 포인트에요. 거친 느낌이 잘 드러나지 않나요?” 

 

 

 

 

 

빈티지로 과거의 패션을 입어볼 수 있어요
두 번째로 만났던 사람은 지아다 푸렐리<서울시 중구 20> 씨다. 성수역 주변에서 마주친 그는 한 번쯤 뒤돌아보게 되는 화려한 블라우스와 투박한 점퍼를 입고 있었다. “빈티지 의류는 잘만 구하면 싼 값에 예쁜 옷을 입을 수 있다”는 것이 좋다던 그는 자신의 코디를 ‘히피룩’이라 소개했다. 여기서 히피룩이란 60년대 말의 히피들이 자주 입었던 코디에서 파생된 단어다. 히피룩 역시 펑크룩처럼 기존의 일관된 기성복을 기피하고, 직접 옷을 염색하는 등의 방식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인디언 풍의 무늬를 코디에 자주 사용하는 그는 시대적 패션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7080년대의 영화를 좋아하는데, 등장인물들의 패션이 보여주는 아름다움에도 빠지게 됐어요. 복고풍을 좋아하다보니 빈티지 패션에 입문하게 됐고, 제가 원하는 대로 다양한 색채를 코디에 사용해요. 그렇게 히피룩과 결합해 저만의 뉴트로(뉴+레트로) 룩을 만들어 냈어요.” 

 

 

 

 

 

스트릿룩은 빈티지로 코디할 때 제일 '힙'해요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은 김영은<김해시 삼정동 20> 씨다. 린넨 소재의 베이지색 모자와 꾸민 듯 안 꾸민 듯, 무심하게 검정색의 상하의를 매치했던 그는 동묘에서 구제 옷을 쇼핑 중이었다. 김 씨는 본인의 코디를 ‘빈티지 스트릿’이라 설명했다. 스트릿룩을 구제 옷으로 표현했단 것이다. 스트릿룩이란 힙합 문화에 기반한 것으로 말 그대로 길거리(street)에서 입는 코디, 즉 격식을 갖추지 않고 본인의 개성대로 입는 스타일을 뜻한다. 그리고 이러한 스트릿룩을 속된 말로 ‘힙’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는 힙한 것을 좋아한다면 빈티지 의류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평소 스트릿룩을 좋아하는데, 구제 시장에 있는 옷만큼 힙하고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옷은 없다고 생각해요. 특이한 디자인이 많거든요. 그래서 구제 옷으로 스트릿룩을 표현하는 거고요.” 이어 그는 옷을 입을 때 돋보이고 싶은 것 하나에만 조명되게끔 신경 쓴다며 그만의 코디 팁을 밝히기도 했다. “보시다시피 바지에 주머니나 줄 등의 장식이 많이 달려있고, 무늬도 있어요. 화려한 바지를 돋보이게 하기 위해 가방이나 반팔은 수수한 것을 골랐어요.”

 

 

 

 

 

빈티지는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를 표현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만나본 사람은 정현수<서울시 영등포구 25> 씨다. “하늘하늘하게 떨어지는 가디건과 치마를 주로 입어요.” 본인만의 확고한 스타일이 있는 그는 본인의 패션을 ‘모리걸’이라 표현했다. 모리걸은 일본어로 ‘숲 속에 있을 것 같은 소녀’를 뜻한다. 모리걸 패션은 지난 2006년, 영화 「허니와 클로버」에서 일본 영화 배우 아오이 유우가 스타일링 해 더욱 관심을 받게 됐다. 정 씨는 모리걸 코디가 보여주는 산뜻하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애정을 갖게 됐다고 말한다. “꽃무늬 자수가 박히거나 주름이 풍성하게 잡힌 옷을 골라 입었는데 그게 알고 보니 ‘모리걸’ 코디와 유사하더라고요. 자연스레 그게 제 스타일이 됐고, 매 계절마다 어울리는 모리걸 코디를 구상하곤 해요.” 

덧붙여 그는 “요즘 나오는 옷들이 예쁘진 않은 것 같다”며 빈티지 패션에 빠지게 된 이유를 얘기했다. “기후위기시대에 마구잡이로 생산하는 옷들이 어느 순간 스트레스로 다가왔어요. 더군다나 그렇게 생산되는 옷들은 봉제가 제대로 돼있지 않거나 재질도 좋지 않아 보이더라고요. 그에 반해 빈티지 의류들은 그 오랜 시간을 견디고도 내구성이 좋아요. 그만큼 어떻게 보면 빈티지는 누군가의 정성이 가득 담긴 옷 아닐까요?”

 

 

 

기자가 직접 입어봤다! 빈티지 패션
기자는 이같은 빈티지 의류에 매력을 느껴 옷을 직접 구매해 입어봤다. 기자의 코디는 ‘페어리룩’으로, 빈티지샵을 운영하는 이들이 추천하던 블라우스와 스커트를 착용했다. 페어리룩은 빈티지 시장 업계에서 공공연하게 쓰이는 하나의 스타일이며, 빈티지샵 종사자들은 페어리룩을 ‘얼핏 보면 모리걸과 비슷한 분위기지만 말그대로 좀 더 요정 같은 느낌이 든다’며 소개하곤 한다. 기자가 직접 약 400개의 SNS 빈티지샵을 훑어본 결과, 페어리룩엔 마치 동화 「피터팬」의 팅커벨이 입을 것 같은 풍성함이 강조된 샤 스커트나 끝소매가 넓은 블라우스 등이 이용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기자는 이러한 페어리룩 특유의 사랑스러운 느낌이 어색해 히피룩이나 스트릿룩 등에 자주 등장하는 부츠를 매치했고, 힙한 느낌을 가미해 코디를 완성했다. 

이처럼 빈티지 패션의 세계는 다양하고 무궁무진하며, 구제 옷으로 어떤 코디든 만들어내고 해석할 수 있었다. 빈티지 의류가 이토록 사랑을 받게 된 이유는 획일화 돼가는 패션 시장에서 본인의 개성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 아닐까. ‘오래됐지만 가치 있는 것’이란 뜻을 지닌 빈티지. 시대의 오래된 향기를 맡을 수 있는 구제 옷을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당신도 ‘빈티지 패션 피플’이 돼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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