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산곶매] 나의 작은 영웅 이야기
[장산곶매] 나의 작은 영웅 이야기
  • 임윤지 편집국장
  • 승인 2022.04.04
  • 호수 1545
  • 7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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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윤지<편집국장>

2019년 봄 할아버지는 담도암 판정을 받으셨다. 한평생 건강하게 100세까지는 사실 줄 알았던 우리 할아버지가 암에 걸리실 줄 상상도 못했다. 

10대 시절 할아버지는 부모님을 모두 여의고 남은 다섯 남매의 생계를 위해 학교 하나 졸업하지 못했다. 할 줄 아는 것이 손수 무얼 만들고 고치는 일밖에 없었기에 할아버지는 온갖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가족들을 먹여 살리셨다. 다른 형제남매들에게 우리 할아버지는 한 명의 아버지였던 것이다. 이후 할머니를 만나 슬하에 두 자녀를 두고, 자녀들에게만큼은 본인처럼 못 배웠다는 소리 듣게 하기 싫어 자식들이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혼자 힘든 일을 도맡아 하셨다. 할아버지는 서울 달동네를 전전하며 이사를 자주 다니면서도 힘든 내색 한번 안하셨고, 남에게는 선뜻 도움을 주면서도 정작 본인은 단 한 번도 남에게 빚 한번 지어본 적 없는 분이셨다.

할아버지의 두껍고 굳은 살 가득한 손은 그가 평생 겪어오신 삶의 고생을 선명하게 보여줬다. 필자와 비슷한 나이에 가정을 책임져야 했던 그 무게감은 상상도 되지 않았다.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스스로 겸손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할아버지 곁에서 필자는 어린 시절을 보냈다. 첫 손녀딸이라며 어린 시절부터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약한 감기에만 걸려도 다 나을 때까지 옆에서 늘 돌봐주시던 분이셨다.

그런데 필자는 그러지 못했다. 할아버지께서 편찮으실 때 1달에 한두 번꼴로 밖에 찾아뵙지 못했다. 그리고 항상 만날 때마다 긴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고 할 일이 많아서 얼른 학교에 가봐야 한다는 핑계로 하루하루가 마지막일 수 있는 할아버지 곁에 오래 머물지 못했다. 할아버지께 나를 키워주셔서, 할아버지의 그 거친 손 덕분에 나는 유복한 집안에서 자라 이렇게 고운 손을 가질 수 있어서 감사하고 사랑한다는 말을 부끄럽다는 이유로 계속 뒤로 미뤘다.

얼마 전에도 할아버지는 “바쁜데 뭐 하러 찾아와”라며 여느 때와 같이 필자를 반겼다. 거기에 필자는 똑같이 “다음에 또 올게요”라는 무책임한 말을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 그것이 마지막 인사였다. 할아버지는 최대 6개월 정도 살 거란 의사에 말에도 꿋꿋하게 3년 가까이 지내오실 만큼 항상 강하신 분이셨으니까 이번에도 조금 더 잘 버텨주실 거라 믿으며 다음을 또 기약하는 실수를 반복하고 말았다. 

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도 필자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죽은 뒤 아쉬워하고 후회해도 다시는 뵙지 못할 것이고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그러나 할아버지는 그것을 뛰어넘어 삶이 죽음을 넘어설 수 있단 것을 가르쳐주셨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위해 많은 이들이 찾아오고 조화를 보내왔다. 이들은 할아버지가 그 거친 손으로 키워온 자녀의 지인들과, 그 거친 손에 도움을 받았던 사람들이었다. 비록 할아버지는 이제 이 세상에 없지만 그의 희생과 헌신은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이다.

할아버지는 필자가 살아오는 동안 봐온 모든 사람을 통틀어 가장 존경하는 분이다. 그 누구보다 강했고, 60년 넘는 시간 동안 한 여인만을 사랑했으며, 두껍고 거칠었던 손에서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 손을 잡으면 겸손해지게 되는 그런 분이셨다. 그의 마지막을 위해 필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렇게 글을 남기는 것이다. 글을 씀으로써 할아버지의 삶을 기록하고 추억하는 것이다. 

밤이 깊은 새벽, 빈소에 앉아 이제는 만날 수 없는 나의 작은 영웅, 할아버지를 추모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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