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 설 자리 점점 좁아져
인문사회 분야 학술연구, 설 자리 점점 좁아져
  • 김동현 기자
  • 승인 2022.05.02
  • 호수 1547
  • 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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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본지는 인문사회 분야의 독자성을 고려하지 않은 「국가연구개발혁신법」(이하 혁신법)(본지 1538호 03면)의 폐해에 대해 보도한 바 있다. 그러나 혁신법 제정으로 드러난 우리 사회의 인문사회 분야 홀대는 좀처럼 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무관심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의 교육분과 전문가 구성에서 확인할 수 있었으며, 최근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대학지원 사업에서도 잘 드러났다. 인문사회 분야 학술단체 관계자 A씨는 “이번 인수위 교육분과는 대부분 이공계열 출신 학자들로 구성됐다”며 “가뜩이나 어려운 인문사회 지원 기반이 더 악화될 것 같아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게다가 그는 “이런 기조 속에서 최근 정부의 학술지원도 이공계열에 편중됐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인문사회 분야에 관심이 저조한 현실이다.

무너지는 인문사회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는 정부의 연구개발(이하 R&D) 투자 현황과 관련 지원 정책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지난해 책정된 정부 R&D 투자 예산 중 인문사회 분야를 대상으로 하는 것은 단 1.2%인 약 3천억 원에 불과했다. 정부의 전체 R&D 투자는 연평균 8.9%의 증가율을 보이며 지난 2017년과 비교해 약 40% 증가했지만 투자 증가 이점의 대부분은 이공계열에 돌아갔다. 지난 5년간 인문사회 분야의 R&D 투자 증가율은 연평균 1.3%에 그친 것이다. 

우리 학교 국문대 중국학과 명예교수인 위행복<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회장은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 R&D 투자가 전체의 1%뿐”이라며 “더욱이 기업이 주축이 되는 70조 원 가량의 민간 R&D 투자영역에선 아예 전무한 수준”이라 답했다. 이어서 그는 “이 상황에서 국가가 나서 한국연구재단의 인문사회 분야 연구 예산을 1조 원까지 늘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의 대학 지원 역시 대부분 이공계열에 편중돼 있다. 지난 2월 교육부가 발표한 ‘2022~2024년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이하 대학지원사업)’에 따르면, 부처 협업형 인재 양성 사업의 대부분은 이공계열만을 위한 것이었다. 교육부에 의해 주요 협력 사업으로 분류된 것들을 살펴보면 △미래형자동차 △수소연료전지 △시스템반도체 △온실가스감축 △자원개발 등으로 인문사회 분야는 전무했다. 

전담조직도 없는 인문사회
이처럼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정부의 홀대가 가장 잘 드러난 사례가 바로 본지 1538호 03면에서 언급한 혁신법의 ‘연구과제통합관리시스템(이하 연구관리시스템)’이다. 이는 인문사회 학계에서 혁신법 제정에 반발한 주요 원인이다. 본 시스템에선 ‘연구노트’의 작성이 필수로 요구되는데, 이는 주로 이공계열의 연구 과정에서 사용된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는 저술, 번역 등과 같은 자유로운 창작 활동을 포함한다. 결국 맞지 않은 인문사회 분야에 이공계열의 시스템을 의무화한 셈이다. 위 회장은 “각 학문이 발전해나가기 위해선 ‘융합적 협력’이 필수조건이나, 이공계열의 방식을 일률적으로 인문사회 분야에 적용하는 것은 융합과 협력 그 어디에도 해당한다고 말할 수 없다”며 “이공계열과 인문사회 분야가 올바른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선 각자의 특성에 맞는 지원·관리 체계 하에 협력을 도모하는 것이 맞다”고 전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나라에선 인문사회 분야를 지원·관리할 조직이 부재한 것이 현실이다. 혁신법과 같은 문제 역시 이러한 점에서부터 기인했다. A씨는 “관련 정부 부처의 부재로 인문사회 분야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는 정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실제로 현재 이공계열의 경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같은 별도의 전담 조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지원을 전담하는 조직은 10명 남짓한 교육부의 한 부서에 불과한 수준이다. 이강재<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은 “과학기술 분야의 경우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이나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처럼 탄탄한 정책연구기관을 바탕으로 하고 있는 반면 인문사회 분야는 개별 연구소나 개별 연구만 있을 뿐 중장기적 학술지원 정책을 추진할 만한 바탕이 없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대학 연구실도 매한가지
이 같은 인문사회 분야의 암울한 현실은 자연히 대학 연구실에도 반영됐다. 지난 1월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21년도 전국대학 연구 활동실태조사 분석보고서’에 따르면 인문사회 분야의 경우 연구과제 수부터 이공계열에 비해 현저히 적을 뿐 아니라 △1인당 연구비 △연구비 수혜율 △연구비 총액 모든 면에서 제대로 된 관리를 받지 못하고 있었다. 위 회장은 “현재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비 수혜율은 과학기술 분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라며 “인문학 분야 박사학위 취득자의 37.3%가 연봉 2천만 원 미만의 소득으로 학자의 삶을 견디고 있다”고 답했다. 게다가 현재의 법률이 규정하고 있는 연구과제 인건비 지급 기준은, 과학기술 분야의 박사과정 학생에겐 매월 250만 원 이상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면서도, 인문사회 분야 박사과정 학생에겐 매월 250만 원 이하의 금액만을 지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튼튼한 인문사회의 토대가 필요해
이 본부장은 “국가의 위상이 높아진 것에는 과학기술이 앞장서고, 그것을 뒷받침할 인문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답했다.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가 당장의 경제적 이득과 산업 발전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과학 기술적 성장을 위해선 튼튼한 인문사회 바탕이 필요한 것이다. 

실제로 여러 해외국가에선 일찌감치 국가 주도의 인문사회 분야 연구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바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과 독일이 있는데, 이 두 나라는 독일연구협회(DFG)와 국립연구기금(NEH)과 같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를 지원하는 전담 기관이 잘 갖춰져 있으며 이러한 기반 위에서 과학기술과 산업의 발전을 이룩했다. 임은희<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은 “해외 여러 국가에 비해 우리나라 전체적인 R&D 투자가 부족하고, 특히 인문사회 분야는 더 심각한 편”이라며 “이는 OECD 평균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에서 더 부각돼야 할 문제”라 답했다.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도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관심이 필요한 것이다.

인문사회, 국가의 백년대계를 세우다
이에 지난 1월 교육부는 ‘2022 인문사회분야 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방안이 대학지원사업의 발표보다 한 달가량 앞선 시점에서 나왔단 점과 단편적인 지원에 그친 해결책이란 점에서 아쉬움이 남는 게 사실이다. 임 연구원은 “인문사회 분야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선 일시적인 지원보단, 장기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기반을 다지는 게 더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중장기적 계획이 수립돼야만 인문사회 분야 성장의 커다란 흐름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라 전했다. 위 회장은 역시 “우리나라는 인문사회 분야를 소외와 억압 속에 방치해온 역사를 종식해야 한다”며 “선진국에 걸맞은 학술정책 수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치우쳐진 학술 환경을 두고 ‘새는 하나의 날개로만 날지 않는다’는 표현을 들어 설명했다. 
진정한 의미의 국가 백년대계를 위해서라도 이제는 인문사회 분야에 대한 심도 있는 성찰이 필요한 때다.

도움: 위행복<한국인문사회총연합회> 회장
이강재<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
임은희<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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