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장문화재법, 고인류 가치에 눈뜨다
매장문화재법, 고인류 가치에 눈뜨다
  • 나태원 기자
  • 승인 2022.04.04
  • 호수 1545
  • 4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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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91년 이탈리아에서 발견된 ‘외치’는 알프스 산맥에서 발견된 미라로, 약 5천3백여 년 전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탈리아 연구원들은 외치를 30년 이상 보존·연구하며 당시 인류의 문화, 이동 경로 등을 알아내고 최근엔 그의 구강 구조를 분석해 목소리를 복원하기도 했다. 이와 달리 그동안 우리나라는 인골·미라 연구가 미진했으나 최근 「매장문화재법」 개정으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인골·미라, 인정받지 못한 문화재
「매장문화재법」 개정 배경은 그동안 해당 법에서 땅이나 수중에 매장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유적·유물을 문화재로 정의하고, 인골·미라는 이에 포함시키지 않아 연구에 어려움을 겪었던 데 있다. 최경철<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인골·미라 연구의 체계가 없어 연구가 끝나면 이를 재매장하거나 화장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고 전했다.

진성이낭, 아낌없이 주고 사라지다
하지만 인골·미라는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고, 현재 질병을 분석하는 데 용이한 병리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어 그 가치가 높다. 지난 2010년 경북 문경에서 발견된 17세기 30대 여성 미라 ‘진성이낭’의 옷에선 기생충 알이 나왔는데, 이를 통해 그가 생전 민물고기 회를 즐겨먹었단 사실을 유추할 수 있었다. 또한 미라의 DNA에서 동맥경화를 일으키는 유전자가 발견됐는데, 이는 현대인의 질병으로 알려진 동맥경화의 유전적 원인이 17세기에 있었단 걸 알아낸 데 의의가 크다. 

그러나 이 또한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보존되지 못한 채 지난 2017년 화장됐다. 당시 연구를 진행한 오창석<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는 “진성이낭이 더 장기간 남아있었다면 보다 많은 의학적 정보를 얻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매장문화재법 개정, 과거 보존을 위한 첫걸음
이에 지난 1월 문화재청이 인골·미라를 매장문화재로 간주할 수 있는 법령 개정안을 발표했다. 「매장문화재법」이 개정되면서 인골·미라 연구에 보다 체계가 잡힐 것으로 보인다. 전문기관을 지정하고 해당 기관에 비용을 지원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오는 7월부터 시행된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그동안은 뼈, 미라 연구를 터부시하는 분위기가 만연해 이를 법제화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가 어려웠다”며 “앞으론 이를 근거로 연구하는 데 필요한 여러 지원이 이뤄질 것”이라 덧붙였다.

 

▲ 경기도 용인시에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 경기도 용인시에서 매장문화재 발굴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모습이다

더욱 활발해질 고인류 연구
매장문화재로서의 인골·미라가 법적 지위를 가지면서 연구 자료 보호 및 보존이 더욱 수월해질 전망이다. 그동안 인골·미라는 시신으로 여겨져 「장사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즉, 시신이 발견됐더라도 일정 기간 연고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다시 묻거나 화장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강병학<한양문화재연구원> 원장은 “대규모 공사를 시행하기 전엔 해당 부지에 문화재가 있는지 먼저 확인 작업을 하는데, 길어지는 공사 기간이 불만인 사업자가 발굴된 유골들을 그냥 밟고 지나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개정안을 통해 매장문화재가 법적 보호를 받게 되면, 연구가 더 안정적으로 이뤄질 것”이라 전했다. 


국가에서 본격적으로 지원을 시작하면서 연구 인프라도 더욱 확장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문화재청의 따르면 국립문화재연구원이 문화재분석정보센터를 개관하며 1천여 구의 인골·미라 보관 장소를 확보했다. 또한, 오는 2025년까지 문화재 분석 첨단 기기를 구축하고 자체적인 분석과 데이터베이스 시스템 마련을 계획 중이다. 김소연<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 학예연구사는 “국내는 아직 인골·미라 연구가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이런 인프라를 갖춰 나간다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 최경철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조선시대 남성 유골 모습이다.
▲ 최경철<국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연구하고 있는 조선시대 남성 유골 모습이다.

인력 양성에도 주목해야…
전문가들은 국내 인골·미라 연구가 더욱 발전하기 위해선 전문 인력 양성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동안 인골·미라 연구가 워낙 주목받지 못했던 분야다 보니 이를 분석할 줄 아는 인력이 매우 적기 때문이다. 최 교수는 “국내에 인골·미라를 전문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인력은 손에 꼽는다”며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선 박물관, 연구원 등 전문 기관들이 보관하고 있는 유골·미라를 공개해 대중의 관심을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덧붙였다. 

과거 우리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타임캡슐인 고인류. 앞으로 이들에 대한 인적·법적 차원의 노력이 이뤄져 한반도에 있었던 역사 문화 및 인류에 대한 여러 비밀이 밝혀지길 기대해본다.


도움: 강병학<한양문화재연구원> 원장
김소연<국립문화재연구원 보존과학연구실> 학예연구사
오창석<을지대 장례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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